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롱과 시위로 얼룩진 마크롱 집권 1주년
  • 최정민 프랑스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5.14 11:42
  • 호수 1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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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연일 삐걱거리는 언행에 등 돌린 민심

 

지난 5월5일 파리 거리는 시위인파로 가득했다. 프랑스 혁명의 상징 바스티유 광장으로 이어진 시위 물결은 주최 측 추산 16만 명(경찰 추산 4만 명)이 운집한 것으로 기록됐다. 5월1일 노동절 시위 나흘 만에 다시 집결한 이들이 내건 슬로건은 ‘마크롱을 위한 축제(Fête à Macron)’였다.

 

팬심이 아니었다. 집권 1주년을 맞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가 아닌 ‘조롱’하기 위한 자리였다. 2017년 5월7일 66.1%라는 높은 지지율로 프랑스 제5공화국 8번째 대통령이 된 마크롱의 취임 1주년이 각종 시위와 비판을 넘어 조롱으로 얼룩지고 있는 것이다.

 

마크롱 정부 출범 1년을 전후로 프랑스 주요 언론이 앞다퉈 내놓은 여론조사에서도 비판적 기류는 뚜렷이 드러났다. 프랑스 공영방송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입소스와 소프라 스테리아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 64%가 지난 1년 마크롱 정부에 대해 ‘실망스럽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24%는 ‘매우 실망’으로 부정 강도가 높았다. 게다가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국민 37%가 ‘지난 1년 프랑스가 나아진 게 없다’고 답했으며, 이들 중 29%가 ‘정부 탓’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프랑스가 나아졌다’는 응답자는 27%였는데, ‘정부 덕분’이란 의견은 이들 중 10%에 불과했다. 프랑스의 전통적인 정파를 넘어 ‘새 정치’를 들고나와 기대를 모았던 마크롱의 지난 1년이 어쩌다 이런 평가를 받게 된 것일까?

 

5월5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도심 거리에 나온 시민들이 마크롱 얼굴을 절대군주 루이 16세 초상화와 합성한 그림을 들고 있다. © AP연합


 

“역시 노동자들의 대통령 아니다”

 

“대통령에겐 휴일이 없다”고 일갈하며 개혁에 매진해 온 마크롱에 대한 비판여론이 이리도 거센 건, 현재 정국이 국영철도노조 파업 사태 한복판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례 없는 36차례의 파업과 정부와의 강대강 마찰로 국민여론이 더욱 등을 돌린 것이다. 초반에 파업에 대한 찬반 여론이 비등했던 것만 봐도 이후 정부가 어떻게 갈등을 풀어내느냐에 따라 상황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었다. 프랑스 민주노조(CFDT)의 로랑 베르제 사무총장은 5월9일 한 인터뷰에서 “프랑스의 정치 스타일은 대화와 타협의 ‘뉘앙스 정치’인데, 마크롱은 대결 국면으로만 몰아가고 있다”며 정부의 강경 드라이브를 비판했다.

 

이러한 파업 사태와 더불어 반(反)정부 여론에 더욱 힘을 실은 건 마크롱의 납득하기 어려운 행보 탓도 있었다. 지난 5월1일 노동절에 마크롱은 해외순방으로 자리를 비웠다. 물론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이날 노동절 행사에 참여해 온 건 아니었다. 그러나 자리를 비운 마크롱을 향해 여론은 “역시 노동자들의 대통령이 아니다”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같은 날 마크롱은 미국 경제지 포브스와의 인터뷰를 진행했고 이내 ‘자유시장의 리더’라는 제목과 함께 표지에 얼굴을 올렸다. 이는 마크롱에게 ‘부자들의 대통령’이라는 꼬리표를 달리게 했다. 르몽드의 바네사 슈네더 대기자는 “노동자들의 분노는 정부로부터 멸시당했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며 “5월1일 노동절에 자리를 비우고 포브스와 인터뷰를 가진 건 적절치 못한 처사였다”고 지적했다.

 

늘 마크롱의 정치적 아버지라고 불렸던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도 마크롱을 향한 비판 가도에 합류했다. 시청자 수가 60만 명에 육박하는 프랑스의 간판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한 올랑드는 “마크롱은 부자들의 대통령인가”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그는 부자들의 대통령이 아니다. 부자들보다 더욱 부유한 거부들의 대통령”이라고 비꼬았다. 방송 후 마크롱에겐 ‘슈퍼갑부들의 대통령’이라는 별명이 추가됐다.

 

 

주택보조금 인하 반발여론 비판해 또 논란

 

올랑드가 이렇게 강도 높은 비판을 한 것은 마크롱이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부유전출세’를 폐지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부유전출세는 부호들이 해외로 재산을 이전할 경우 부과되는 세금이다. 우파였던 사르코지 정부 시절 만들어진 이 세금을 다름 아닌 마크롱 정부가 폐지하려는 것이다.

 

논란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5월7일 마크롱은 취임 1주년을 맞아 공영방송 ‘프랑스3’의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는 프랑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하던 중, 지난 3월 스스로 인질을 자청해 시민 대신 테러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아르노 벨트람 중령을 거론하며 “이것이야말로 프랑스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여기까진 좋았다. 그러나 이후 그의 주택보조금 인하 정책에 반발하는 여론을 두고 “그들은 이와 같은 ‘프랑스 정신’을 알지 못할 것”이라고 싸잡아 비판해 논란이 됐다.

 

프랑스 언론은 즉각 반응했다. 여당 내부는 물론 내각 각료들조차 ‘적절치 못한 비유였다’며 우려 섞인 반응을 내놨다. 로랑 베르제 CFDT 사무총장은 “대통령이 프랑스 역사와 문화는 알지만 프랑스인들의 마음은 모르는 것 같다”고 꼬집기도 했다.

 

지난 대선에서 가족의 위장취업 의혹에 가볍게 대응했다가 낙마한 프랑수아 피용 당시 공화당 후보를 두고 당시 언론은 “일반인의 삶을 모르는 19세기 부르주아 같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그를 향했던 비판과 우려가 1년 후 지금 고스란히 마크롱을 향하고 있는 모양새다.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서민들에게 지급되는 주택보조금 5유로를 인하하기로 결정한 마크롱이 대통령의 취임 후 첫 3개월간 메이크업 비용으로만 2만6000유로를 썼다고 비판해 국민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남은 임기에 대한 프랑스 언론과 국민들의 전망도 어둡기만 하다. 프랑스의 정치평론가 알랭 뒤마엘은 “마크롱이 모든 문제를 다 알고 있다는 확신이 오만으로 변할 때 더욱 심각한 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의 전망은 더 가혹했다. 마크롱에 대한 외신들의 시각을 정리한 르피가로는 “그의 매력은 이제 끝났다”고 냉혹하게 결론 내렸다.

 

마크롱이 애초에 공언한 개혁효과가 나타나는 시점은 집권 후 18개월에서 2년 사이였다. 마크롱에 대한 ‘진짜’ 냉혹한 평가는 이제부터 시작일지 모른다. 프랑스 공영방송이 취임 1주년 기념으로 내놓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무죄의 끝》이었다. 더 이상은 ‘봐줄 수 없다’는 프랑스 국민들의 날카로운 경고가 담긴 문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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