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그룹 지배구조 개선작업, 실익은 모두 챙겼다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8.05.15 11:36
  • 호수 1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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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감 몰아주기 논란 해소 기업 중 가장 늑장 대응 빈축도

 

태광그룹은 5월10일 지배구조 개선작업이 최종단계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작업을 마무리 지었다는 것이다. 태광그룹은 2016년부터 일감 몰아주기 논란 해소를 목표로 지배구조 개선작업을 벌여왔다. 대상은 내부거래 비중과 규모가 높은 세광패션·메르뱅·에스티임·동림건설·서한물산·티시스·한국도서보급 등 7곳이었다. 태광그룹은 이들 계열사 가운데 한국도서보급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정리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20여 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작업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태광그룹이 이처럼 장기간에 걸쳐 대대적인 작업을 벌인 것은 일감 몰아주기 논란과 관련해 꾸준하게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논란 해소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비판을 키우기도 했다. 이른바 ‘일감몰아주기법’이 시행된 2014년 이후 기업들이 저마다 규제 탈출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태광그룹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계열사의 내부거래 비중이나 규모가 늘기도 했다. 또 지배구조 개선작업 착수 이후에도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 통과나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예고 등 이슈가 불거진 뒤에야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는 모습도 보였다.

 

실제로 태광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해소를 위한 첫 조치가 이뤄진 것은 2016년 12월이다. 염색업체인 세광패션을 22억원에 매각했다. 매입자는 태광산업. 업무 연관성을 고려한 조치였다. 세광패션이 첫 대상이 된 것은 일감 몰아주기 수위가 독보적이었던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지분율과 내부거래율이 모두 100%였기 때문이다. 실제 세광패션의 내부거래 규모(매출)는 2012년 242억원에서 매년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였다. 그 결과, 매각 전년인 2015년 내부거래 규모는 135억원을 기록했다.

 

태광그룹은 지배구조 개선작업을 통해 ‘일감 몰아주기 논란 해소’와 오너일가 지배력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 시사저널 박정훈


 

2016년 12월 들어서야 내부거래 해소 노력

 

이후에는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태광그룹이 일감 몰아주기 논란 해소를 위한 다음 단계에 돌입한 것은 지난해 7월11일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이후다. 새 개정안에 따라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자산 10조원 이상에서 5조원 이상으로 낮아졌다. 이로 인해 자산 규모가 7조원이던 태광그룹은 규제 대상에 편입됐다. 그러자 태광그룹은 그해 7월21일 와인 유통업체 메르뱅과 광고대행업체 에스티임을 정리했다. 이들 회사는 이 전 회장의 부인 신유나씨(51%)와 장녀 현나씨(49%)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어 그룹 내 ‘모녀회사’로 통하던 곳이다. 신유나·현나 모녀는 메르뱅 지분을 태광관광개발에 증여했고, 에스티임은 티시스에 61억원에 매각했다.

 

다음 단계는 같은 해 10월에 진행됐다. 서한물산·동림건설·에스티임 등 3개사를 티시스로 흡수합병키로 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국정감사 과정에서 태광그룹의 일감 몰아주기를 점검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10월19일 당일 이 조치가 이뤄졌다. 합병을 통해 서한물산 최대주주(59.77%)이던 이 전 회장은 1 대 0.32 비율로 티시스 합병신주를 확보하게 됐다. 이처럼 비교적 높은 비율로 합병신주를 교부받을 수 있던 것은 서한물산이 매년 80~90%대의 내부거래율을 유지하며 사세를 확장해 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처럼 지배구조 개선작업은 티시스를 구심점으로 진행됐다. 티시스가 지배구조 최상단에 위치해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티시스는 핵심 계열사인 태광산업(11.22%)과 대한화섬(8.83%)의 대주주다. 합병이 진행되면서 ‘이 전 회장 부자→티시스→태광산업·대한화섬 등 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는 더욱 공고해졌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미 티시스는 일감 몰아주기 논란과 관련해 도마에 올라 있는 상태다. 2016년에도 전체 매출의 69.3%에 해당하는 2381억원이 그룹 계열사와의 거래에서 나왔다. 이런 가운데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계열사들을 합병할 경우 티시스의 내부거래 비중과 규모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를 의식한 듯 태광그룹은 지난해 12월 ‘일감 몰아주기 의혹 해소 및 지배구조 개선’ 계획을 발표했다. 티시스를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한 뒤, 이 전 회장(59%)과 현준씨(41%)가 지분 100%를 보유한 한국도서보급이 티시스 투자회사와 쇼핑엔티를 흡수합병한다는 내용이었다. 한국도서보급이 사실상 지주사에 오른다는 것이다. 지주사는 관련법에 따라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게 된다. 한국도서보급은 현재 티시스와 합병을 완료하고 지주사의 골격을 갖춘 상태다. 사명(社名)은 티알엠으로 변경했다. 쇼핑엔티 합병까지 마무리 지을 경우 이 전 회장 부자(父子)의 티알엠 지분율은 94% 전후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가운데 태광그룹은 5월10일 이 전 회장이 보유한 티시스 사업회사 지분을 태광산업과 세화여중·고를 운영하는 일주세화학원에 무상증여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지배구조 개선작업은 사실상 최종 정리 단계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태광산업과 일주세화학원에 증여되는 지분 가치는 각각 1000억원과 1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이를 통해 이 전 회장은 일감 몰아주기 논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됐다. 동시에 이 전 회장 자신과 티알엠 지배 아래 있는 태광산업을 통해 티시스 사업회사에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게 됐다는 평가다.

 

 

일감 몰아주기 해소·3세 승계 ‘두 마리 토끼’

 

태광그룹의 기업구조 개선작업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일단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깨끗이 털어냈다. 실익도 이미 모두 거둔 상태다.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사세를 확장한 뒤 매각해 자금을 확보하거나 합병을 통해 지배력을 강화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장남인 현준씨에 대한 승계 기틀을 다졌다는 평가다. 일단 지배구조 개선작업을 통해 현준씨의 지배력이 견고해졌다. 또 티시스 사업회사 지분 무상증여가 이 전 회장 소유분에 한해서만 이뤄진 만큼 현준씨는 자신의 보유 지분을 매각해 지배력 확보를 위한 재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익을 모두 챙겼다는 점은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여지도 있다. 실제 공정위는 태광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작업이 한창이던 올해 1월 일감 몰아주기 논란과 관련한 조사에 착수한 바 있다. 태광그룹 관계자는 자체적인 지배구조 개선작업을 벌이는 와중에 공정위 조사가 시작된 데 대해 당혹감을 표현하면서도 “공정위 조사에 성실히 임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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