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美,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 대규모 감축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18.05.25 10:01
  • 호수 1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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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방위비 분담금은 증액 요구하면서…노동3권 보장 못 받는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제한돼 있는, 헌법에 보장돼 있는 국민의 기본적 권리인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 노무조항의 개정을 위해 상호 노력한다.”

 

“정부 정책으로 결정된 주한미군 재배치로 인한 고용불안은 국가안보에 불안요소임을 인정하고 한국인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통한 국가안보 확립을 위해 상호 노력한다.”

 

“방위비 분담금 중 인건비 항목에 대한 타 부분으로의 전용은 한국인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협하는 요소임을 인식하고 고용안정을 위해 인건비 타 부분 전용금지를 위해 상호 노력한다.”

 

전국주한미군 한국인노동조합은 지난해 5월6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와 이와 같은 정책 협약을 체결했다. 올해는 제10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정이 체결되는 해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협약은 큰 의미를 지닌다. 한·미 양국은 5년 단위로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열어 비용을 책정하고 있는데, 2014년 타결된 현행 제9차 협정은 올해 12월31일로 마감돼, 2019년부터 5년간에 대해서는 연내 타결을 봐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당시 “한국 등 동맹국들이 미군 주둔비용의 100%를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정부가 지불해야 할 한·미 방위비 분담금은 9차 합의에 따라 2017년 기준 9507억원 상당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대로 100% 분담 요구를 수용할 경우, 우리 정부가 부담해야 할 금액은 2조원 정도일 것으로 추산된다. 

 

© 전국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조합 제공


 

미군, 한국인 노동자 대규모 감원

 

문제는 미국 정부가 한·미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면서, 한편으로는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에 대한 대규모 감원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 대한 인건비는 방위비 분담금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돈을 더 내라고 하면서, 그 돈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곳을 줄이고 있는 셈이다. 주한미군은 평택기지 이전에 따라 용산·동두천·의정부 지역의 시설사령부 소속 500여 명을 이미 감원했다. 최응식 전국주한미군 한국인노동조합 위원장은 “2018년까지 9차 협상으로 인건비가 확보됐지만 일방적인 정리해고를 시행하고 있다. 전체 확대 시 감원 인원은 수천 명으로 확대될 것으로 우려된다”면서 “방위비 분담금에서 군사건설비와 군수지원비에 대한 연구와 문제 제기는 있었지만 인건비에 대해서는 연구와 개선방안에 대한 논의가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고 밝혔다.

 

9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통해 한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건비는 이미 마련돼 있는 상태다. 따라서 금전적 이유로 감원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는 SOFA 및 9차 이행약정서 위반이기도 하다. SOFA 합의의사록 제17조 2항은 ‘합중국 정부는 정당한 이유가 없거나 혹은 그러한 고용이 합중국 군대의 군사상 필요에 배치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고용을 종료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밝히고 있고, SOFA 양해사항 제17조의 3에서도 ‘군사상 필요는 합중국 군대의 군사목적 수행을 위해 해결조치가 긴급히 요구되는 경우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적시돼 있다. 9차 이행약정서 2-가에서도 ‘정당한 이유가 없거나 혹은 그러한 고용이 합중국 군대의 군사상 필요에 배치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고용을 종료하여서는 아니 된다. 군사상 필요로 인하여 감원을 요하는 경우에는, 주한미군은 가능한 범위까지 고용의 종료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돼 있다. 미군이 평택으로 부대 이전 시 주한미군 병력 감축이 없기에 이행약정서에 명시돼 있는 ‘정당한 이유’ 또는 ‘군사상의 필요’로 인한 감원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감원된 인원의 봉급은 주인 없는 ‘공돈(free money)’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는 2013년 4월 발행한 ‘동맹국의 미군지원비와 미국 비용에 관한 조사보고서’를 통해 “방위비 분담금이 공돈처럼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공돈은 주한미군의 불법 이자놀이에 사용되고 있다. 시사저널은 ‘[단독] 주한미군 불법 이자놀이 실태 최초 확인(1336호, 2015년 5월24일자)’ 기사를 통해 주한미군의 방위비 분담금 운용 실태를 단독 보도한 바 있다. 주한미군은 커뮤니티 뱅크(Community Bank·CB)를 통해 방위비 분담금을 관리하고 있는데, CB는 우리나라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진 방위비 분담금을 국내 시중은행에 예치해 연 최소 300억원 이상 이자수익을 거둬들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야당과 시민단체에서는 지금까지 CB가 3000억원 이상의 이자소득을 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이렇게 조성된 수백억원의 이자수익이 미국 정부(Home Office)에 들어간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커뮤니티 뱅크에서 40년 가까이 일한 A씨는 “2013년께 ‘홈 오피스’에서 600억원을 만들어 오라고 해서 급하게 인출해 (미국에) 보낸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박기학 평화통일연구소장은 “이자 수취 행위는 영업행위를 금지한 ‘한미 SOFA(행정협정)’ 7조(접수국 법령 준수) 위반이다. 또 이자소득을 수취하고도 세금을 내지 않았기 때문에 이는 탈세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박 소장은 “미국의 동맹국 가운데 특별협정을 맺어 방위비 분담금을 지급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밖에 없다. 한국의 경우 방위비 분담금 지원 범위와 대상이 포괄적인 데 비해 일본은 지원 대상이 구체적으로 특정돼 있어 불법 전용이 없다”며 “분담금 결정도 한국은 협정에 연도별 총액이 사실상 정해져 있는 반면 일본은 매년 총액을 결정해 미국에 통보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제도를 갖고 있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총액으로 협상하게 돼 있는 방위비 분담금 협정을 항목별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방위비 분담금을 항목별로 협상하도록 전환한다면 인건비로 책정된 돈을 군사시설 건설 등 다른 곳에 전용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응식 전국주한미군 한국인노동조합 위원장이 SOFA 노무조항 개정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 전국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조합 제공


