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구안와사(口眼喎斜)와 반위(反胃)
  • 김경원 세종대 경영대학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4.25 17:12
  • 호수 1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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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일자리 창출' 기능, 근본원인 치료가 우선돼야

 

구암(龜巖) 허준(許浚·1539~1615년)은 용천부사를 지냈던 양반의 아들이었으나 역시 양반이었던 어머니가 소실이었던 탓에 중인의 신분으로 태어났다. 서자임에도 어린 시절 좋은 교육을 받아 경전과 사서 등에 밝았지만, 아마도 과거를 볼 수 없는 신분의 한계로 인해 의학에 입문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늦은 나이인 삼십 살 무렵에 궁에 들어가 늦게야 입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뛰어난 의술로 곧 두각을 나타냈고,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의주까지 피신한 선조의 곁을 지키며 신임을 쌓았다. 선조 사후에 그 책임을 지고 잠시 유배를 가기도 했지만 그의 의술을 높게 산 광해군이 다시 중용했다. 광해군 치세 당시에 그의 일생의 역작인 《동의보감》을 저술해 남겼는데, 이 책은 지금도 동양 최고의 의서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이 인물이 오늘날 대중들 사이에서도 유명해지게 된 계기는 1976년 한 TV방송국에서 방영된 《집념》이라는 드라마일 것이다. 이은성이라는 작가가 상상력을 동원해 허준의 일생을 각본으로 그려냈고, 탤런트 김무생이 주연을 맡아 열연했다. 이은성 작가는 이 시나리오를 소설화해 1984년 11월부터 모 잡지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도중에 돌연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미완의 연재로 끝났으나 이 글들은 1990년 3권의 책으로 간행되었다. 이것이 바로 90년대 초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던 《소설 동의보감》이다. 이 소설은 이후 1991년, 1999년, 2013년 등 3번이나 다시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모두가 당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서인석, 전광렬, 김주혁이 주연으로 활약했는데 김무생과 그의 아들 김주혁은 같은 배역을 2대에 걸쳐 맡았다고 한때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필자는 이 4개 드라마와 원작 소설을 모두 보았다. 그런데 이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구안와사(口眼喎斜)’ 및 ‘반위(反胃)’에 걸린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었다. ‘구안와사’란 원래 ‘구안괘사’를 잘못 읽은 것이지만, 이 말도 이제는 표준말로 인정되고 있다. 한자의 뜻 그대로 입이 비뚤어지고 얼굴이 돌아가는 증상이다. ‘반위’란 위암을 이르는 말이란다. 선조가 총애하는 후궁 공빈의 남동생이 구안와사에 걸렸는데 다른 의원이 구안와사 증상을 치료해도 일시적으로만 증세가 좋아졌다. 이에 허준이 불려 들어가 치료하게 되었는데 허준은 이 증상이 근본적으로 ‘반위’, 즉 위암에 의한 것으로 진단했다. 그래서 구안와사보다는 반위를 치료했는데, 닷새 안에 못 고치면 손목 하나를 내놓아야 할 터였다. 이 기간이 거의 다 되고서야 반위가 치유되자 환자의 입과 얼굴도 돌아와서 허준은 손목이 잘릴 위기를 넘기게 된다. 이는 본디 픽션이겠지만 한의사에게 물어봐도 틀린 이야기가 아니라고 한다. 얼굴 근육은 곧바로 위장과 연결되어 있으니 실제로 위가 아프면 얼굴과 입이 틀어질 수 있단다.

 

요즘 고용 상황이 심상치 않다. 1분기 실업급여 수급자 수가 이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0년 이후 가장 많고, 취업자 수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지난해 세금을 23조9000억원이나 썼지만, 지난 3월 실업률은 4.5%로 3월 기준으로는 17년 만에 가장 높았다. 이는 혹시 ‘주식회사 한국’의 일자리 창출 기능이 어딘가 근본적으로 고장 났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도 당국은 금년에도 3조9000억원에 달하는 추경안을 내놓는 등 재정투입으로만 이를 해결하려는 것 같다. 이것은 마치 의사가 반위에 걸린 환자의 구안와사 증상에만 집착해 근본원인 치료는 뒷전으로 미루고 있는 모습과 같지 않나 걱정이 된다. 

 

 

취업자 수 증가폭은 줄고 실업자 수는 3개월째 100만 명을 웃도는 고용 악화가 계속되고 있다. 서울 중구 청년일자리센터에서 한 시민이 취업준비생들이 적어놓은 메시지 벽 앞을 지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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