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헌법적 여성’ 주체로...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3.28 13:48
  • 호수 1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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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2일 오후 청와대발 개헌안 전문이 발표되었다. 이 헌법전문은 그 자체로 촛불이 불러온 시대변화를 읽게 해 준다. 젠더  의식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고, 낙태죄 폐지, 성소수자 인권 보호, 대체복무제 도입, 사형제 폐지 등 유엔 인권이사회가 제시한 권고안의 절반을 ‘사회적 합의’가 안 되었음을 이유로 수용 거부하는 등, 완벽한 헌법안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큰 줄기에서 바로 그 ‘사회적 합의’를 향한 공론화의 첫걸음은 뗀 셈이다. 국회 통과라는 관문은, 다른 말로 하면 국민이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아직은 남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권을 포함하는 헌법 개정안을 국회가 어찌 다루는지 보아야겠다.

 

이번 개헌안에서 내가 특히 주목한 곳은, 천부인권을 가진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확대’한 대목이다. 이번 개헌안의 가치를 단 하나만 꼽으라면 이 ‘확대’라는 말을 꼽고 싶다. 헌법은 명문화된 조항뿐 아니라 해석 투쟁과 그 결과인 ‘법률 만들고 바꾸기’를 통한 의미의 ‘확대’ 범위가 어느 정도인가가 중요하니까. 과잉해석을 무릅쓰고 ‘국민’이라는 말로 지칭되던 모습을 간추려보면, 이 ‘사람으로 확대하다’라는 말의 의미가 그 중요성이 조금 더 드러나 보이겠다.

 

3월15일 한국여성단체연합회 회원들이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평등을 포함한 개헌을 요구했다. © 사진=연합뉴스


이번 헌법이 염두에 둔 ‘사람’은 어떻게 생겼을까를 상상해 본다. 우리는 지금까지 ‘국민’이라는 말로 ‘성별·종교·장애·연령·인종·지역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아’온 ‘사람’들을 적당히 배제해 온 것은 아닐까? 이렇다 할 뚜렷한 국민 이미지를 우리가 만들어놓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국민은 집합명사라는 것이다. 국민 여러분이라 불릴 때마다 제멋대로 해석되고 구성되는 저 국민 속에 내가 과연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놓고 쓸데없이 짜증이 나던 시대가 이제는 지나가려는 걸까? ‘사람으로 확대’함으로써 그 사람의 이미지가 보다 다양해지고 개인의 차이가 존중되는 방향으로 풍부해지는 것만은 틀림없다. 심지어 이 존중은, 개헌안에 의하면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들로 ‘확대’되기까지 한다.

 

그러니 적극적으로 상상해 보자. 노동자 여성인 나, 일과 가정을 둘 다 책임져야 한다는 요구에 시달리고, 유권자 여성인 나, 언제나 남성 후보자들 중에서 골라야 하고, 하급자 여성인 나, 성폭력 원하는 사회에 시달리고… 이런 내가 새로운 헌법이 말하는 ‘사람’으로 보이려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헌법적 여성은 어떻게 생겼을까.

 

헌법 조항을 놓고 무슨 문학작품 읽듯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건 좀 과잉 같지만, 따지고 보면 현대인들에게 가장 깊은 영감을 준 좋은 사회적 언어는 훌륭한 헌법에 다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성들이 좀 더 적극적인 젠더 평등적 조항을 요구하는 것은 결코 과도하지 않다. 젠더 평등한 언어야말로 아무도 차별하지 않는 아름다운 언어다. ‘사회적 미합의’를 돌파해 내는 힘이 아직 미약하고, 이제 겨우 가장 부정적이고 어두운 언어인 성폭력 권하는 사회의 언어에 맞서는 싸움이 시작되고 있을 뿐인 것이 문제지만, 다행히 시간이 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 편이다. 특히 세상의 절반인 여성들이 헌법적 여성 주체로서 스스로를 발견하기만 한다면, 그 시간은 굉장히 빨리 ‘사람들’ 편으로 달려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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