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운명 가를 김정은의 다음 카드는…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8.03.30 15:46
  • 호수 1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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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北·美 게임판에 中 참가…조만간 러시아도 들어올 듯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전격 방중은 북·중 관계의 정상화를 의미한다. 그동안 김정은 시대를 맞아 북·중 관계는 잠시 이상 기류가 형성됐으나 이번 방중으로 일정 부분 해소됐다는 분석이다. 김 위원장이 선대인 김일성·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할 때 쓰던 열차 노선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김 위원장과의 오찬을 과거 김일성-덩샤오핑이 만난 식당에서 한 것, 숙소로 아버지 김정일이 방중 시 항상 사용하던 댜오위타이(釣魚臺) 18호를 내준 것은 북·중 관계 정상화의 상징적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북한이 정상국가로 인정받는 데 신경을 썼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이 집권 후 첫 해외순방지로 중국을 택하면서 부인 리설주와 함께 찾은 것은 대외적으로 북한이 정상국가임을 알렸다고 봐야 한다. 부친인 김정일은 중국·러시아를 방문하면서 단 한 번도 부인을 공개 석상에 대동한 적이 없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3월25일부터 나흘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중국을 비공식 방문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월28일 보도했다. 사진은 김정은·리설주 내외가 3월26일 환영 행사 참석을 위해 시진핑 주석·펑리위안 여사와 함께 인민대회당으로 들어서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경제난 북한, 中·러 지렛대로 판 흔들어

 

이번 방중을 통해 김 위원장은 중국의 보호 아래 적극적으로 남북, 북·미 대화에 나설 것임을 밝혔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북한의 전략 변화는 언제부터라고 봐야 하나. 이와 관련해 3월26일자 조선신보가 힌트를 줬다. 이날 조선신보는 보도를 통해 “지난해 11월 북한의 ‘국가 핵무력 완성’ 선언이 조선반도(한반도)의 긴장과 대결의 구도가 완화와 대화의 국면으로 전환되는 신호탄이었다”고 강조했다. 조선신보는 북한의 입장을 대외적으로 전하는 관영 매체다. 이 신문은 그러면서 “목표를 전쟁의 방법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달성하는 것이 최고영도자(김정은)의 구상이었다”고 밝혔다. 결국 북한은 체제 안정을 위해 국가 핵무력 완성에 전력했으며 그것이 완성됨과 동시에 경제 개혁, 개방을 위한 전향적인 자세로 바꿨다고 봐야 한다. 김 위원장이 지난해 10월 여동생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에게 평창올림픽에 참가할 응원단을 조직하라고 지시한 것도 남북대화를 위한 사전 준비작업의 성격이 짙다.(1480호-[단독]“북한 ‘평창 응원단’ 지난해 10월 처음 조직됐다” 참조) 정영태 북한연구소 소장은 “작년까지 김정은이 핵개발을 위해 지루한 마라톤을 뛰었다면 올해부터는 핵국가로 인정받기 위한 마라톤에 돌입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이 대결에서 대화로 태세전환에 나선 것은 유엔 제재로 인한 경제난 때문이다. 특히 중국이 유엔 제재에 동참하면서 북한의 수출·수입 길은 사실상 다 막혀버렸다. 따라서 김정은 위원장의 이번 방중 역시 경제제재를 낮추기 위한 성격이 짙다. 국제사회가 대북 경제제재에 동참한 상황에서 북한은 진보적 색채를 가진 문재인 정부와의 대화가 유리하다고 판단했으며, 이를 통해 미국과의 직접 협상에 나섰을 거라는 설명이다. 한 국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남한, 미국과의 대화로 국면을 전환하고 국제적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평화의 제전인 올림픽만 한 이벤트가 없다고 판단했기에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 참가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막식에 김여정을 특사 자격으로 내보낸 것도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북한 전문가의 설명이다. “북한이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 특사로 최룡해·황병서·김양건을 보냈는데 이들이 남한에 와서 김정은의 진의를 국제사회에 잘 설명하지 못했다. 그 결과 아시안게임 이후 최룡해와 황병서는 숙청됐고 김양건은 사망했다.이번 평창올림픽에서 이러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백두혈통이라고 불린 여동생 김여정밖에 없다.”

