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누락된 세월호 보고서에 진실이 담겨 있다
  • 이용우 시사저널e. 기자 (ywl@sisajournal-e.com)
  • 승인 2018.03.29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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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SO 자유항주 조종실험 보고서 단독 입수…김현권 의원 “검찰의 부실 수사 드러난 것”

 

세월호의 진실도 ‘박근혜 7시간’처럼 그 비밀이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마지막 남은 세월호 퍼즐들이 맞춰지고 있는 것. 이 퍼즐들은 지금까지 의도적으로 가려지고 숨겨져 왔다. 거짓말이 난무했다. 세월호 4주기를 맞는 지금, 유가족들은 “모든 것이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세월호 참사가 다시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밝혀지길 원했다. 

 

세월호의 진실을 풀어줄 문건 중 하나인 ‘세월호 침몰사고 원인 분석-자유 항주 조종실험’ 보고서를 시사저널e가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로부터 단독으로 입수했다. 이는 해양수산부 산하 기관인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O)가 모형 선박을 이용해 내놓은 세월호 자유 항주 실험 보고서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가 자체적으로 실시한 네덜란드 마린 실험이 이미 3년 전 국내에서도 진행됐던 것이다. 이 보고서가 지금까지 누락된 사실이 드러나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가 진도 해상에서 침몰해 뱃머리만 보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금까지는 사고원인이 세월호 자체 문제인 것으로 알려져

 

세월호 사고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진행된 국내 실험은 세월호의 어떤 조건에서 사고 항적과 기울기, 급회전이 발생했는지를 찾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를 위해 KRISO는 당시 41.667분의 1 크기의 세월호 모형 배를 제작했다. 모형의 길이는 3.2m, 폭은 약 0.5m였다. 복원력 수치(GM)는 0.42, 0.47 두 가지를 사용했다. 세월호 궤적을 맞추기 위해 타각은 다양하게 사용했고 화물이동에 따른 기울기 영향도 살폈다. 

 

이 자유항주 모형실험 결과를 보면, KRISO는 세월호의 실제 사고 당시의 급변침을 구현할 수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시 말해 세월호 사고 당시의 AIS항적은 어떤 조건에서도 모형실험으로는 만들 수 없었던 것이다. 검찰이 2014년 세월호 원인이라고 밝힌 과적·복원성 불량 조건을 실험에 대입했음에도 모형은 사고 당시의 궤적보다 큰 원을 그리며 이동했다. 이는 다른 요인이 세월호 궤적에 영향을 줬다는 의미가 된다. 

 

이 실험에선 화물이동에 의한 기울기도 가정하고 실험이 진행됐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배의 기울기에 의해 화물이 이동하는 조건에서도 세월호 실제 사고의 급회전은 구현할 수 없었다. 타각 시나리오에서 좌현 5도, 15도, 20도, 25도의 변화가 있었지만 모형은 세월호 항적을 벗어난 채 큰 원을 그렸다. 이 내용은 4년 동안 감춰졌다. 오직 과적과 복원선 불량, 고박 불량, 조타 실수 4가지가 사고 원인이라고 단정 지어졌다. 다른 요인은 생각할 수 없었다. 이 보고서가 4년 동안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이 보고서가 공개돼 논란이 커지자 검찰은 보고서 누락 이유에 대해 “사고 관련자들의 유죄를 입증하려고 모형실험을 했지만, 나중에 실험에 사용된 데이터가 잘못됐음을 발견했다. 잘못된 데이터에 의한 실험결과는 증거가치가 인정되지 않아 증거로 쓰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월호 출항 당시 연료유가 조사 결과 기존에 알려진 198.38톤에서 150.6톤으로, 청수는 150톤에서 259톤으로 바뀌었고 침몰 당시 데이터도 변경됐다며 정정 데이터를 사용한 구속모형시험 시뮬레이션 결과 등만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검찰의 설명대로라도, 연료와 청수 무게를 계산하면 전체 무게가 60톤가량 늘어난다는 점이다. 청수와 연료는 배 바닥 쪽에 위치한다. 결국 이 수치가 높아지면 배의 복원력은 높아진다. 세월호의 안전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변경된 조건을 대입할 경우 모형은 기존 실험보다 더 큰 원을 그릴 수밖에 없다. 

