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박근혜 석방"에서 "문재인 퇴진"으로
  • 조해수·조유빈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18.05.21 09:24
  • 호수 1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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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대선' 주장하던 보수단체, 내란선동 혐의로 경찰에 고발돼

 

“19대 대선은 사기 대선이었다. 문재인은 부정선거 대통령으로 물러나야 한다.”

 

서울 시내에 다시 ‘태극기집회’가 등장했다. 이들은 지난해 치러진 5·9대선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조직적으로 개입하고 조작한 부정선거였다고 주장한다. ‘사기 대선으로 당선된 대통령은 퇴진해야 한다’며 집회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명 사기대선진상규명본부(사대본)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아스팔트 보수’라 불리며 도심을 누볐던 보수단체들이 현 정부의 도심에 다시 등장한 것은 19대 대선을 부정하고 문재인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사대본은 5월17일 허위사실 날조 및 유언비어 유포를 통한 내란선동 혐의로 경찰에 고발됐다.

 

태극기집회의 뿌리는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다. 탄기국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발의를 기점으로 박사모와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등이 모여 결성됐다. 이들 역시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활동했던 우파 단체들이다. 특히 어버이연합은 과격한 집회와 시위를 통해 보수정권의 홍위병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시사저널은 제1384호 ‘[단독] 청와대 행정관이 집회 열라고 문자 보냈다’ 기사를 통해 어버이연합이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 행정관을 통해 관제데모 지시를 받아 시위를 주도했다는 사실을 보도하면서 화이트리스트 의혹을 최초로 제기했다.

 

보수단체들이 모여 만들어진 탄기국은 지난해 3월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 이후 ‘대통령 탄핵무효 국민저항총궐기 운동본부(국민저항본부)’로 이름을 바꿔 태극기집회를 이어갔다. 이후 금전 문제 등 갈등이 생기면서 태극기집회 참여 단체들은 사분오열됐고 대한애국당, 태극기시민혁명 국민운동본부(국본), 태극기 행동본부, 박근혜대통령구명총연합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분산됐다. 이 단체들은 서울역광장, 대한문광장, 광화문 인근 동화면세점 앞 등에서 태극기집회를 열고 있다.

 

3월1일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태극기시민혁명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 연합뉴스


태극기집회 단체들은 기부금 불법 모금과 유용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이 단체들의 전신인 탄기국은 박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수십억원의 기부금을 거둬들였다. 탄기국은 수십억원대 기부금을 불법 모금하고, 가짜뉴스 논란 매체들의 발행비와 창간비를 지원했으며, 모금한 돈을 새누리당 창당 자금으로 사용하기도 했다(제1436호 ‘태극기집회 40억원대 기부금 불법 유용…새누리당 창당 자금으로도 사용’ 기사 참조).

 

시사저널 보도 이후 7개월 만인 지난해 11월3일 경찰은 탄기국 간부 4명을 검찰에 송치하면서 후원금 모금에 동원된 이들의 규모를 파악했고, 1월에는 전체 후원금 중 4만여 건이 불법 모금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탄기국을 뿌리로 한 국본 역시 같은 논란이 일었다. 국본은 지난 1월 기부금품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됐다. 최근 태극기집회는 폭력 행위로 인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3월과 4월에는 시민들이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대규모 부정선거…가짜 대통령 끌어내려야”

 

사대본도 분열된 태극기집회 단체 중 하나다. 5월17일 내란선동 혐의로 경찰에 고발된 사대본은 집회와 유튜브 동영상 및 SNS 등을 통해 “19대 대선은 중앙선관위에 의해 자행된 대규모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이러한 사기 대선을 통해 선출된 문재인 대통령은 가짜 대통령이므로 끌어내려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정영모 정의로운시민행동 대표는 5월17일 정창화 사대본 상임대표, 서향기 사대본 공동대표 등 사대본 지휘부 5인을 내란예비, 내란음모, 내란선동, 내란선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정영모 대표는 아울러 “사대본이 모금등록을 하지 않은 채 후원계좌를 통해 기부금을 모집했다”며 기부금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를 의뢰했다.

 

정창화 대표는 지난해 6월7일 김용덕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피고로 하는 ‘대통령선거 무효의 소’를 대법원에 제기했다. 정창화 대표는 △투표지분류기란 허위명칭으로 전자개표기 불법 사용 △여백 없는 투표용지 불법 사용 △완벽한 법적 근거 마련 없이 사전선거 실시 △사전선거 때 바코드 대신 QR코드 투표용지 불법 사용 △불법투표함(부직포함) 사용 등을 근거로 내세우며 중앙선관위가 “조직적으로 투표용지를 대규모로 바꿔치기 했다”고 주장했다.