 

© 시사저널


 

4월27일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 개최

 

천안함 폭침의 주범이라고 불리는 김영철을 폐막식 특사 자격으로 보낸 것도 역시 적극적인 남북대화를 염두에 둔 의사표시다. 그 결과, 오는 4월27일 두 정상은 판문점 우리 측 평화의집에서 정상회담을 갖는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 의미를 ‘차이나 패싱’을 차단하고 한반도 문제에 적극 참여하기 위한 중국 정부의 전략으로 본다. 북한 기관지 노동신문은 3월28일자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시진핑 주석의 초청으로 3월25일부터 28일까지 베이징을 공식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왜 시 주석은 김 위원장을 중국으로 부른 것일까.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중국이 남북, 북·미 대화에 앞서 북한의 의중을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서다. 또 중국이 줄기차게 주장해 온 ‘쌍중단(雙中斷)’ ‘쌍궤병행(雙軌竝行)’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들어봤을 공산이 크다. 쌍중단은 한·미 연합훈련과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동시에 중단하자는 것이며, 쌍궤병행은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을 맞바꾸자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 입장에서는 전인대(전국인민대표회의)를 통해 장기집권의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에 북·중 관계 정상화를 서둘렀을 거라고 봐야 한다.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마련한 북한의 다음 포석은 또 다른 우방국인 러시아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물론 김 위원장이 중국을 찾은 것처럼 러시아를 열차로 다녀올 가능성이 크지는 않지만 100% 실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러시아 스파이 독극물 사태로 비난받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분쟁 해결사를 자처하며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명분은 충분하다. 이럴 경우 김 위원장의 방러 가능성은 한층 높아진다.

 

그런 점에서 현재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러시아를 방문한 것은 고위급 특사 파견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 차원으로 해석된다. 만약 김 위원장 본인이 러시아를 찾아가지 않는다면 자신을 대신해 여동생인 김여정 제1부부장을 특사로 보내 대북제재 완화와 남북, 북·미 정상회담의 의제를 먼저 설명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 노동신문이 3월28일 게재한 사진.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가 중국과학원을 방문해 가상현실(VR)로 보이는 기기를 체험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핵기술·시설 폐기 등 비핵화 전격 선언 가능성

 

북한의 다음 카드는 무엇일까. 북한 전문가들은 승부수를 띄우는 차원에서 비핵화 카드를 먼저 꺼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북·중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선대의 유훈을 거론하면서 밝힌 “한반도 비핵화 실현에 주력하는 것은 우리의 시종 일관된 입장”이라는 데 힌트가 있다. 손기웅 전 통일연구원장(한국DMZ학회 회장)은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에 이르면 기습적인 공세를 취하는 것이 주체사상에 있는 전법(戰法)인데 그 관점에서 보면 북한은 우리 정부가 요구하는 3단계 비핵화 중 2단계까지 수용하면서 경제제재 완화를 요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현재 우리 정부는 핵 동결→핵사찰 및 관련 시설 파괴→핵 폐기 등 단계적인 비핵화 과정을 희망하고 있다. 이럴 경우 한·미 양국은 단계마다 이에 상응하는 선물을 줘야 한다. 물론 이는 미국 정부가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사안이다. 미국 정부는 ‘선(先) 핵 폐기 후(後) 비핵화’ 원칙이 확고하다. 쟁점은 비핵화의 수준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정할 것인가다. 한·미 양국은 현 대통령 임기 중 재현 불가능한 수준의 폐기를 요구할 것이 확실하다.

 

다만 우리 정부는 미국 정부보다 더 이 문제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3월21일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 회의에 참석해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서로 피해 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북한이 1단계인 핵 동결을 선언할 경우, 한·미 양국은 당근책으로 △대북제재 해제 △북·미 교역 정상화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를 논의할 가능성이 크다. 또 5월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관련 기술, 핵시설 파괴 등 비핵화 조건을 한 단계 높일 경우 미국은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 수교 등을 협상카드로 내밀 수 있다.

 

하지만 주한미군 철수처럼 한·미 동맹을 흔드는 의제를 북한이 내걸지는 미지수다. 김정은 위원장은 3월초 우리 특사단과의 회담에서 “한·미 연합훈련의 불가피성을 인정한다”고 밝힌 바 있다. 주한미군 철수와 같은 민감한 사안을 회담 의제로 올릴 경우 판이 깨질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무르익은 회담 분위기가 깨지는 것은 북한도 바라는 바가 아니다.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철수를 연계하는 것도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판단이다.

 

문제는 북한 정권의 진정한 비핵화 의지다. 완전한 비핵화는 현실 가능성이 낮다. 리비아식 핵폐기는 쉽지 않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한·미 양국 모두 정권의 임기가 뚜렷한 반면, 북한·중국·러시아는 장기집권이 가능한 체제여서 협상 대응력에 차이가 난다”면서 “김정은은 문재인 정부 때 통 큰 타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남한·미국과의 관계회복이 속도를 발휘한다면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인 오는 9월9일 북한이 남한·미국·중국·러시아 등 주변국 정상들을 초청해 비핵화와 개혁·개방을 논의하는 방안을 추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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