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희 “프로스포츠 선수, 늘 몸가짐 조심해야”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18.05.08 15:45
  • 호수 149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프로스포츠 부정 방지 활동’ 강동희 前 원주 동부 감독

 

불법 스포츠 도박 시장이 날로 커지고 있다. 불법 스포츠 도박은 그 자체로도 폐단이 크지만, 가장 큰 폐단은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승부 조작’이다. 불법 도박업체를 운영하는 특정인들이 프로스포츠 선수들에게 접근하고, 조작할 결과를 미리 알고 돈을 걸어 큰돈을 거둬들이는 수법이다.

 

과거 프로스포츠는 승부 조작 사태로 큰 홍역을 앓았다. 특히 인기도가 높은 종목인 야구·농구·축구·배구는 모두 승부 조작 사태를 겪었다. 이 와중에 큰 충격을 준 사건 중 하나가 바로 2013년 검찰수사로 세간에 알려진 프로농구 승부 조작 사건이다. 당시 사건의 피의자로 한국 농구계의 전설적인 선수 출신 감독인 강동희씨가 지목되면서 파문이 크게 일었고, 강 전 감독은 프로농구협회에서 제명당했다. 강 전 감독은 2013년 8월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뒤 현재는 스포츠 관련 활동과 봉사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시사저널은 5월2일 강 전 감독이 활동하는 인천 지역 스포츠단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인터뷰했다. 2016년 프로스포츠협회의 부정방지 교육에도 나선 바 있는 강 전 감독은 “승부 조작 유혹은 아주 은밀하고, 쉽게 온다”며 “한번 빠져들면 절대 헤어날 수 없으니 프로선수들은 몸가짐을 늘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2013년 검찰수사로 2011 시즌에 승부 조작에 가담했다는 판결이 있었다.

 

“불법 스포츠 도박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던 시절이었다. 잘 아는 후배와 함께하는 술자리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이들이 나에게 ‘해외에서 베팅하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경기를 전망할 정보가 좀 필요한가 싶었다. 마카오에 스포츠 도박 시장이 있는데, 여기 놀러 가서 한국에서 일어나는 경기에 베팅할 것이라고 하더라. 승부 조작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2011 시즌에 승부 조작을 한 것으로 지목됐다. 당시 직후에 프로축구 승부 조작 사태가 있었다.

 

“그 사건을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심적으로 굉장히 힘들고 무서워지더라. 그래서 곧바로 변호사와 상의하고 나에게 돈을 건넸던 후배에게 다시 돈을 돌려줬다. 내 사건이 터지기 전에 프로농구에는 승부 조작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브로커들이 어떻게 접근했나.

 

“10년 이상 알던 동생을 통해 제안이 들어왔다. 망설임은 있었지만 불법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 어차피 플레이오프 준비를 위해 주전을 빼야 하는 시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문제 없다는 생각이었다. 스스로 합리화했던 거다. 게다가 자기들이 알아서 하겠다는 말에 별 문제의식이 없었다.”

 

 

‘주전을 빼라’는 제안을 직접적으로 한 것인가.

 

“아니다. 플레이오프 진출이 결정된 상황이라 언론 인터뷰에서 ‘주전들을 쉬게 할 것’이라고 공표한 적이 있었고, 그대로 한 것이었다. 조작 제안이 들어왔을 때도 ‘시스템상 원하는 결과가 나올 수 없다’고 분명히 얘기했다. 농구 경기는 감독이 직접 ‘지라’고 지시하지 않는 이상 결과를 알 수 없다. ‘주전 멤버를 쉬게 하는 것은 모두가 아는데 대체 누가 베팅을 하겠냐’고 해도 알아서 하겠다고만 하더라. 문제는 내가 그들에게 돈을 받은 부분이었다. 당시 내 연봉에 비하면 매우 적은 돈이었는데, 받는 게 아니었다. 지금도 후회된다.”

