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스타트업 통해 경제 성장 돌파구 찾았다
  • 차여경 시사저널e. 기자 (chacha@sisajournal-e.com)
  • 승인 2018.05.29 09:47
  • 호수 1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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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규제 완화·해외 진출 장벽 낮아져…국내 스타트업·액셀러레이터도 진출 ‘봇물’

 

신성장 동력을 찾는 국가들이 많아지고 있다. 특히 대기업 중심 산업이 강세였던 아시아 국가들이 눈에 띄게 변화를 추구하는 중이다. 그중에서도 일본은 한국과 경제 측면에서 많이 닮아 있는 나라다. 폐쇄적인 기업문화와 생계형 직종에 집중된 창업, 제조업에 집중된 수출 등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았다.

 

일본은 스타트업에서 그 돌파구를 찾고 있다. 지지부진한 경제 산업에 불씨를 붙이기 위해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스타트업을 옭아매던 규제를 완화하고 창업 지원에 두 팔을 걷고 나섰다. 일본 기업과 투자자들은 자국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해외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일본 경제의 생태계가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일본 기업이 크게 늘고 있다. 사진은 ‘스타트업 인디아’ 출범식에 참석한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 © 연합뉴스


 

일본 스타트업 성장 동력은 ‘정부 정책’

 

일본이 스타트업 유망국가로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정부의 파격적인 정책을 빼놓을 수 없다. 현재 일본 정부는 자국 스타트업 50개를 해외로 파견하는 ‘비약(飛躍) 정책’에 이어 적극적으로 투자, 규제 완화 육성책을 내놓고 있다. 신기술을 보유한 혁신 스타트업과 지역 기반 스타트업을 동시에 지원하는 전략도 운영 중이다.

 

창업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일본 기업들이 M&A(인수·합병) 시장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간 일본 투자회수(EXIT) 시장은 대부분 상장과 기업공개(IPO)로 이뤄져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스타트업을 인수하려는 일본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M&A 선례가 생기기 시작했다. 통신사 KDDI, 제조업체 도요타·소니 등이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 스타트업들을 눈여겨보고 있다. 

소프트뱅크, 라쿠텐 등 성공한 창업 기업들도 선순환의 토양이다. 일본 정보기술(IT) 기업 소프트뱅크와 온라인 쇼핑몰 라쿠텐은 IT·통신·AI까지 범위를 넓히고 있는 1세대 스타트업이다. 두 기업 모두 후배 스타트업 투자와 M&A에 집중하고 있다. 일본 창업 생태계가 ‘개방형 혁신’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방증이다.

 

유마 사이토 딜로이트재팬 벤처지원부문 대표는 “일본도 한국처럼 혁신과 거리가 멀었다. 대기업들이 산업을 이끌어 나갔다. 하지만 스타트업 M&A와 투자를 최근 몇 년간 눈에 띄게 끌어올렸다. 일본은 스타트업에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무엇보다 창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 일본 스타트업 환경이 성장한 이유다. 스타트업에 대한 시선이 좋아지자 자연스럽게 대기업들도 스타트업 투자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스타트업 또한 일본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기술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컴퍼니비와 소프트뱅크는 얼마 전 일본 진출 워크숍(Go to Japan)을 열었다. 일본에 진출하고 싶은 국내 스타트업들을 대상으로 현지 기업과의 대화와 유통망 진출 전략을 알려주는 행사다. 스타트업 자문그룹을 신설한 딜로이트그룹은 일본 지사와 함께 꾸준히 해외 진출과 투자 피칭을 진행 중이다. 한국무역협회도 일본 투자자를 한국에 초청해 스타트업과 연계하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 유망 기업의 일본 진출을 모색하는 행사인 ‘재팬부트캠프’에서 김상헌 전 네이버 대표이사가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일본 시장 노리는 한국 스타트업 ‘시동’

 

이미 일본 시장 진출에 시동을 건 한국 스타트업들도 많다. 숙박앱 스타트업 야놀자는 일본 최대 온라인 여행 플랫폼 라쿠텐라이풀스테이와 독점 제휴를 맺고 일본과 국내 숙박 정보를 공유할 예정이다. 스마트프린팅 스타트업 망고슬래브는 접착식 메모지프린터 네모닉으로 일본 시장에 진출해 NHK에 소개됐다. 국내에 잘 알려진 모바일 잠금화면 앱 버즈빌도 일본에서 잘나가는 앱 중 하나다.

 

권오수 버즈빌 글로벌 비즈니스 이사는 “일본 내에는 (모바일 잠금화면 앱 시장) 경쟁자가 있지 않다. 점유율이나 사용률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하기는 어려우나 현지 사용자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다. 앱을 설치한 후 30일 동안 이용하는 30일 기준 잔존율의 경우 50%가 넘을 정도로 높으며 이는 타 국가 대비 10%가량 높은 수준”이라며 “버즈빌 일본 법인은 2016년부터 연 손익 기준으로 흑자를 달성했다. 올해는 B2B(기업 간 거래) 서비스 모델인 버즈스크린을 통해 공격적인 확장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 이사는 이어 “일본은 우선 시차가 없고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점에서 진출 시 물리적 부담이 덜한 곳”이라며 “시차와 물리적 거리가 먼 시장을 개발하고 관리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쉽지 않은 일이다. 미국 법인을 운영 중이라 몸소 느끼고 있다. 파트너 회사나 법인 직원의 질의와 피드백 처리에서도 본사를 거치게 되면 시차로 인해 최소 1일 이상의 지연이 발생한다. 핵심 기술과 플랫폼 개발을 본사에서 하고 있는 만큼 이러한 부분을 현지에서 직접 처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국내 스타트업 업계는 일본 스타트업 생태계를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리적 이점 외에도 투자 활성화와 해외 진출 장벽이 낮기 때문이다. 또 스타트업 육성을 경제 활성화 방안으로 꼽은 일본 정부의 지원이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권 이사는 “확실히 일본 스타트업 생태계 자체는 훨씬 활성화되고 있는 것 같다”며 “스타트업 관련 행사도 점차 많아지고 있고 전통적인 대기업들도 여러 방식으로 스타트업과의 협업 및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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