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Insight] 北 보도일꾼들 진땀 빼고 있다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북한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5.11 10:14
  • 호수 1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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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방송 영웅 리춘희 어이없는 방송사고…김정은 광폭 외교에 매체들 적응 못해

 

북한 관영 선전매체들은 실수가 없기로 유명하다. 신문의 오탈자나 편집, 사진설명의 잘못 등이 나타날 경우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방송의 경우 말실수나 돌발 상황으로 인한 부담 때문에 좀체 생중계를 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4월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장면이 전 세계에 생중계로 제공되면서도 북한에선 철저한 편집을 거친 뒤 주민들에게 방영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체제 특성상 이중 삼중의 철저한 확인과 검열 작업이 이뤄지는 것도 문제 발생의 소지를 거의 원천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배경이다. 특히 ‘김일성’이나 ‘김정일’ ‘김정은’처럼 오탈자가 생겼다가는 봉변을 치를 수 있는 글자의 경우는 아예 단축키를 이용해 자동 입력되도록 하는 등의 조치도 취해 놓았다. 이 같은 이름의 경우엔 세 글자가 모두 한 행에 자리하도록 해야 하고 출판물에선 눈에 돋보이도록 굵은 글자체를 써야 한다.

 

리춘희 조선중앙TV 아나운서는 2차 북·중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시진핑의 환대에 고마움을 표시한 대목을 소개하다 말을 더듬기도 하고 같은 문장을 두 번 읽는 등 실수를 저질렀다. © MBC 캡처


 

2차 북·중 정상회담 보도 ‘같은 글’ 두 번 읽어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듯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꽤 오래전의 일이긴 하지만 이른바 ‘최고 존엄’이라고 내세우는 수령의 권위를 훼손하는 대형 방송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김일성 사망 추모 보도 과정에서 그만 ‘김정일 서거’로 잘못 언급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김정은 국무위원장 관련 보도에서 북한 관영 조선중앙TV가 거듭되는 실수를 한 장면이 포착돼 관심을 끌게 했다. 지난 5월7일부터 이틀간 이뤄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중국 방문 소식을 전한 보도에서 북한의 베테랑 아나운서 리춘희가 진땀을 빼는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김정은이 다롄(大連)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후 평양으로 귀환한 5월8일 밤 8시 조선중앙TV는 회담과 오·만찬, 바닷가 산책 장면 등을 담은 영상과 함께 관련 보도를 내보냈다.

 

이 과정에서 리춘희는 지난 3월말 김정은의 중국 첫 방문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과정에서 보였던 것과 달리 실수를 연발했다. 그는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시진핑의 환대에 고마움을 표시한 대목을 소개하다 “(회담 일정을) 세심히 조직하셔준 데 대하여 감사의 뜻을 표…하셨습니다”라며 말을 더듬기도 하고 호흡이 불안정한 모습을 드러냈다. 심지어는 같은 문장을 두 번 읽는 등의 이해할 수 없는 실수까지 저질렀다. 리춘희가 “조·중(북·중) 최고위급 상봉의 훌륭한 전통을 소중히 여기고, 조·중 최고위급 상봉의 훌륭한 전통을 소중히 여기고…”라며 당혹해하는 장면이 그대로 북한TV 화면에 노출됐다. 김일성과 김정일 등의 동정만을 전담해 보도해 온 46년 차 베테랑 아나운서의 어처구니없는 실수 연발이었다.

 

이날 리춘희는 전과 다른 모습을 드러냈다. 분홍색 치마저고리 차림의 모습은 그대로였지만 금테 안경을 쓰고 나온 건 처음이었다. 머리도 예전보다 헝클어진 상태였고 분장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로 보인다는 게 북한 TV를 모니터하는 대북부처 관계자의 귀띔이다. 방송내용을 숙지하지 못한 듯 원고에서 줄곧 눈을 떼지 못하는 장면도 드러났다. 단정하고 근엄한 자세로 방송 원고를 읽어 내려가던 이전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 같은 모습은 2시간 후인 오후 10시 보도에서 바로잡혔다. 북한도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 다시 방송내용을 녹화해 방송을 내보냈다. 원고를 숙지한 듯 차분하게 카메라를 응시하며 읽어 내려갔고, 한결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안경도 벗은 상태였고 헤어스타일과 옷차림도 예전처럼 단정했다. ‘노력영웅’ 칭호까지 받은 방송인 리춘희가 이런 모습을 보인 것을 두고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은 김정은 위원장의 외교행보가 워낙 전격적이고 스피드 있게 진행되다 보니 북한 보도일꾼들이 진땀을 빼고 있는 것이란 진단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북한 선전·선동 기관들이 적응에 애를 먹고 있는 것이란 얘기다. 이번 해프닝도 김정은의 급작스러운 중국 방문과 귀환 과정을 담은 영상 등을 8시 TV뉴스 시간에 맞춰 내보내려다 보니 구멍이 뚫린 것이란 분석이다.

 

이 같은 정황은 4월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나타났다. 당시 판문점 북측 판문각을 나온 김정은 위원장이 중립국감독위 건물 쪽으로 이동해 도보로 군사분계선을 넘고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다는 동선은 한국과 외신들에 직전에 공지됐다. 이에 맞춰 방송카메라와 근접 풀 기자단 등이 배치됐다. 하지만 현장 취재를 나온 북한 기자들은 김정은이 어디서 나타나 어떻게 이동할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이들이 우리 기자들에게 관련 사항을 물었고, 함께 있던 청와대와 경찰 경호인력이 북측에 “그것도 모르고 취재를 나왔나”라며 의아해하거나 핀잔을 주는 듯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김여정, 유튜브 통한 김정은 체제 홍보 적극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 체제 들어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을 통한 선전·선동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이 신문의 경우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PDF 형태의 지면보기로 접할 수 있다. 관영TV를 통한 대내·대남 선동에 신경을 쓰는 징후도 드러난다. 2015년엔 HD(고화질)급 위성방송을 시작했고, 가상스튜디오를 활용한 프로그램도 등장시켰다. 북한은 TV방송에 각별한 공을 기울여왔다. 우리보다 무려 6년이나 앞선 1974년 컬러TV 방송을 시작했다는 점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통치 이데올로기 전파나 우상화에 TV가 유용하다는 걸 간파했기 때문이다.

 

김정은 관련 영상의 경우 북한 TV를 통해 공개하는 게 원칙이지만 이후 유튜브 등을 통해 선전하고 확산되도록 하는 데도 신경을 쓰고 있다. 김정은 체제가 집권 7년 차에 접어들면서 최고지도자를 우상화하거나 찬양하는 북한의 선전·선동술이 더욱 정교해지는 양상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이 과정을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관장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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