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이 극성이라 '펜스룰'이 유행한다고?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5.21 09:13
  • 호수 1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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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여전히 높은 여성 정치인 진입장벽

 

‘경쟁의 계절’ 선거철이 돌아왔다. 더불어민주당의 후보 공천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면서, 여성 공천이 무참한 지경에 이른 것을 본다. 여성적 정치원리가 훨씬 더 필요하다는 지방자치 선거인데도 그렇다. 여성 정치인에 대한 진입장벽이 더더욱 교묘하게 높아지는 것을 목격한다.

 

각종 선거에서 여성할당제를 관철시키기 위한 노력은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고, 그 결과 선출직의 경험을 쌓은 여성들의 수도 상당히 늘어났다. 그러나 이번 공천현황을 볼 때, 단순히 숫자를 늘리자는 의미의 할당제로는 성차별적 정치현실에 변화를 이끌어오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물론 여전히 할당제는 필요하고, 장기적으로 남녀동수가 되는 할당제가 변화를 이끌어내는 양질전환의 고리임은 여전히 확실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일이 있다. 왜 여성이 정치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이다.

 

세상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맞는 답이지만 부족하다. 여성이 공적 영역에 진출하고 생산경제활동에 종사하는 수가 늘어나고 있으며 이 상황이 도로 과거로 돌아갈 가능성은 없다. 이제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성별분업사회는 안 돌아온다는 뜻이다. 여성들뿐 아니라 남성들의 삶도 엄청나게 변화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 국민청원 1년을 돌아보니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인권’이고 가장 많이 쓰인 어휘가 ‘여성’이더라는 빅데이터 분석은, 변화한 시대에 걸맞은 사회제도가 아직 오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증거다.

 

정치란 바로 이 ‘변화한 시대에 걸맞은 사회제도’를 만들고 실천하기 위한 대표를 선출하는 일이므로, 국민청원의 목소리는 여성이 하는 정치를 넘어 여성적 원리가 적용되는 정치의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볼 때 성별이 여자라서가 아니라 그가 지닌 가치관과 태도, 실천의 방향이 여성적 원리에 입각해 건강하게 전개되는 여성이 할당제의 도움을 입어 정치권으로 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미래를 꿈꾸기 때문에 여성의 정치를 말하는 것이지, 기득권 내부에 포섭되어 어떤 변화도 원치 않는 여성에게 배지 달아주려고 여성의 정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펜스룰’을 만들어낸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 AP 연합


 

‘여성적 정치인’의 정치권 진입 중요

 

누군가는 말한다. 온갖 특혜(?)를 주어도 경쟁력이 뒤처지는데 어쩌라는 말이냐라고. 하지만 그 특혜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정말로 그것이 특혜일까를 갸웃하게 만드는 상황이 펼쳐지곤 한다. 후보들의 성인지·성평등 인식을 점검하고 그에 입각한 정책능력을 평가하는 심사를 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여성 예비후보들이 비판받아야 한다면 나는 오히려, 소위 말하는 경쟁력이 아니라 이 여성들이 여성정치의 제대로 된 대안적 역할을 정치권에 설득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 점을 지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그 당사자들만의 노력으로 될 리가 없다. 예비후보들뿐 아니라 이미 당내 기득권을 지닌 여성 정치인들의 역할이 간절하고 또 간절한 이유다.

 

이제 노골적으로 이야기를 하자. 여자들이 극성이라 펜스(Pence)룰이 유행한다고? 천만에, 스스로 펜스(fence)를 치고 그 안에 들어앉아 다가오는 미래를 두려워하는 성장지체(defence)가 있을 뿐이다. 이번 공천을 내가 반동이라 보는 이유다. 앞으로도 선거는 계속된다. 아직은 유권자 의식이 정치판의 성장지체를 인지하지 못한다 해도 다음 선거에도 그러리라고 믿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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