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文대통령·이주열, 1월에 만나 연임 결정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8.04.02 11:15
  • 호수 1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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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면담’ 후 연임 사실상 결정…44년 만의 한은 총재 연임 막전막후

 

청와대는 3월2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연임을 ‘깜짝’ 발표했다. 한은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을 겸임한 1998년 이후 첫 연임 소식인 데다 이 총재는 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인물이었기에 한은과 시장 모두 ‘깜짝’ 놀라는 분위기였다. 한은 총재 연임은 햇수로는 1974년 이후 무려 44년 만이다. 44년 만의 ‘깜짝 연임’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시사저널 취재 결과, 이 총재의 연임은 청와대의 연임 발표 46일 전인 1월16일 사실상 결정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1월16일 오후 비공개로 이 총재를 청와대로 초청해 면담했다. 대통령은 한은 총재의 인사권자다. 통화정책 수장인 한은 총재가 재정정책을 총괄하는 경제부총리(기획재정부 장관)와 정책 공조를 위해 만나는 일은 자주 있지만, 대통령과 면담을 갖는 일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 총재의 ‘깜짝 연임’에는 문 대통령의 뜻이 강하게 작용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 총재의 연임을 발표하면서 “문 대통령이 직접 다른 나라의 경우 (중앙은행 총재가) 오래 재임하면서 통화정책을 안정적으로 이끄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다른 나라 사례를 살펴보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3월22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으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文 대통령, ‘한은 독립성 존중’ 인식 강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경우 ‘경제의 신(神)’이라 불린 앨런 그린스펀과 ‘헬리콥터 벤’ 벤 버냉키가 18년, 8년씩 의장으로 재임했다. 유럽중앙은행은 총재 임기가 8년으로 제도화돼 있다. 한은의 경우 김유택 전 총재(1951~56년), 김성환 전 총재(1970~78년) 이후 연임 사례가 없었다. 김 대변인은 “이 총재의 연임은 한은의 중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총재의 연임 배경을 잘 파악하고 있는 정부 소식통은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인사청문회라는 장벽 때문에 원하는 인사를 낙점하지 못하고 이 총재 연임을 결정했다는 일각의 이야기는 사실과 다르다”며 “문 대통령은 처음부터 이 총재보다 월등히 나은 인물이 없다면 연임 결정으로 중앙은행의 중립성과 자율성을 확고히 존중하겠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이 1월16일 이 총재와 면담 후 사실상 연임 결정을 내리고 이후 검증 절차 등을 밟아왔다”고 설명했다.

 

지난 대선 때 문 대통령의 싱크탱크 자문위원장을 지낸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도 이 총재의 연임에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존중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됐다는 분석을 내놨다. 박 전 총재는 “대선후보 시절 중앙은행 독립성과 관련된 얘기를 몇 차례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전적으로 동의하셨다”며 “전임 정권이 임명한 한은 총재를 연임시켰다는 것은 한은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고히 존중한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주열, 김동연 부총리와 찰떡 공조 ‘강점’

 

문 대통령이 더 큰 그림을 그렸다는 분석도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이 총재의 연임을 계기로 향후 한은 총재의 연임이 특별한 일이 아닌 당연한 일처럼 만들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라고 했다. 5년이라는 정권 임기보다 긴 8년의 임기를 보장해 정치적으로 확실히 독립성을 지킬 수 있게 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중이 담겨 있다는 해석이다. 한은법상 한은 총재는 한 차례 연임할 수 있다. 박 전 총재도 “문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향후 한은 총재들이 연임할 수 있는 교두보를 놓은 것”이라며 “우리 중앙은행 금융사에 미치는 의미가 큰 결정”이라고 했다.

 

이 총재의 연임에는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궁합이 잘 맞는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깊다고 알려져 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청와대 파견 근무를 한 김 부총리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은 통화신용정책 부총재보였던 이 총재와 친분을 쌓았다고 전해진다.

 

김 부총리는 이 총재 연임 발표 사흘 만인 3월5일 이 총재와 오찬 회동을 하며 한은에 힘을 실어줬다. 두 사람의 회동은 이번이 벌써 여섯 번째로, 올해 들어서만 세 번째다. 두 사람은 이날 향후 정책 공조를 더욱 강화해 나가는 동시에 앞으로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수시로 만나 경제상황과 정책에 대한 공감대를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야말로 찰떡 공조를 선보인 셈이다.

 

반면 이 총재의 경쟁자로 거론됐던 이광주 전 한은 부총재보는 김 부총리와의 껄끄러운 인연이 악재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외화 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이 전 부총재보는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과 관련해 기재부와 신경전을 벌였는데, 그 상대방이 김 부총리였다는 것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오른쪽)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3월5일 서울 모처에서 회동을 가졌다. © 사진=기획재정부 제공


 

[상자기사]

정통 한은맨 이주열…과제는 산적

 

강원 원주 출신인 이 총재는 대성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7년 한국은행에 입행해 조사국장·정책기획국장·부총재 등 요직을 거쳤다. 재임 동안 안정적이고 균형 잡힌 통화정책을 펼쳤다는 평을 받는다. 일각에서는 이 총재가 한은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인 1.25%까지 낮춰 가계부채 1400조원 시대를 열었다고 비판한다. 이 총재는 작년 11월 6년5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2016년 정부가 ‘한국판 양적완화’를 위해 한은에 직접 출자를 요구했을 때는 한은 독립성이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직을 걸고’ 이를 막아내기도 했다. 주요국과 통화스와프를 맺어 외환시장 안정성을 높인 점은 공으로 평가받는다.

 

당면한 난제는 한·미 기준금리 역전이다. 미국 기준금리가 1.50~1.75%로 상향 조정돼 한국은행 기준금리(1.5%)보다 높아졌다. 외국인 투자금이 고(高)금리를 좇아 미국으로 유출될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미국 금리 인상에 적극 대응할 경우 1400조원대 가계부채에 부담을 주고, 경기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또 미국의 통상 압박, GM 국내 철수 등이 경기 회복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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