 

미국 눈치만 보고 있는 한국 정부

 

더 큰 문제는 한국 정부가 이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으로 일관하면서 주한미군 내 한국인 노동자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가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2014년 8월 동두천 미군기지 식당에서 일하던 한 한국인 노동자가 자택 화장실에서 스스로 목을 맨 사건이 발생했다. 숨진 김아무개씨는 동두천 미군기지에서 20여 년 동안 접시를 닦으며 생계를 꾸렸다. 그는 주당 56시간씩 일해 200여만원을 받았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이혼한 가장으로서 고등학생 자녀 둘을 어느 정도 뒷바라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고용주인 미군 측이 김씨의 노동 시간을 줄이기 시작했다. 주당 56시간이던 근무 시간은 40시간 남짓으로 줄어들었다. 월급도 150여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는 목을 맨 지 일주일이 지나서야 119 대원들에게 발견됐다. 김씨의 지인은 “(김씨가) 갑자기 근무 시간이 줄어들어 생활고로 힘들다는 유서를 남겼다. 빚도 있어 가장으로서 부담이 컸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최 위원장은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 문제는 노동 이슈지만 고용노동부는 권한이 없다. 간접고용이 되려면 국방부가 나서 SOFA를 개정해야 하고,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항목별로 바꾸려면 외교부가 나서야 한다”면서 “하지만 두 부처 모두 미국 눈치만 보고 있다. 그 결과 우리 돈을 내고도 한국인 노동자의 생존권은 더욱 위험해지는 역설적인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우리는 노예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주한미군 한국인노조는 사태 해결을 위해 일본처럼 간접고용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체 1만2000여 명의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 중 충당 노동자 8600여 명에 대해 75%까지 지원이 가능하다.

 

반면 주일미군의 경우 인건비를 일본 정부가 100% 지원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의 경우 미군의 인건비 부담이 없기 때문에 원활한 업무수행에 필요한 인원을 충당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인건비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턱없이 모자란 한국인 노동자를 채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 위원장은 “한국 정부가 고용을 책임지는 간접고용제로의 전환이 한국인 노동자의 고용안정과 방위비 분담금의 투명성을 높이는 길”이라면서 “방위비 분담금의 산출과 사용의 투명성은 한·미 동맹을 증진시키고 협상 때마다 벌어지는 국론 분열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간접고용제로의 전환에는 SOFA 노무조항의 개정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면서 “현재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는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사용자가 현재 주한미군에서 대한민국 정부로 변경되면, 한국인 노동자는 SOFA 노무조항의 적용이 아닌 대한민국 노동법의 전면적인 적용을 받게 된다. 이는 노동기본권 회복을 통한 자국민 보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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