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역사 왜곡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18.05.16 09:17
  • 호수 1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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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지만원 “5·18은 북한 간첩 소행”…이명박-박근혜 정부, 조직적인 5·18 역사 왜곡

 

“저는 먼저 1980년 5월의 광주 시민들을 떠올립니다. 누군가의 가족이었고 이웃이었습니다. 평범한 시민이었고 학생이었습니다. 그들은 인권과 자유를 억압받지 않는,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5·18은 불의한 국가권력이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유린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었습니다. 헬기 사격까지 포함해 발포의 진상과 책임을 반드시 밝혀내겠습니다.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는 저의 공약도 지키겠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은 비로소 온 국민이 기억하고 배우는 자랑스러운 역사로 자리매김될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열린 제37주기 5·18 기념식에서 “5·18 민주화운동과 촛불혁명의 정신을 받들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복원하겠다”며 문재인 정부가 광주 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있음을 천명했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5·18 진상규명을 수차례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5월 광주를 왜곡하고 폄훼하려는 시도가 있다.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역사를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일”이라며 “완전한 진상규명은 결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상식과 정의의 문제다”고 밝혔다. 5·18을 무장폭동이나 북한 간첩의 사주를 받은 난동, 더 나아가 내란음모 사건으로 왜곡하고 폄훼하는 시도들이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 뉴스뱅크 이미지


 

“김대중 지지 세력 무장봉기 준비”

 

5·18을 왜곡하려는 시도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당장 문 대통령의 기념사에 대해 공격이 가해졌다. ‘김대령’이라는 필명의 작가는 《문재인의 5·18 눈물로 뒤집힌 광주사태》 《역사로서의 5·18》 등의 저서를 통해 “5·18은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과 사회주의 세력의 음모로 일어났으며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지지 세력이 대규모 폭력 무장봉기를 준비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문 대통령이 지난해 5·18 기념식에서 유가족을 위로했던 모습에 대해 “문재인이 시민군이 가해자였던 사건을 소재로 눈물 쇼를 해 국군이 누명을 쓰게 하는 극적 효과를 연출했다”면서 “1980년 5월18일 0시를 기해 발효된 비상계엄 전국 확대의 주요 원인 제공자가 문 대통령이다. 그가 인솔한 시위대가 의경을 살해한 살인 사건 발생 후로는 다시 경희대(문 대통령의 모교)에 등교하지 않은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재 이 책들은 세계 최대 온라인 서점 아마존에서 17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5·18 왜곡의 선두에는 보수논객 지만원씨가 있다. 지씨는 “5·18은 남파된 북한 특수군(일명 광수)이 일으킨 폭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씨는 ‘1980년 5·18 광주에 황장엽이 왔다’ ‘북한특수군 600명 입증, 5·18은 35년 만에 세기의 여적사건으로 밝혀졌다’ 등 이른바 광수 시리즈를 발표해 왔다. 최근에는 이상로 방송통신심의위원이 지씨의 주장을 옹호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통신심의소위원회는 지난 4월  ‘5·18 북한군 침투설’을 다룬 지씨의 블로그 게시글을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자유한국당이 추천한 이 위원만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 위원은 “일반적 평가에 대해 다른 견해는 얼마든지 제시할 수 있다. 이러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면 대한민국은 전체주의 국가로 간다”면서 “(지씨의 게시글은) 매우 공손하게 존대어를 사용했고 매우 점잖은 글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 등은 “더 이상 ‘5·18 북한군 개입설’ 옹호 발언과 같은 비뚤어진 역사관과 극단적인 사고를 가진 이 위원이 방송통신심의위원으로 심의 결정에 참여하는 행태를 묵과할 수 없다”면서 “이 위원은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한 주장들에 대해 사과하고 즉각 물러나야 마땅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더 큰 문제는 5·18의 최고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서 5·18을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해 출간한 《전두환 회고록》 1권 ‘혼돈의 시대’를 통해 “5·18은 북한군의 폭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최용주 5·18기념재단 연구원은 “모든 사회적·역사적 사건은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의 다양한 가치관과 이념이 충돌하고 있기 때문에 가치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는 합리적·이성적 이견과 해석의 과학적 다양성과는 차원을 달리할 뿐만 아니라, 담론이 전개되는 수준이 지극히 저열하고 그 정치적 악의가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면서 “최근에는 전두환이 회고록을 발간해 5·18을 ‘광주사태’라 규정하고, 광주학살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등 광주학살의 최고 책임자가 5·18의 역사적 본질을 공개적으로 왜곡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 가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5·18 명예훼손, 피해자 특정되면 처벌 가능”

