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소년’ 유족들의 비극적인 삶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4.04 17:21
  • 호수 1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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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병 얻어 사망하고, 집이 불에 타 소실돼

 

​지난 3월27일 오전 11시 와룡산 새방골에서 ‘개구리소년 27주기 추모식’이 개최됐다. 이 자리에는 유족을 비롯해 시민단체 회원 등 20여 명이 참석해 구천을 떠돌고 있는 아이들의 명복을 빌었다. 이 사건은 숱한 의혹을 남겼다. 특히 경찰은 사건을 밝히려는 노력보다 축소·은폐하기에 바빴다. (시사저널 1485호 ‘아직도 대구 와룡산 떠도는 개구리소년 원혼들’ 기사 참조)

  

평범했던 유족들의 삶은 아이들의 실종으로 비극적으로 변했다. 실종 5년째인 1996년 1월에는 카이스트 교수인 김가원이 “종식이 아버지가 아이들을 죽여 집에 묻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김씨의 말을 믿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굴착기와 곡괭이 등으로 집 안 화장실과 부엌 바닥을 파는 소동을 벌였으나 아무런 흔적도 나오지 않았다. 실종된 아들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범인으로 몰린 종식군 아버지 김철규씨는 결국 화병을 얻었다. 그리고 2001년 10월22일 끝내 간암으로 숨졌다.

 

박찬인군의 집은 1992년 화재로 소실됐다. 아버지 박건서씨는 건강이 악화돼 올해 아들 추모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 나주봉 전미찾모 회장에게 “아들의 영전에 술 한 잔 올려 달라”고 부탁했다. 영규군 아버지 김현도씨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한 상태다. 호연군 아버지는 알코올성 치매로 건강이 좋지 않다.

 

이번 추모식에 유족 중 유일하게 참석한 철원군 아버지 우종우씨는 “유족들은 아들을 잃고 정신적·육체적으로 피폐해졌다”며 “생전에 진상이 규명될지 알 수 없다”며 씁쓸해했다. 

 

 

 

서울역 앞에서 대구 개구리소년 찾기 전단을 나눠주고 있는 가족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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