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2012년 “결단력 유약” 2017년 “준비된 후보”
  • 동성혜 경기대 정치학 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5.08 09:58
  • 호수 1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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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1주년] 대선 白書를 통해 본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달라진 평가

 

선거 과정을 기록하는 것은 하나의 결과이자 동시에 또 다른 결과물을 낳기 위함이다. 현재 결과에 대한 기록물이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디딤돌이기 때문이다. 또한 선거라는 정치적 큰 경험을 하고도 기록하지 않는다면 무용담에 불과하다. “내가 선거판에서만 20년을 보내 분위기만 봐도 안다”거나 “유권자와 악수할 때 손아귀에 들어가는 힘을 보고 이미 선거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다”는 허무맹랑함처럼 말이다.

 

특히 대통령 선거캠페인은 당시 국민이 요구하는 시대정신과 기술의 발전, 마케팅 전략이 모두 응축된 축제의 장이다. 이른바 ‘막걸리선거’ ‘체육관선거’로 불렸던 불법선거가 판을 치던 흑역사도 있었지만 투표를 통한 평화로운 정권교체 이후엔 선거캠페인이 다양해졌다. 인터넷을 통한 선거운동을 넘어 최근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마이크로 전략지도까지 발전 속도가 빠르다. 이렇게 선거기획부터 조직, 선거캠페인과 결과에 대한 평가까지를 망라해 선거 과정을 모아 분석한 게 ‘선거백서’다. 승자에겐 권력의 정당성을, 패자에겐 ‘와신상담’의 기회를 되새기게 하기 위해서다.

 

대한민국 대통령선거에서 ‘선거백서’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87년 제13대 선거다. 물론 국회의원 선거까지 포함해 따져본다면 1967년 8월 신민당에서 6·8부정선거를 규탄하며 발표한 《6·8부정선거백서》가 첫 등장했다. 1987년 13대 대선은 1971년 제7대 대통령선거 이후 16년 만에 치러진 직선제 선거로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가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후보를 194만5157표 차이로 꺾고 당선됐다. 당시 선거백서는 《6·8부정선거백서》처럼 노태우 후보의 당선을 불법선거로 단정한 ‘부정선거백서’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운데)와 우원식 원내대표(오른쪽) 등이 2017년 9월29일 국회에서 열린 제19대 대통령선거 백서 발간시연회에서 백서를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1987년 직선제, ‘부정선거백서’ 등장

 

부정선거백서는 야권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3위를 차지한 김대중 후보의 평화민주당이 《조작된 승리를 고발한다》는 제목으로 1988년 1월 발간했다. 김대중 후보는 발간사에서 “엄청난 부정의 정체를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폭로하는 데 있다”면서 “역사에 고발하여 후세에 진실의 일부나마 남기겠다는 충정에서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부정선거백서를 만든 더 큰 의도가 있었다. 김 후보는 “정부와 여당은 야권의 단일화 실패가 패배의 원인이라는 방향으로 몰아붙이고 있다”며 “부정을 저지른 범죄자보다 어떻든 부정 때문에 피해를 입은 야당 측이 더 많이 비판을 받고 있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고 분석했다. 13대 국회의원 선거를 3개월 앞둔 정치상황에서 ‘야권 단일화 실패’로 문민정부를 탄생시키지 못했다는 국민들의 비판적 시선을 정면 돌파하고자 한 것이다.

 

