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과연 ‘한반도 봄’의 우군인가
  • 김원식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5.17 22:18
  • 호수 1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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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폭 행보’ 승부사 트럼프, 북한과 ‘최고 위험한 게임’ 돌입

 

“트럼프 대통령이 오래된 북한 문제를 풀 수 있었던 것은 한마디로 ‘고(高)위험-고(高)보상(high risk-high reward)’ 대북 전략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측근으로 통하는 관계자가 언론에 했던 말이다. 대중의 관심을 목숨처럼 생각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對北) 문제를 극도로 위험한 상황으로까지 몰고 간 다음 ‘고(高)보상’의 당근을 던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북·미 관계는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서로 ‘미치광이’라는 말 폭탄과 함께 무력충돌 일보 직전의 첨예한 대결 구도가 펼쳐졌다. 지금은 다르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신경전을 펼치고 있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공개적으로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과 화끈한 보상을 약속하는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핵실험 중지와 미국과의 대화를 선언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결단 못지않게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전략이 현재의 국면에 녹아 있다.

 

© AP 연합


 

트럼프의 조급성이 발목 잡나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전략을 유심히 살펴보면, 오는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될 역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에서 이른바 ‘그랜드 바겐(일괄타결, Grand Bargain)’이 발표되리라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추측이 아니다. 북·미 정상 간에 이른바 ‘통 큰’ 합의가 나올 것이며, 미국 전문가들도 ‘고 빅(Go Big)’ 합의가 도출될 것이라 입을 모은다. 한반도는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한 역사의 전환점에 서 있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철저한 협상 전략을 이해한다면,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밋밋한 합의만 갖고는 미국 내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수 없다는 사실은 트럼프 자신이 더욱 잘 알고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전임 행정부는 북한 문제에 있어서 “하나도 해결하지 못했다”고 늘 주장하던 그로선 확실한 해결책, 뚜렷한 결과물을 내놔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개최 장소까지 가서 문을 박차고 나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이미 북·미 양측 간엔 기본 큰 틀의 합의는 다 끝났고 양국 정상이 사인하는 절차만 남았다는 이야기가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다.

 

북·미 양측에선 초극단의 초단타로 해결할 수 있는 극적인 합의가 나와야 한다. 폼페이오 장관은 늘 “이번엔 북한과의 합의에서 잘게 쪼개지 않겠다”고 말했다. 정작 큰 문제는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고 외교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단번에 해결하려는 이른바 ‘통 큰’ 합의가 양쪽의 ‘조급성(urgency)’을 촉발할 수 있다. 합의의 이행과 검증으로 연결되지 못해 끝내는 합의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에게 무언가를 내어놔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이 ‘조급성’이 더할 수 있다는 경고음은 이미 여러 곳에서 나온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신경전이 치열하다. 존 볼턴 미 국가안보보좌관(가운데)은 리비아식 해법을 제시했다가 북한의 반발을 샀다. © EPA 연합


 

“시작은 지금부터일 뿐”

 

외교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역풍을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루살렘으로 이스라엘 미국대사관을 이전한 결정이나 이란 핵 협정을 파기한 결정을 큰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중동의 긴장만 고조시켰다는 지적도 있다.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이제 북한 문제는 다 해결됐다”고 선언할 가능성이 크지만, 실제 상황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못할 수도 있다. 더구나 상호 합의 이행과 검증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 북핵 폐기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고도 쉽게 ‘일괄타결’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지적된다.

 

익명을 요구한 백악관의 일부 관계자들도 “트럼프 대통령이 대담한 발상의 전환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광폭 행보’가 가져올 강력한 역풍에 관해선 관심이 없다”고 우려를 표명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만일 일이 풀리지 않으면, 항상 반대 코스로 갈 수도 있다고만 말할 뿐 실제로 그것이 가져올 파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린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 문제뿐만 아니라 국제 경제 문제에서도 취임 이후 세계무역기구(WTO) 탈퇴를 시사하면서 오락가락하는 행동을 보이는 것이 이를 잘 말해 준다는 것이다. 이는 역으로 북한과의 ‘그랜드 바겐’ 합의 이후에도 오히려 여러 이유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합의 파기를 선언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까지 올라간다. 그가 이란과의 핵 협정 폐기를 선언하면서 북한에는 이를 강력한 압박 수단으로 제시했지만, 그 자신 스스로가 미 행정부의 신뢰성을 오히려 허물어버렸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독단적인 사고방식이 어쩌면 오늘날 역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도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자서전(《거래의 기술》)에서도 밝혔듯이, “나는 크게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무엇이든 하려면 어쨌든 크게 생각하라”고 ‘통 큰’ 협상을 체질화한 사람이다. 그는 2016년 대선후보 시절에도 “나 혼자서도 미국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큰소리칠 만큼 확고한 배짱을 내세운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북한과 ‘최고 위험한(high-risk) 게임’을 앞두고 있다는 데는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오는 6월12일, 싱가포르에선 역사상 첫 북·미 정상이 만나 놀라운 ‘그랜드 바겐’을 선언하고 축배를 함께 들 것이다. 그러면서도 “시작은 지금부터일 뿐”이라는 말이 나올 거란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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