청와대 푸시로 힘 받은 경찰…‘공룡 경찰’ 탄생하나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18.03.26 22:13
  • 호수 148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사·정보·경비·경호 등 민생치안 업무에 대공 수사까지 독점

 

“경찰에게 대공 수사권을 주는 것은 1987년 남영동 대공분실을 만들자는 이야기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다. 경찰의 권력 남용이 불 보듯 뻔하다.”

 

청와대가 지난 1월 경찰·검찰·국가정보원(국정원) 등 3대 권력기관에 대한 개혁방안을 발표하자, 자유한국당은 경찰 권력 남용의 상징인 남영동 대공분실까지 거론하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곽상도 의원은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은 경찰·검찰·국정원의 공동 책임인데, 이번에 경찰에 (100 중) 80의 권한을 부여했다”면서 “아무런 원칙이 없는 수사권 재편”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의 3대 권력기관 개혁방안에 따르면, 앞으로 경찰의 권한과 규모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해진다. 검찰이나 국정원의 권한이 축소되는 대신 ‘공룡 경찰’이 나올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2016년 10월21일 제71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경찰관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경찰 권력 강화는 남영동 대공분실 재현”

 

가장 먼저 국정원이 갖고 있던 대공 수사권이 경찰에 신설되는 ‘안보수사처(가칭)’로 넘어가게 된다. 이렇게 되면 경찰은 수사·정보·경비·경호 등 민생치안에 관한 권한뿐만 아니라 대공 수사까지 독점하게 된다. 또한 1차 수사권까지 가져왔다. 청와대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경찰을 ‘1차적 수사권자’, 검찰을 ‘2차적·보충적 수사권자’로 각각 규정했다.

 

청와대 3대 권력기관 개혁방안을 시작으로 경찰의 권한이 강화될 조짐은 여기저기서 읽힌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직속 경호실을 폐지하고 해당 업무를 경찰청 산하 대통령 경호국으로 이관한다는 대선 공약을 내건 바 있다. 대통령 경호 업무의 경찰 이관은 대통령 집무실을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로 이전하는 이른바 ‘광화문 시대’와 맥이 닿아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예산을 반영하고 2019년 광화문 이전 완료라는 계획 아래, 여기에 발맞춰 경찰청 경호국 신설을 추진할 방침이다.

 

경찰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검사의 수사지휘권과 직접수사권을 폐지하고, 해방 이후 검사가 독점해 온 영장청구권을 헌법에서 삭제·개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학계·시민단체 등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경찰개혁위원회는 지난해 12월 ‘국민 인권 보호를 위한 수사구조개혁’ 권고안을 발표하며 “한국 검찰은 기소권 외에 수사권, 수사지휘권 및 영장청구권, 형집행권 등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과도한 권한을 독점하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외부의 어떠한 견제와 통제를 받지 않는 성역이 되어 있어 정치적 표적 수사, 별건 압박 수사 및 무리한 기소권의 남용, 전관예우 등 많은 폐해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면, 검찰의 직접수사권은 폐지하지만 경찰관의 범죄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검사가 수사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에 관해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12조 제3항 및 제16조에서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문구 삭제도 개혁위는 제안했다. 특히 개헌 전이라도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검사가 법원에 부당하게 불청구하는 권한 남용의 폐단을 통제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주문했다. 개혁위는 “영장주의의 본질은 체포·구속·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의 필요성을 수사기관이 아닌 독립된 법관이 공정하게 판단하도록 해 국민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라면서 “사법제도의 발전과 시대 상황에 맞게 누구에게, 어떤 종류의 영장을 청구하게 할 것인가는 국회에서 합리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입법사항으로 정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경찰 인력·예산, 검찰보다 5배 많아

 

경찰의 요구에 문재인 정부도 응답했다. 청와대의 지난 3월20일 대통령 개헌안에는 검사의 영장청구권을 삭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야말로 경찰의 시대가 열리는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비대해지는 경찰 권력을 견제하려는 움직임도 만만치 않다. 법무·검찰개혁위원회(위원장 한인섭)는 지난 2월 검경 수사권 조정 권고안을 내놓았는데, 경찰개혁위 안과는 온도 차를 보였다. 법무·검찰개혁위는 경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원칙적으로 폐지하는 권고안을 냈지만, 검찰에 접수된 고소·고발·진정 사건에 대한 수사, 경찰의 송치 사건(재기 사건 포함)에 대한 보완수사, 변사 사건에 대한 수사, 경찰의 영장신청 시 보완수사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수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즉, 검찰이 구체적 수사 요구권을 가지며, 실질적인 수사지휘권 역시 유지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법무·검찰개혁위는 국민의 인권과 직결되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에 대해서는 경찰의 영장신청에 대한 검사의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기 때문에 검사의 영장심사나 긴급체포 승인 절차는 현행 규정을 유지하도록 했다.

 

변호사협회도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대한변호사협회(회장 김현 변호사)는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현재 논의되는 것처럼 단순히 검찰 권한을 축소해 경찰 권한을 대폭 늘리면 경찰로 인한 국민의 인권침해가 증가할 수 있다”면서 “국민의 인권침해 방지를 위한 경찰 권력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찰의 한 해 검찰 송치 사건이 전체 형사 사건의 98%에 이르는 150만 건인데,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된 사건이 2011년 10만 건에서 2015년 15만 건으로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인력과 예산이 검찰보다 약 5배 많다. 이미 그 자체로 거대 권력기관이다. 경찰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검찰·국정원의 폐해를 넘어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와 관련해 이철성 경찰청장은 “경찰대학 개혁, 경찰위원회 실질화, 옴부즈맨 등 외부 통제기구 설치와 자치경찰을 논의 중이다. 향후 경찰에 힘이 실린다면 이미 그만큼 더 덜어내고 있다”면서 “현재 주어지지 않은 것을 두고 공룡이라 얘기한다면 ‘아기공룡 둘리’로 생각해야 한다”고 항변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