 

 

2016년에 부정방지 교육 강사 활동도 했다. 당시 행동에 대한 반성인가.

 

“맞다. 당시에 내게 문제의식이 없었지만, 정규리그 끝났을 때도 마음 한구석에 가시처럼 남아 있었다. 이런 돈을 받으면 안 된다는 두려움이었다. 2011 시즌에 내 사건이 벌어진 이후 축구와 배구, 야구 등 프로스포츠에서 승부 조작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돈을 돌려준 뒤 협박까지 받으니 더욱 힘들었다.”

 

 

어떻게 협박을 당했나.

 

“변호사를 통해 받은 돈을 모두 돌려주면서 ‘이 돈은 조작의 대가로 받은 것이 아니다’고 전했다. 빠져나가려고 한 것이었다. 당시 10kg 정도 살이 빠졌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나에게 조작을 제안했던 후배는 약점을 잡고 계속 돈을 요구했다. 2012~13 시즌이 시작되자 전라도 억양의 전화가 걸려왔다. ‘엊그제 우리가 당신 팀 경기에 베팅했는데 졌으니 당신이 돈을 물어내라’고 했다. 그래서 ‘난 이제 상관없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계속 돈을 물어내라고 하더라. 그래서 ‘검찰에 가서 자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는 못한다’고 했다. 정말 자살하고 싶은 심정이 뭔지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약점을 잡아 사람을 괴롭힐 수 있다는 것은 당시 처음 깨달았다. 그해 정규리그가 시작된 이후에는 전화가 너무 많이 왔다. 시즌 내내 너무나 힘들게 보냈다. 나에게 승부 조작을 요구했던 이들은 경찰에 쫓기면서도 ‘변호사비가 필요하니 경기 조작을 해 달라’고 또 요청했다. 협박성 요구들이 시즌 끝날 때까지 지속됐다.”

 

강동희 전 프로농구 원주 동부 감독의 현역 선수 시절 © 연합뉴스


 

프로스포츠의 승부 조작 문제는 예전보다 줄긴 했지만 아직도 가끔 등장한다.

 

“프로스포츠 부정방지 교육에서 후배들에게 조언해 준 것은 모든 사건은 주변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이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운동선수라 하더라도 모르는 사람이 승부 조작을 하자고 제안한다면 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인을 통해 술자리를 갖는 방법으로 접근해 온다. 선수 출신이 브로커 역할을 하거나, 사업가를 소개해 준다면서 자리를 같이한 뒤 제안이 들어온다. 제안도 진지하게 들어오지 않는다. 용돈을 몇 번 주면서 ‘이것 하나만 해 줘’하는 식이다. 그러니까 아무 생각 없이 가벼운 마음에 해 준다고 하게 된다. 어려서부터 교육이 안 됐던 것이다. 500만원이나 300만원에 자기 선수 생명을 바꿀 사람이 누가 있겠나. 사례를 통한 교육이 필요했는데, 나는 그런 물의를 빚은 적이 있어 내 경험을 후배들에게 얘기해 주고 싶었다. 의리와 인정에 얽매이다 그렇게 된다. 한순간에 넘어갈 수 있다.”

 

 

강연에서 어떤 조언을 하나.

 

“그들의 접근 방식이나 당했을 때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조언한다. 절대 빠져나올 수 없고, 모든 것을 잃을 때까지 괴롭히는 구조라고 말해 준다. 주변 사람에 대해서도 잘 판단하라고 한다. 또 만약 부정적인 제안이 들어왔을 경우에는 무조건 주변에 알리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 혼자 알아서 처리하려 하다 보면 큰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 나는 이런 사건을 겪은 사람이라 내 말이 더욱 큰 조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사례를 통해 후배들에게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 승부 조작을 제안하는 이들은 칼만 들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상 살인자나 마찬가지다. 이런 일에 대해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 

 

관련기사

‘80조짜리 타짜판’ 된 불법 스포츠 도박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