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위원회 공화국’인가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8.03.27 23:02
  • 호수 1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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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속만 10개 넘어…부처 간 역할 중복 우려도

 

대통령 비선실세와 국정농단으로 몰락한 박근혜 정부의 뒤를 잇게 된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때부터 유독 ‘직접 챙기겠다’는 말을 강조했다. 자신은 결코 ‘누구’로부터 ‘어떻게’ 결정됐는지 모를 깜깜이 인사, 깜깜이 업무 처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조직마다 산적한 적폐 역시 자기 손으로 청산하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은 취임 후 여러 ‘대통령 직속 위원회’들의 잇따른 출범으로 가장 먼저 실현됐다.

 

문 대통령은 중대한 국정과제마다 정부부처 관계자들을 비롯해 각종 전문가, 민간위원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에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겼다. 정책 환경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과거와 같이 어느 한 부처나 기관에만 전권을 부여해선 안 된다는 뜻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정부 출범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십 수 개의 큼직한 위원회들이 출범하거나 출범 준비에 돌입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특히 대통령이 위원장으로 직접 챙기는 직속 위원회는 현재 10개가 넘는다. 대통령 취임 후 업무지시 1호로 꾸린 일자리위원회를 비롯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4차산업혁명위원회 등 중대한 국정 현안들은 대부분 대통령 직속 위원회 형식으로 설치돼 있다. 이들 현안은 대통령 인수위원회 역할을 대신했던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100대 국정과제 발표안’에 담긴 ‘임기 내 핵심 과제’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 100대 국정과제 내용을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연구하는 ‘싱크탱크’ 격의 정책기획위원회도 대통령 직속으로 꾸려져 있다. 여느 위원회들에 비해 중장기적 전략과 정책 내용을 관리한다는 데 초점을 두고 있긴 하지만, 일각에선 대통령 직속 위원회들끼리도 업무나 역할의 중복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월2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청와대 쏠림으로 정부부처 역할 모호

 

시급한 현안이거나 다소 지속성이 낮은 사안에 대해선 위원회가 아닌 태스크포스(TF) 형태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제천과 밀양에서 연이어 화재가 발생하자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청와대 내 화재안전대책TF 조직을 지시했다. 화재안전대책TF는 2월13일 첫 전체회의를 열고 향후 수시로 문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미 꾸려진 위원회 산하에 또다시 TF팀을 만들어 업무를 분담하기도 한다. 일례로 일자리위원회는 지난 1월 ‘범정부 청년 일자리 대책 TF’를 구성해 일자리 문제 중 가장 시급한 청년 일자리 문제를 전담케 하기도 했다. 이처럼 대통령 직속 위원회는 대부분 산하에 별도 위원회나 TF를 1개 이상 조직하고 있다.

 

관계 부처에 일임해도 무방한 일까지 대통령과 청와대가 직접 챙기면서 청와대 소관 업무가 지나치게 방대해지고 있는 모양새다. 그렇지 않아도 청와대에 모든 이슈가 쏠리고 있는 상황에서 내각의 존재감과 역할이 더욱 약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청와대와 부처 간 업무 경계가 모호해질 가능성도 우려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최저임금 문제의 경우, 청와대가 최저임금 TF를 만든 가운데, 고용노동부 산하에 조직된 최저임금위원회 역시 전문가 TF를 따로 꾸려 실태조사에 나서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던 을지로위원회 역시 한때 대통령 직속 기구로 격상시키려다 업무 중복 우려로 중단되기도 했다. 당초 문 대통령은 공약에 을지로위원회를 검찰·경찰·국세청 등 범정부 차원의 위원회로 새로 꾸리겠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그 역할과 위상이 구체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비슷한 역할을 맡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와 업무가 겹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사실상 철회한 것이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연합 경제협력팀장은 “애초에 위원회를 만들기 전에 담당 정부부처들과의 역할 분담이나 업무 중복 여부를 고려했을 텐데 지금 보기엔 그게 섬세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역할 분담이 모호해지면 자칫 위원회 자체가 각 부처 고유 업무를 침범하고 옥상옥 권력으로 군림하게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정부 출범 100여 일 만에 장관으로 취임한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취임식에서 “고용노동부가 일자리 주무부처로서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을 주도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기획재정부 출신 이용섭 부위원장이 이끌고 부처 합동으로 이뤄진 일자리위 내에서도 고용노동부 세가 약하다는 얘기가 있던 차였다.

 

© 사진=연합뉴스

 

 

참여정부 말 위원회 통폐합 작업 거쳐

 

현재 문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 위원회는 물론, 국무총리실·정부부처 산하 기존 위원회들 역시 역할과 권한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을 택했다. 새 위원회를 만들면서 이전 정부 흔적이 남아 있는 위원회들은 되도록 축소·폐지했던 전직 대통령과는 다른 행보다. 여기에 법무·검찰개혁위원회(법무부), 군 적폐청산위원회(국방부), 국정원개혁발전위원회(국정원) 등 적폐가 심각했던 부처에는 ‘적폐청산, ‘개혁’의 이름을 단 새 위원회도 추가로 탄생시켰다. 이렇게 꾸려진 각 정부부처 내 위원회·TF 수만 해도 30개를 훌쩍 넘는다. 산술적으로만 보면 정부 출범 후 매달 2~3개씩 생겨난 셈이다.

 

역할이 방대하고 권한이 센 위원회들에 대한 우려는 과거 노무현 대통령 참여정부에서 현실화된 바 있다. 참여정부 역시 과거 ‘위원회 공화국’으로 불릴 만큼 각종 위원회들이 우후죽순 활동했다. 노무현 대통령 임기 말인 2007년 12월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발표에 따르면,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포함해 정부부처 산하 위원회의 수를 모두 합치면 416개에 이르렀다.

 

위원회가 지나치게 많다 보니, 점점 관리·감시가 소홀해져 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는 ‘유령 위원회’들이 넘쳐나게 됐다. 당시 환경부 산하에 설치돼 있던 영향평가조정협의회는 현 문재인 정부 위원회와 같이 각 관계부처와 민간위원들이 함께하는 ‘범정부’ 성격을 띠고 있었지만, 5년간 회의 실적이 전무했다. 또한 당시 국방부 소속 군인고충심사위원회 역시 출범 후 2년이 넘도록 심의한 안건은 ‘0’건이었다.

 

이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정부는 뒤늦게 위원회에 대한 대대적인 통폐합을 추진했다. 비슷한 역할을 하는 위원회들을 파악했고 그 결과 기존 위원회 상당수를 재정비해야 했다. 현재 각 위원회 취지와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자칫 문재인 정부 역시 참여정부처럼 ‘위원회 공화국’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나오는 이유다. 이러한 여론을 의식한 듯 지난해 말 청와대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는 더 이상 신설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미 설치한 위원회를 바탕으로 이후 중장기 국정 과제에 집중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청와대 최저임금 TF(태스크포스) 단장인 장하성 정책실장(왼쪽)이 1월31일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커피 가공업체 씨즈커피코리아를 방문, 업체 관계자에게 일자리안정자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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