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침묵의 살인자’ 라돈 유치원도 덮쳤다
  • 김종일·조유빈 기자·박소정 객원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8.05.04 11:13
  • 호수 1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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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유치원 225곳, 1급 발암물질 기준치 초과

 

200곳이 넘는 전국 유치원의 실내 라돈(Radon) 농도가 권고 기준치를 초과하는 것으로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시사저널이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협조를 얻어 교육부로부터 단독 입수한 ‘2017년 유치원 실내공기질 측정 결과’ 자료에 따르면, 전국 225개 유치원의 실내 라돈 농도가 권고 기준치를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총 조사 대상 4700여 곳 중 5%에 달하는 수치다. 라돈 농도가 기준치의 10배를 훌쩍 뛰어넘는 유치원도 발견됐는데, 상당수가 강원·충청 지역인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 유치원의 실내 라돈 수치가 조사돼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사저널은 앞서 제1486호에 ‘[단독] 침묵의 살인자, 당신의 아이를 노린다’ 기사를 통해 전국 408개 초·중·고교의 실내 라돈 농도가 권고 기준치를 초과했다는 내용을 보도한 바 있다.

 

이번 조사에 4200여 곳이 넘는 사립유치원의 라돈 농도 결과는 빠졌다. 전국 사립유치원의 라돈 농도는 작년에 측정됐지만 교육부가 아직까지 측정 결과를 취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데이터를 확보할 수 없었다. 당연히 교육부는 아직 유치원 라돈 문제의 입체적인 실태 파악은 물론이고 부처 차원의 대책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 일러스트 오상민


 

WHO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 라돈

 

라돈은 세계보건기구(WHO)가 폐암 발병의 주요 원인물질로 규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토양이나 암석 등에 존재하는 자연방사성 가스인 라돈은 건물 바닥이나 벽의 갈라진 틈 등을 통해 실내로 유입된다. 밀폐된 공간에서 고농도 라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폐암 등에 걸릴 수 있어 ‘침묵의 살인자’라고 불린다.

 

교육부는 2016년 9월1일 개정된 ‘학교보건법 시행규칙’에 따라 2017년 사실상 최초로 전국 모든 유치원을 대상으로 라돈 점검에 나섰다. 지금까지 교육 당국은 라돈이 공기보다 무거워 바닥에 깔리는 특성이 있다고 판단해 원생들이 거의 활동하지 않는 지하 1층을 측정 대상으로 삼았다. 지난해부터 지상 1층 이하 교실로 점검 대상이 확대됐다. 즉 유치원의 라돈 점검은 사실상 작년에야 비로소 이뤄진 것이다.

 

환경부는 현재 ‘다중이용시설 등의 실내공기질관리법’에 의거해 학교 실내 라돈 기준치를 148베크렐(Bq)/㎥로 정하고 있다. Bq/㎥은 공기 중 라돈의 농도를 표현할 때 사용되는 단위로, 148Bq/㎥이란 공기 1㎥ 중에 라돈 원자가 148개 떠다닌다는 뜻이다. 148Bq/㎥은 미국의 기준을 준용한 것이다. 독일은 100Bq/㎥, 영국·캐나다·스웨덴은 200Bq/㎥ 이하의 기준을 규정하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이 라돈 권고 기준치를 초과한 유치원이 있는 곳으로 조사된 지역은 강원도다. 권고 기준치를 초과한 225곳 중 99곳(44%)이 강원도였다. 뒤 이어 충북 47곳(20.8%), 충남 41곳(18.2%) 등 라돈 권고 기준치를 초과한 학교가 상당수 조사됐다. 고농도 라돈이 검출된 유치원의 80% 이상이 강원·충청 지역에서 나왔다. 전북(9곳·4%), 경북(7곳·3.1%), 전남(6곳·2.6%), 울산(5곳·2.2%), 경기(4곳·1.7%), 대전(3곳·1.3%) 등이 뒤를 이었다. 서울·광주·경남·세종에서는 각각 1개 유치원에서만 기준치 이상의 라돈이 검출됐다.

 

전국에서 가장 많이 기준치를 초과한 유치원은 강원 태백에 위치한 미동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었다. 2034.3Bq/㎥로 기준치의 14배에 달했다. 두 번째로 가장 많은 라돈이 검출된 유치원도 강원 태백의 통리초 병설유치원(1793.3Bq/㎥)이었다. 강원 춘천 당림초 병설유치원(1485.6Bq/㎥), 강원 인제 월학초 병설유치원(1010Bq/㎥) 등에서도 1000Bq/㎥ 이상의 라돈이 나왔다. 교육부가 실질적으로 저감 관리를 진행하는 수치인 600Bq/㎥이 넘는 총 14개 유치원 가운데 12개가 강원 지역에서 나왔다. 충북 제천 화당초 병설유치원(840Bq/㎥), 경기 용인 백봉초 병설유치원(833Bq/㎥) 등에서도 고농도 라돈이 나오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역별로 강원·충청·전북 등에서 상대적으로 고농도 라돈이 검출된 이유는 이들 지역이 라돈 가스를 배출하는 화강암 지반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또 화강암 지반대에서 나온 토양과 암석을 건축자재로 써 라돈에 노출됐을 가능성도 있다. 목재로 된 건축 자재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교육부는 “교실 바닥이 목재 재질인 유치원에서 상대적으로 고농도 라돈이 배출되고 있다”며 “토양에서 발생한 라돈이 교실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라돈은 얼마나 위험할까. WHO는 모든 폐암 환자 가운데 약 3~14%가 라돈 때문에 병을 얻은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환경보호청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연간 음주운전으로 사망하는 사람 수보다 라돈으로 인한 폐암으로 사망하는 수가 많다. 국내도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강철구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국립환경과학원의 라돈 실태조사 자료 등을 토대로 낸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폐암 사망자의 12.6%는 실내 라돈이 원인이었다. 강 연구위원은 “주택 실내 라돈 농도 조사치와 연도별 폐암 사망률을 연관 분석해도 라돈 농도가 높은 곳이 폐암 사망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권고 기준치 14배 초과한 유치원도