 

세월호 선조위 관계자는 “자유 모형실험은 컴퓨터 시뮬레이션보다 더 정확한 값을 도출한다는 점에선 이견이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보통 컴퓨터 시뮬레이션하고 모형실험을 진행한다. 선회와 횡경사(기울기)가 다르게 나올 경우 재검토하고 분석한다. 실험들이 상호보완적인 것이다. 그 과정을 거쳐서 결과를 도출해야 하는데 지금은 공학적으로 봐도 미비한 정도의 청수·연로 조건이 변했다는 이유로 자유 항주 실험 결과를 전혀 쓰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에서 이 실험을 진행한 선조위원은 당초 이런 실험이 없었다고 말해왔다가 네덜란드 실험이 계획·실행될 때서야 (국내에서 자유 항주 실험이) 있었다고 시인했다”고 말했다. 선조위는 올해 1월과 2월 네덜란드 해양연구소 마린을 찾아 자유 항주실험과 침수실험을 진행했다. 마린에서 25분의 1 크기 모형을 통해 자유 항주실험을 진행했다. 하지만 결과는 KRISO 보고서와 비슷했다. 세월호 선체의 복원력 정보를 대입해도 세월호 모형은 사고 당시의 급회전을 구현할 수 없었다. 

 

2월20일(현지시각) 네덜란드 해양연구소 마린에서 세월호의 30분의 1 크기의 모형을 통해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용우


 

“세월호 사고 항적 만들어 내는 힘은 ‘외력’일 가능성 크다”

 

세월호 자유 항주실험이 복원성 불량만으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세월호 모형실험을 진행한 마린의 실험 총책임자는 기자에게 “세월호 사고 항적을 만들어 내는 힘은 외력일 가능성이 크다”라는 의견을 말했다. 유가족 관계자도 이와 관련해 “세월호 자유 항주실험 과정에서 외력일 가능성이 크다는 마린의 입장이 있었다. 하지만 선조위는 조사 과정에서 정확한 조사를 위해 외력 외에도 다른 원인이 있는지 찾아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이는 유가족도 같은 입장이다”라고 설명했다. 선조위는 네덜란드 실험 당시 외력에 의한 사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관련 실험을 진행했다. 

 

다른 선조위 관계자는 “선조위가 조사한 데이터와 추정한 조건에서 한 실험만 봤을 때, 마린의 의견은 ‘그런 조건에서 결과가 구현되지 않는다’라는 설명이었다”며 “조사되지 않은 조건들이 있을 것이다. 그에 따라 실험은 더 진행돼야 한다. 이 조건들만으로 (선회 등이) 실제 사고처럼 나오지 않는다면서 외력이라고 말해선 안 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KRISO가 진행한 자유 항주 모형실험 보고서에는 이와 관련해 특이점이 드러난다. KRISO 자유 항주실험은 사고 당일 기준인 8시48분37초를 기준으로 잡고 10초 단위로 결과를 도출했다. 대부분의 모형실험은 8시48분37초로부터 50초까지 실제 사고 당시의 AIS항적과 비슷한 항적을 보였다. 하지만 55초에서 70초 사이부터 세월호 사고 항적을 따라가지 못하고 큰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AIS 항적이 급격하게 튀었기 때문이다. 사고 당일 세월호가 어떤 이유에서든지 사고 초기 지점이자 55초 이후인 8시49분32초에서 8시49분50초 사이에 급회전을 시작한 것이다. 블랙박스 영상에서도 이 시간에 세월호는 30도 이상 급격하게 기울었고 8시49분50초 이후부터 50도 이상 기울기를 보였다.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번 보고서와 관련해 “당시 사고 제1의 증거물인 세월호 선체가 수면아래 있는 상황에서 무게 변경을 고려한 용역 수행기간 연장이 필요했다. 하지만 검찰은 제한된 기간에 무리하게 맞춘 결정으로 인해 현 시점에서 불가피한 의혹을 낳았다”며 “검찰은 세월호 사고의 직접증거물인 세월호 선체를 조사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국민의 의혹 해소를 위해 최대한 많은 실험 결과를 확보해 최종 결론을 내렸어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 결국 당시 검찰의 수사 결과가 부실하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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