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양대 구리병원, ‘슈퍼박테리아 감염’ 은폐 의혹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18.03.28 09:04
  • 호수 1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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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 사실 없다던 병원 문건에 ‘법정 감염병’ 기록

 

“환자는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되지 않았습니다.”

 

한양대 구리병원에 입원한 어머니가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됐다는 가족의 주장에 대해, 병원이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밝힌 공식 입장이다. 슈퍼박테리아 감염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환자가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된 사실이 기록된 병원의 세균 검사 결과보고서가 나왔다. 병원이 슈퍼박테리아 감염 사실을 알고도 숨긴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지난해 9월 박아무개씨(여·74)는 한양대 구리병원에서 척추질환(척추관협착증)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심폐 정지 후 6개월째 중환자실에서 혼수상태로 있다. 당시 병원이 환자 측에 발행한 소견서에는 ‘슈퍼박테리아(MRSA) 검출, 항생제 투여’라고 기록돼 있다.

 

환자의 요구에도 병원이 감염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소견서도 병원이 자발적으로 발급한 게 아니라 환자 측이 요구해 발행됐다. 게다가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된 지 약 2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병원 측은 환자의 슈퍼박테리아 감염 사실에 대해 가족에게 설명했으며, 가족끼리 그 내용을 공유하지 못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 시사저널 박정훈


 

“병원이 6개월 동안 슈퍼박테리아 감염 숨겼다”

 

환자 측은 병원의 이 주장이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삼형제가 번갈아가며 환자 곁을 지켰고 자주 환자 상황을 주고받았지만, 슈퍼박테리아 감염 내용을 아무도 들은 바 없다는 것이다. 이후 환자 측은 슈퍼박테리아 감염 사실을 질병관리본부 측에 알리고 조사를 요청했다. 그러자 병원은 슈퍼박테리아가 아닌 ‘일반 균(MRSE) 감염’이라는 소견서를 다시 발행했다. 의사가 소견서에 실수로 슈퍼박테리아라고 표기했다는 것이다.

 

‘슈퍼박테리아 검출’을 ‘일반 균 검출’로 말을 바꾼 병원을 신뢰할 수 없었던 환자 측은 보건복지부, 감사원,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등에 진정서를 내고 명확한 사실을 밝혀주길 기대했다. 이런 내용은 시사저널 등 언론을 통해서도 보도됐다. 그러나 한양대 구리병원은 ‘슈퍼박테리아 감염’ 내용의 기사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병원은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환자는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언론 기사에 대해 “관련 기사를 정정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며 언론사를 압박했다.

 

환자 측과 병원의 주장이 확연히 다른 상황에서, 최근 환자 가족은 환자가 지난해 10월부터 현재까지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된 사실이 기록된 병원 서류를 입수했다. 환자의 아들 김아무개씨는 “향후 진료 상담을 위해 병원으로부터 세균 검사 결과보고서를 발급받았다. 그 서류를 보니, 한양대 구리병원이 지난해 10월부터 올 3월까지 약 6개월 동안 어머니를 상대로 모두 27차례에 걸쳐 세균 검사를 했고, 이 가운데 19번이나 슈퍼박테리아가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❶ 2017년 10월 한양대 구리병원이 ‘슈퍼박테리아(MRSA 균혈증)가 발생해 항생제(vancomycin) 투여’라는 내용으로 발행한 소견서 ❷ 2017년 12월 병원이 ‘일반 세균(MRSE)’이라고 바꿔 재발행한 소견서 ❸ ‘슈퍼박테리아(MRPA): 법정 감염병’이라고 기록된 병원의 세균 검사 결과보고서(2017년 10월18일자와 올해 3월5일자)


 

병원, 환자 측에 퇴원 강요

 

환자 가족이 시사저널에 제공한 ‘진단검사의학과 검사 결과 보고서’라는 제목의 문건에는 “다제내성 녹농균(MRPA): 법정 감염병”이라고 기록돼 있다. 다제내성 녹농균이란 여러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슈퍼박테리아의 일종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이 균은 국내에서 관리하는 법정 감염병 중 하나다. 이 균은 병원에서 드물지 않게 감염되며, 오염된 의료기구·의료인의 손 등을 통해 전파된다.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가 감염되면 패혈증 등이 발생해 치명적일 수 있다.

 

환자 측은 누구나 병원에서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환자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원인이 반드시 슈퍼박테리아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병원이 슈퍼박테리아 감염 사실을 밝히지 않는 것을 지적할 뿐이다. 보건 당국의 지침에 따르면, 병원은 슈퍼박테리아 감염 후 7일 이내에 그 사실을 환자에게 알려야 한다. 그러나 환자 측이 병원에 슈퍼박테리아 감염 여부를 물었을 때도 병원은 그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김씨는 “어머니가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된 게 아니냐고 의사에게 물어봐도, 의사는 슈퍼박테리아(MRSA·MRPA) 감염 얘기는 하지 않고 일반 균(MRSE)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병원은 어떤 균은 있고 어떤 균은 없다는 식으로 말장난을 하는데, 핵심은 슈퍼박테리아 감염 여부”라며 “환자가 식물인간 상태가 된 지 6개월이 지나서, 그것도 환자 가족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보고서를 찾아내 어머니가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된 사실을 밝혔다. 결국 병원이 입원 환자의 법정 감염병 감염 사실을 환자 가족에게까지 숨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양대 구리병원이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된 환자가 없다고 밝힌 공지문


 

그는 또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알아보니 병원은 슈퍼박테리아 데이터를 뺀 자료를 중재원에 보냈다. 병원이 대외적으로 슈퍼박테리아 감염 사실을 은폐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병원 측은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이 병원의 한 의사는 기자에게 “그 환자에게서 슈퍼박테리아(MRPA)가 검출된 게 맞다”며 “여러 항생제가 듣지 않는 강한 균”이라고 털어놨다.

 

병원은 오히려 환자 측에 퇴원을 요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병원 이미지 때문인지, 병원 측은 우리에게 빨리 퇴원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우리도 병원비 부담 때문에라도 어머니를 요양병원으로 옮기고 싶다. 그러나 요양병원에서도 감염병 환자를 잘 받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한양대 구리병원에 소견서를 써달라고 요청했다. 어떤 균에 감염됐고, 어떻게 치료했으며, 현재 환자의 상태가 어떤지를 알아야 하지 않겠나. 그러나 병원은 이를 거부하고 있어 우리도 전원(병원을 옮김)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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