 

그렇다면 라돈은 어린아이들에게 얼마나 더 위험할까. 라돈에 대한 연구가 이제 막 걸음마 단계라 인과관계가 명확한 데이터를 구할 수는 없었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분명하게 같았다. ‘어릴수록 라돈 노출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강건욱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는 “어린 학생일수록 라돈 노출에 취약할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의 경우 라돈 노출의 피해 가능성은 더 높다”고 우려했다. 임종한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는 “라돈에 한 번 슬쩍 노출된다고 해서 다 암 발생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면서도 “어릴수록 라돈과 같은 외부 발암물질에 노출됐을 때 암 발생 위험도는 훨씬 높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특히 임 교수는 “우리 몸에는 암에 대한 면역력이 있는데 아이들은 이게 충분히 발달돼 있지 않다”고 걱정했다. 그는 “방어체계가 다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라돈에 노출되는 것은 넋 놓고 있는데 얻어맞는 것과 같다. 준비가 안 됐는데 얻어맞으면 정신없는 것처럼, 어린아이들이 라돈에 반복적으로 노출된다면 리스크는 그만큼 올라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조승연 연세대 환경공학부 교수는 어릴수록 라돈 흡수율이 높아 장시간 노출되는 유치원 내 라돈은 특히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조 교수는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신진대사도 빠르고 흡수율도 높다”며 “흔히 어린이·여성·노인을 민감 계층이라고 하는데, 라돈이든 미세먼지든 민감 계층들이 주로 사용하는 시설들은 특별히 강화해 관리하게 돼 있다. 당연히 유치원 내 라돈은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조 교수는 “라돈 적정 권고기준(148Bq/㎥)의 위험성은 하루 담배 8개비를 피우는 것과 같다”며 “국내외 여러 실험을 통해 라돈의 발암성은 이미 확인된 만큼 어린 학생들이 있는 곳의 라돈 관리는 엄격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교육 당국의 대처는 전문가들의 우려와는 차이가 있다. 웬만한 고농도 라돈도 아이들의 건강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 보니 라돈에 대한 조사나 대책도 학부모의 마음과는 적잖은 차이가 있었다. 일단 교육부는 유치원의 라돈 농도를 ‘전수조사’하지 않았다. 교육부는 초등학교와 같은 건물에 병설유치원이 있는 경우 유치원이 아닌 초등학교 교실에서 라돈 농도를 측정하고, 그 측정값을 유치원의 라돈 값이라고 상당수 적용했다. 즉 현재 교육부가 확보한 유치원 라돈 농도 데이터는 실제 유치원의 라돈 농도보다 높거나 낮을 수도 있는 셈이다.

 

더욱이 교육부는 4282개 사립유치원의 라돈 농도는 아직까지 취합도 하지 못했다. 교육부 유아교육정책과 관계자는 “사립유치원의 라돈 조사가 완료됐는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며 “각 시·도교육청에 5월 중순까지 측정 결과를 제출해 달라고 요청은 해 놓았다”고 말했다. 사실상 교육부 스스로 사립유치원의 라돈 관리는 사각지대에 있다고 밝힌 것이다.

 


 

교육부의 ‘눈 가리고 아웅’식 대응

 

더 큰 문제는 라돈에 대한 교육부의 안이한 인식이다. 학교보건법에 따르면, 학교와 유치원 교실에 대한 라돈 농도 기준치는 148Bq/㎥인데, 600Bq/㎥을 넘길 경우에만 시간대별로 정밀점검하는 2차 측정을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설개선 등 저감 조치도 600Bq/㎥이 넘을 때만 실시한다. 전문가들은 라돈 농도 600Bq/㎥이 하루 담배 두 갑 정도를 피우는 흡연자의 폐암 발생 위험도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지적한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1차 측정 시 600Bq/㎥ 이상 나오는 경우에만 실제 원생들이 생활하는 시간대에 라돈 농도가 기준치인 148Bq/㎥을 넘긴다는 주장이다. 1차 측정 방식은 라돈 농도를 측정할 수 있는 시료 채취기를 90일 이상 놓고 그 평균값을 낸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 평균값에는 원생들이 없는 밤이나 휴일의 라돈 농도까지 가중돼 평가된다”며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에 따르면, 평균값이 600Bq/㎥ 이상 나와야 실제 원생들이 있는 시간대에 라돈 농도가 148Bq/㎥ 정도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런 교육부의 설명은 얼마나 아이들의 안전을 보장할까. 국책연구기관인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2014년 발표한 ‘라돈의 실내 공기질 규제에 따른 위해저감 효과 및 건강편익산정’ 보고서에 따르면, 148Bq/㎥이라는 라돈 권고 기준치를 200Bq/㎥로 상향 조정할 경우 연간 폐암 사망자는 325명 더 증가할 수 있다. 교육부의 기준치 600Bq/㎥은 얼마나 더 많은 피해를 야기하게 될까.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작년 국정감사에서 이런 부분을 지적한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유치원 교사는 시사저널에 먼저 연락을 취해 “교사 입장에서도 어느 기준에 맞춰서 대책을 짜야 하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시사저널은 정확히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 대한 건강 관리기준을 이렇게 느슨하게 잡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교육부가 뒷짐만 지고 있으니 일선 현장에서는 막연한 공포심에 공기청정기만 계속 사다 놓게 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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