 

5·18 유가족과 단체들은 이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5·18을 왜곡해도 대법원의 집단표시 명예훼손죄 판례로 인해 피해자가 특정될 수 없는 한 유죄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형법 제307조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요건은 공연성, 피해자 특정, 사실의 적시, 사회적 평가 저하 등이다. 이 중에서 특정성은 공개한 사실을 통해 명예훼손의 피해 당사자를 명확히 인식할 수 있는지 여부를 말한다. 즉 ‘전라도민’ ‘광주시민’ 등 막연한 표시는 명예훼손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지씨는 2008년 자신의 홈페이지에 “5·18은 김대중이 일으킨 내란사건이고 광주 진압작전은 북한 특수군이 파견돼 조직적으로 군사작전을 지휘했다”는 글을 올려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지만 결국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5·18 민주화운동의 법적·역사적 평가가 확정된 상태”라면서도 “지씨의 비난이 개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정도로는 볼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전 전 대통령이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死者)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광주지방검찰청은 지난 5월3일 전 전 대통령이 1980년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 기총소사 사실을 증언한 조비오 신부를 비난하고 헬기 사격 사실을 부정해 조 신부와 유가족, 5·18 희생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전 전 대통령을 불구속 기소했다. 《전두환 회고록》에 대한 첫 번째 가처분 신청의 법률대리를 맡아 이 책의 출판 및 배포 금지 결정을 이끌어낸 김정호 변호사는 “광주 시민과 전라도 사람을 비하하고 5·18 역사를 왜곡·비하하는 것은 대법원의 집단표시 명예훼손죄의 법리로 인해 피해자가 특정될 수 없는 한 형사사건에서 유죄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전두환 회고록》 내용 중 헬기 사격 사실을 부인하면서 고 조비오 신부님을 비난한 것은 피해자가 특정될 수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피해자 특정이 가능했던 헬기 사격 부인 부분만 따로 떼어서 형사고소했고 기소로 이어질 수 있었다”면서 “나머지 북한군 개입 주장 등 대부분의 허위사실은 형사적으로 문제 삼지 못하고, 민사적으로 출판 및 배포 금지 가처분과 손해배상 등 본안소송으로 대응한 것이다. 전 전 대통령은 법원이 문제 삼은 부분을 검은색 잉크로 덧씌운 뒤 책을 재출간했다. 이에 ‘희생자들에 대한 암매장 부정’ ‘광주교도소에 대한 시민군 습격’ ‘무기고 탈취시간 조작’ 등의 내용에 대해 두 번째 출판·배포 금지 가처분을 신청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왼쪽)은 5·18 헬기 사격과 관련해 고(故) 조비오 신부(오른쪽)를 사자명예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 연합뉴스


 

“5·18 왜곡담론 생산, 조직적 체계 갖춰”

 

이와 같은 전략은 지씨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지씨가 ‘광수(북한군 특수부대원)’라고 지목한 개인이 지씨에게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8월 법원은 광수로 지목된 박남선씨(5·18 당시 시민군 상황실장) 등 9명이 지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200만~1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김 변호사는 “지씨의 경우 일반적인 북한군 개입 주장 등 5·18 비하는 형사고소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시 광주시민군이었고 현재도 생존해 있는 분들을 북한에서 남파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이른바 광수 주장에 대해서는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었다. 현재 피해자마다 몇 건이 기소돼 서울중앙지법에서 형사재판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김 변호사는 문 대통령을 비난한 김대령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죄는 충분히 성립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최용주 5·18기념재단 연구원은 “북한개입론은 그 근거가 전무하고 저의가 가장 악랄하며 논리의 수준이 매우 저열하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된 반공주의와 레드 콤플렉스의 힘을 받아서 그 파급 효과가 가장 큰 대표적인 왜곡담론이다”면서 “5·18 왜곡담론이 조직적이며 체계적인 네트워크와 위계를 통해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유통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놀랍게도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갖는 1차 생산자는 ‘국가’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2대에 걸친 보수정권이 가장 유력한 왜곡담론의 생산자였다. 2013년 원세훈 원장 시절 국정원의 트위터를 통한 5·18 왜곡 사례 전파는 이미 유명한 사건이며, 국정교과서를 통해 5·18 왜곡에 나서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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