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지방선거, ‘찍는 즐거움’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4.25 10:28
  • 호수 1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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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는 총선과는 성격 다르다

 

서울의 한 구청에서 포스터를 하나 내붙였다. ‘2018 건강도시 프로젝트’라는 표제어에 ‘건강 실천 열 가지 일하자’라는 소제목이 붙은 이 포스터의 내용은 간단하다. 건강도시를 만들기 위해 ‘5 UP’과 ‘5 DOWN’을 실천하자는 것이다. ‘5 UP’에는 매사에 감사하기, 서로 배려하기, 나눔 실천하기, 건강한 관계 맺기, 일상 속 행복 찾기가 포함됐다. ‘5 DOWN’에는 몸무게 줄이기, 소금 섭취량 줄이기, 흡연과 음주량 줄이기, 에너지 사용량 줄이기, 쓰레기 줄이기가 들어 있었다.

 

열 가지 다 한결같이 좋은 얘기다. 구청이 구민들의 건강을 정말 지극히 챙기고 있구나 하는 느낌도 전해진다. 하지만 좋은 얘기가 누구에게나 다 반가운 것은 아니다. 자칫하다간 오지랖이 넓다는 불평을 살 수 있다. 사실 건강 실천을 위한 이 열 가지 메뉴는 전혀 새삼스럽지도 않다. 건강하려면 몸무게를 줄이고, 소금을 적게 먹어야 한다는 것쯤은 이제 거의 상식이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그런 단순한 내용을 꼭 비싼 포스터를 만들어서까지 해야 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이유다. 건강 실천 운동을 구청이 나서서 한다는 것도 난센스다. 이런 형태의 운동은 주민 자치회 같은 곳에서 주도하는 것이 옳다. 구청이 할 일은 건강 실천을 계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건강 실천을 잘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셀리아에는 특이한 규정이 하나 있다. 이른바 ‘사망 금지 조례’다. 조례의 명칭은 다소 험악하고 초법적으로 보이기까지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애틋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75세 이상의 노인이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지역적 특성에서 비롯한 고육지책이어서 그렇다. 의사 출신인 셀리아의 시장은 이 조례를 만든 데 대해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 주민들 스스로 건강을 챙기도록 하는 것이 기본 취지”라고 설명한다. 그 취지에 따라 셀리아시는 현재 주민들을 위한 보건센터와 이동 검진센터 등을 적극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주민들에게 건강하게 살자고 말하기 전에 주민 건강을 도울 시설과 인원을 앞서 늘리는 것이 행정기관으로서 해야 할 마땅한 일이다.

 

6·13지방선거를 50일 앞둔 4월24일 광주 남구 광주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시각장애인이 활동보조인 도움을 받아 점자가 새겨진 기구로 모의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방선거가 이제 5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지역마다 대진표가 속속 짜이면서 선거 열기도 조금씩 달아오르는 분위기다. 정치권이 지금 ‘드루킹 사건’ 등으로 팽팽히 맞서면서 죽기 살기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지만, 이 또한 지방선거를 의식한 주도권 싸움과 무관치 않다. 마음은 이미 선거라는 콩밭에 가 있을 것이 분명하다.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정치 지형이 크게 요동치리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 지역의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방의 선거일 따름이다. 의석수로 패권을 다투는 총선거와는 성격이 크게 다르다. 주민들은 이번 선거를 통해 정치적 입지를 더 다지려는 야심가를 원치 않는다. 주민들을 위해 마음을 더 써주고 주민들의 살림살이를 키워주는 등 뒷바라지를 잘할 집사 같은 인물을 바란다. 그러니 총선거도 아닌 지방선거에서까지 이념 공세를 펴는 데 눈살을 찌푸리는 것은 당연하다. 지역의 일꾼을 뽑는 선거에서 진영의 전사라도 되는 듯 독한 말을 쓰며 나서는 사람이 곱게 보일 리 없다.

 

주민들을 계도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섬길 대상으로 보는 사람을 각 정당마다 제대로 골라 대표 선수로 내보내야 주민들도 선거에서 ‘찍는 즐거움’을 제대로 맛볼 수 있다. 누구 말마따나 ‘깜’도 안 되는 인물이나 일꾼이 아닌 전사를 염치없이 후보로 내놓고 뽑아달라고 하는 것은 이만저만한 결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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