 

선관위는 사대본의 이와 같은 주장이 허무맹랑한 주장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여백이 없는 사전투표용지를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제19대 대선 사전투표 첫날인 5월4일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 등에 ‘투표용지의 여백이 없었다’ ‘여백이 없는 투표용지에 기표한 것은 다 무효다’라는 내용의 글이 게시됐다. 이와 관련해 선관위는 “사전투표용지는 전국적으로 동일하게 후보자 간 여백이 있는 투표용지만 사용됐다”면서 “당시 사전투표 전일인 5월3일 전국 3507개 모든 사전투표소에서는 각 정당에서 추천한 사전투표참관인 등이 입회한 가운데 사전투표용지 출력을 위한 시험운영을 실시했고, 모든 사전투표소에서 후보자란 사이에 여백이 있는 투표용지가 정상적으로 출력되는 것을 사전투표참관인의 입회 아래 확인했다. 또, 전국 251개 개표소에서 개표참관인이 참관한 가운데 개표하는 과정에서도 후보자란 사이에 여백이 없는 투표용지는 한 장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영모 대표는 “지난해 5월9일 실시된 19대 대선의 투·개표 과정 및 결과에 대해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선에 참여한 정당 및 후보자 측에서도 공식적으로 어떠한 이의나 문제점을 제기한 사실이 없다”면서 “이는 19대 대선이 결정적 하자 없이 마무리됐음을 인정하는 정치·사회적 합의다. 그럼에도 이에 승복하지 않고 19대 대선 자체를 무효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대한민국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정창화 등이 위와 같은 법률적 행위만 했다면 대법원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될 일”이라면서 “그러나 정창화와 사대본은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지 않고, 사회의 혼란과 분열을 야기하는 매우 위험한 행동을 계획적으로 저지르고 있다. 서울역, 동대문, 대한문, 동화면세점 등 이른바 태극기집회 현장에서 ‘19대 대선은 사기 대선’이라는 주장을 계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2018년 2~4월에 걸쳐 7회 이상의 사대본 주관 부정선거규명집회 투어를 실시하기도 했다. 이들의 발언은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국내외로 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정창화 대표가 작성한 ‘대통령선거 무효의 소 승소 전략’이라는 문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창화 대표는 이 문건에서 홍보전략으로 △대한애국당 주말집회 활용 △애국문화협회 동대문 태극기집회 등 활용 △사대본 자체 부정선거규명집회 투어 △SNS, 유튜브 활용 등을 거론하고 있다.

 

보수단체가 2017년 7월19일 대구 중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종각 앞에서 ‘제19대 대통령선거 무효 부정선거 진상규명 국민대회’를 열고 있다. ⓒ 뉴시스

‘문재인 사기 대선’ 영상 조회 수 30만 건

 

실제로 유튜브에서 ‘19대 대선이 사기’라는 주장을 담은 동영상을 다수 확인할 수 있었다. ‘문재인 사기대선’ 키워드를 검색하니 1만 개가 넘는 영상이 검색됐고, ‘19대 대선사기’라는 키워드로는 4000개 이상의 영상이 도출됐다. 이 중 ‘가짜 대통령 문재인을 당장 끌어내리자’는 제목의 영상 조회 수는 30만 건에 육박했다. ‘가짜 대통령 간첩 문재인은 체포되고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직에 복귀한다’라는 제목의 영상 역시 22만 건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이외에도 ‘19대 대선이 왜 엉터리이고 사기대선인지 증명한다’는 내용의 영상과 ‘2017 대선 부정선거 증거 찾았다’는 제목의 영상도 각각 10만 건과 5만 건이 조회됐다.

 

또한 정창화 대표는 “100만인 원고보조참가신청서 접수 및 300억원 모금을 통해 이번 사안을 국민소송화해야 한다”면서 “1억원은 헌법을 수호하는 변호사 모임(헌변)과 수임계약을 맺고, 2개월 내 회비모금으로 20억원을 후불하겠다. 또한 1억원을 기독언론사에 대한 광고비와 원고보조참가인 모집활동에 사용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영모 대표는 “사대본 측은 위와 같이 모집한 회원들로부터 회비를 받고 있다. 정창화 대표는 사대본 설립 이후 사대본 후원계좌를 통해 받고 있는데, 사대본은 모금등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부금품법을 위반한 것이다”면서 “또한 정창화 대표는 기업가와 종교단체 등을 대상으로 사대본 사업에 투자할 것을 요청하는 별도의 모금행위도 병행하고 있다. 정창화 대표가 개별적인 접촉을 통해 받은 금원의 수입지출 내역과 불법성 여부에 대해서도 수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부금품법에 따르면, 1000만원 이상의 기부금품을 모집하려는 자는 모집·사용계획서를 작성해 등록청에 등록해야 한다. 모집 목표액이 1000만원 이상 10억원 이하인 경우 서울특별시가, 10억원 초과인 경우는 행정안전부가 등록청이 된다. 그러나 사대본은 서울특별시와 행정안전부 어느 곳에도 기부금품 모집등록을 하지 않았다.

 

공진성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그동안 한국의 극우주의 세력은 부족한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반공주의로 가려온 독재정권에 의해 부양되고 이용돼 왔다. 민주화와 탈냉전 이후에도 보수정권은 이 반공주의적 극우 세력과의 결탁을 끊지 못했다. 쉽게 동원할 수 있는 지지 세력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이라면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계기로 평범한 보수 세력과 극우 세력의 결합은 끊어졌고, 고립된 극우 세력은 변화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에서 자신들만의 자폐적인 생각을 계속 공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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