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後] 女비서는 출장도, 승진도 안 되나요?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8.04.1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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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식 논란의 희생양 ‘女비서’를 위한 변명

 

최근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이름이 세간에서 자주 거론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지지율까지 소폭 하락하는 정도니, 실로 논란이 큰 것 같습니다. 김 원장 논란을 보는 기자의 마음은 편하질 않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 또한 국회 의원실에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인턴 신분으로 해외 출장을 동행한 적이 있고, 야당의 주장대로 ‘초고속 승진’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김 원장을 둘러싼 논란을 요약해보면, 국회의원 시절 피감기관의 돈으로 외유성 출장을 다녀왔다는 점이 문제가 됐습니다. 인턴 신분의 여성 비서를 출장에 동행했고, 또 그는 7급 비서까지 초고속으로 승진 특혜를 받았다는 점입니다. 이 밖에 임기말 정치자금의 더좋은미래연구소 후원 문제, 수강료 수입 의혹 등이 불거졌습니다.

 

이 가운데 여성 비서에 대한 의혹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여성이라서 문제일까요, 인턴이라서 문제일까요. 기자는 앞서 언급했다시피 2009년부터 2011년까지 국회의 한 의원실에서 근무했습니다. 소수정당이었기 때문에, 거대 양당의 관행에선 조금 벗어나 있었습니다. 기자가 보좌했던 의원은 2010년 무렵 핵 반대 시민단체의 초청으로 일본 출장을 갔었고, 그곳에 동행했습니다. 현장에서 의원의 발언 내용, 일본 인사들과의 회담 내용 등을 기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침 8시에 일어나서 밤 10시에 회의가 끝날 때까지 눈코 뜰 새 없이 움직였습니다. 다시는 해외 출장을 같이 안 오겠다고 다짐할 정도였습니다. 인턴 신분이라고 해서 해당 업무를 처리하는 데 지장을 끼쳤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초고속 승진’이 드러낸 수직적 사고방식

 

국회의원 보좌진은 4급부터 9급, 인턴비서 등 수직적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를 운용하는 방식은 예전과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의원도 이젠 스스로 커피를 타 마시고, 9급 비서는 물론 인턴 비서도 소관기관을 맡아 직접 자료를 요청하고,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진보정당이나 시민단체 출신 정치인들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운영하는 의원들에게 김 원장의 사례를 물으니 한마디로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말합니다.

 

ⓒPixabay

초고속 승진 논란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자가 근무했던 의원실은 4급 보좌관부터 인턴 비서까지 호칭을 모두 ‘보좌관’으로 통일했습니다. 수직적인 구조를 수평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입니다. 정치자금법 위반 논란이 있을 순 있지만, 배 이상 차이나는 임금 또한 서로 모은 뒤 다시 재분배하는 구조를 거쳤습니다. 의원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들어갈 때부터 합의한 내용이기도 했고, 또 그게 옳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때문에 4급 보좌관이건 9급 비서이건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후원회를 관리하는 ‘女비서’나 회계담당자가 5급 비서관으로 등록돼 있기도 했습니다. 지역구에서 수행하는 분이 4급 보좌관으로 등록하기도 했습니다. 어디까지나 업무를 수월하게 처리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급수를 정리했을 뿐입니다.

 

김 원장을 둘러싼 논란의 특이한 점은 또 있습니다. 바로 ‘女비서’라는 걸 강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언론에서 이 같은 프레임을 더욱 짙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의 성별이 그렇게 중요했을까요.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처럼 ‘왜곡’하고 싶었을까요. 4월11일 오전, 보좌관들의 익명 게시판 역할을 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는 한 편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김 원장에게 제기되는 의혹을 바라보면서 “외유성 출장은 문제여도, 남자 인턴이었으면 이렇게 더러운 이야기를 들었을까”라며 “나는 앞으로 의원님과 업무상 출장 갈 일이 생겨도 이때의 기억을 떠올릴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다른 글쓴이도 “비슷한 승진 코스. 흔치는 않지만, 종종 있다. 평판 들어보니 일도 엄청 잘했다더라. 능력 출중한 석사 출신 직원 내부 승진시켜준 게 뭐 어때서 자꾸 이상한 눈으로 보느냐”고 공감했습니다. 

 

물론 김 원장을 변명하고 싶진 않습니다. 소관기관의 비용으로 해외 출장을 갔고, 그 출장 내용도 외유성이 짙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임기 말 후원금을 연구소로 후원한 내역 또한 정치권의 적폐에 가깝습니다. 때문에 김 원장의 그간 활동 문제 등을 차치하고서라도 그 직을 수행하는 데 문제제기는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턴이라고 해서, 여성이라고 해서 김 원장을 공격하는 데 빌미로 쓰여선 안 됩니다.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금융기관이 국민 경제의 윤활유 역할을 맡고 있지만 자칫 부실해질 경우 국민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안길 수 있습니다.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태 등으로 국민들은 큰 피해를 겪어야 했습니다. 2008년 세계적 투자은행인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발전됐습니다. 김 원장의 사퇴 여부와 무관하게 금감원장 자리에 앉은 인물은 금융감독의 기강을 확립해 어수선한 금융시장의 질서를 바로 잡는 역할을 해주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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