1992년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와 민주당 김대중 후보가 겨뤘던 14대 대선에서의 백서 역시 야당이 된 민주당에서 발간했다. 이번엔 ‘용공음해백서’로 이름을 붙였다. 민주당 용공음해 대책위원회 위원장인 김상현 최고위원은 머리말에서 “이번 선거 결과를 겸허한 심정으로 받아들인다”면서도 “결과 수용과는 별개의 차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고 밝혔다. 민자당과 김영삼 대통령 당선자가 용공·빨갱이 등 색깔론을 들고나왔다는 것이다. 김상현 최고위원은 “집권당과 그 주변의 용공음해는 정권연장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한 군사문화에서 배태된 것”이라며 “가장 비열한 선거 관행”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용공음해백서’는 역대 대통령선거와 관련된 대표적인 용공음해 사례도 정리했다. 초대 대선 후 김구 선생의 암살 사건에서 나타난 ‘색깔론’, 5대 대선에서 윤보선 후보가 박정희 후보의 여순반란 사건 관련설을 제기하며 주장한 ‘색깔론’, 7대 대선에서 박정희 후보가 김대중 후보의 안보 공약을 공격하며 제기한 ‘색깔론’, 11대 대통령선거전에서 전두환 군사정권이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빌미로 김대중 후보에게 용공혐의를 씌워 사형을 선고했던 내용, 13대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가 김영삼·김대중 후보 모두를 향해 ‘민주화 구호로 위장한 채 폭력혁명을 꿈꾸어온 좌익 폭력세력’으로 몰았던 ‘색깔론’ 등이다. 이외에도 백서는 민자당의 14대 대선 용공음해 선거전략과 용공음해 사례를 다루면서, 국가보안법과 안기부법 등 반민주적인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점과 정책 대결을 중심으로 하는 선진 선거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당선인 인사말 없는 17·18대 백서

 

1997년 제15대 대선은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맞붙어 39만557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됐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선거에 의한 여야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뤄낸 선거다. 또한 DJP(김대중·김종필)연합,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 의혹, 이인제 독자출마, 이회창·조순 연합 등 선거 과정에서 굵직굵직한 이슈들로 막판까지 결과를 쉽사리 예측할 수 없었던 치열한 선거였다.

 

15대 대선에선 여당이 된 새정치국민회의가 선거백서를 발간했다. 여당이 백서를 발간한 것은 15대가 처음이다. 김대중 당선자는 머리말에서 “15대 대통령선거 백서는 결코 여야 간 정권교체가 꿈이나 신화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염원하던 국민들과 우리 당원동지들이 흘린 땀과 눈물의 결실이었음을 증명해 줄 것”이라고 백서의 의미를 밝혔다. 재밌는 점은 김 당선자가 “TV를 통해 국민은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선거를 할 수 있었고,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직접 국민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며 미디어 발달에 따른 정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 의미를 부여키도 했다는 것이다. 백서는 대선 평가와 정권교체의 의미, 선거 결과 분석, 위원회별 활동 및 평가, 주요 자료, 선거구별 득표현황 등으로 구성됐다. 최근 선거백서의 기틀이 여기서부터 출발한 셈이다.

 

2002년 16대 대선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다시 도전했지만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에게 2.3%포인트 차이로 또 한 번 패배의 쓴잔을 들었다. 16대 대선은 국민 참여 경선제도 도입, 인터넷 선거,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와 지지철회 등 선거 과정에서 반전과 반전을 거듭해 ‘대한민국에서 치러진 대통령선거 중 가장 드라마틱하고 기적 같은 역전승’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16대 대선백서가 기존과 결을 달리하는 것은 여당과 야당이 모두 백서를 발간해 장외 ‘맞불전’을 펼친 점이다. 물론 야당은 여전히 부정선거백서를 발간했다. 한나라당은 ‘선거법도 선관위도 없었다’는 제목으로 부정선거백서를 발간했는데, 노무현 후보의 팬클럽인 ‘노사모’의 지원 선거운동, 후원금 모금이었던 ‘희망돼지’ 저금통 분양,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과정에서의 TV토론회 등을 모두 선거법 위반과 부정선거라고 규정했다. 내용 역시 부정선거 주요 형태로 김대중 정권의 공작정치, 노사모의 불법선거운동, 불법한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 방송사의 편파보도, 불공정한 선거관리 행정 등 사례 위주로 다뤘다.

 

반면 노무현 당선인은 백서에서 “이번 선거는 무엇보다 ‘돈 안 드는 선거’의 본보기였다”면서 “TV토론 등 미디어선거가 정착되면서 군중을 동원하는 조직선거는 모습을 감추었고 무엇보다 인터넷을 통한 쌍방향 정치가 활성화되면서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낡은 정치를 새로운 정치로 바꿔나가는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졌다”고 높게 평가했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듯 내용도 과거와 미래의 대결이라는 주제의 좌담회, 새 정치와 낡은 정치 사례 소개, 미디어와 인터넷선거를 별도로 뽑아 정리했다. 또한 당 홈페이지에 올라온 국민들의 참여 선거운동 이야기를 세세하게 소개해 최근의 흐름으로 표현하자면 대선 승리에 대해 ‘스토리텔링’을 입혔다.

 

2007년 17대 대선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압도적으로 눌렀다. 2012년 18대 대선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3.53%포인트 차로 눌렀다. 17대와 18대 여당의 선거백서는 기존 보고서 형식의 판형에서 일반 책자로 바뀌었다. 내용도 기존과 다른 형식으로 접근했다. 17대 여당이 된 한나라당은 미디어홍보단이 《대통령 후보를 사선에 올려라》라는 제목으로 기존의 선거백서가 아닌 미디어 홍보에 초점을 맞춰 발간했다. 이명박 후보의 이미지 광고였던 ‘욕쟁이 할머니’ 광고편을 시작으로 선거홍보 전략, 선거 과정에서의 오프라인 홍보전, TV토론회, 뉴미디어 광고까지 ‘선거 커뮤니케이션’에 초점을 맞춰 집필했다. 18대 여당인 새누리당은 박근혜 당선인의 대선 출마선언부터 당선인이 된 과정까지 후보자의 리더십과 장점, 선거조직의 핵심 본부장들 인터뷰를 통한 후보자 평가 등 철저히 후보자 위주로 꾸몄다. 17대와 18대 백서의 공통점이라면 당선인 인사말이 없다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평화민주당이 1988년 1월 발간한 대선 백서 《조작된 승리를 고발한다》 © 동성혜 제공


 

19대 탄핵 대선, 보수당은 백서 부재

 

17대 선거 패배로 야당이 된 통합민주당의 선거백서는 경과보고, 중앙선대위 활동 및 평가 등 기존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18대에서 연이어 야당이 된 민주통합당은 백서의 방향을 패배 원인 분석과 향후 민주당의 진로에 초점을 맞췄다. 야권연대와 후보단일화 결과의 실패 원인은 당내 계파패권주의로 적시했다. 문재인 후보를 향해선 ‘정치역량과 결단력이 유약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때문에 당시 민주당의 주류였던 친노무현계가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2017년 19대 대선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다당구도, 보수표심 다변화 등 정치 환경의 근본적인 변화에서 치러졌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압도적으로 누르고 당선됐다.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나라를 나라답게》라는 제목으로 선거백서 발간은 물론이고, 국민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 아래 한국 정당 사상 최초로 전자책으로도 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정권교체는 촛불이 우리 당에 내린 준엄한 명령이었다”며 “이 백서는 승리의 완성을 담은 기록물이 아니라 더 나은 승리, 더 나은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우리 모두의 다짐이다”라고 이른바 ‘촛불정신’에 의미를 부여했다. 백서는 자체 평가를 종합해 대선 승리의 5대 요인으로 촛불민심과 당의 결합, 안정적으로 준비된 후보, ‘당 중심’의 효율적 운영, 당내 훌륭한 경선 후보군의 존재, 전략·정책·홍보·조직의 전반적 승리로 요약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과 지난 대선에서의 패배 원인 등을 담은 백서를 발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사실상 준비조차 없었다. 전신인 새누리당에서 나온 바른정당 역시 백서를 내지 못했다. 대선에서 3위를 차지한 안철수 후보의 국민의당은 백서 공개 여부를 놓고 논란을 벌이기도 했다. 가까스로 공개된 백서엔 안철수 후보의 사조직 중심 캠프 운영과 당 캠프 자체의 부족한 역량을 패인으로 꼽았다. 18대 통합민주당이 대선 실패 원인을 ‘당내 계파패권주의’ 때문이라고 짚은 것과 유사했다. 또한 안철수 후보에 대해 “정책에 대해 철학이 부재했고 가치도 내용도 없는 ‘중도’를 표방함으로써 적폐청산에 반대한다는 이미지, 대안 없는 비판만 했다”고 가차 없이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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