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갑질’에 저항하라
  • 김정헌 화가 (前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5.30 09:38
  • 호수 1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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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이 저항해야 이 나라에 평등의 시대 열린다

 

우리 사회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갑질이 일어난다. 별자리 장성에서부터 회사 회장님, 사장님, 전무님, 교수님 등 직위가 높거나 돈이 많거나 해야 갑질을 잘한다. 널리 알려진 ‘땅콩회항’ 사건이 대표적이다. 식당이나 열차, 비행기 등을 이용하면서 그들에게 서비스하는 사람들을 막 대하는 등 진상을 떨며 갑질을 한다.

 

대학교에서는 교수님이 학생이나 조교들을, 기업에서는 최고경영자나 그 가족들이 직원들을 물건 다루듯 마구 대하거나, 어느 정치인이 공항을 나오면서 ‘노 룩 패싱’하듯 인간을 불평등하게 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외국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분명히 갑질에서는 대한민국이 일등이다. OECD에 속한 나라들에 대한 통계가 매일같이 나오지만 이 대한민국의 갑질은 통계에 나오지도 않는다. 하도 갑질이 많으니 통계 잡기도 어려울 것이다.

 

갑질이란 ‘갑’과 ‘을’의 계약 권리상 쌍방을 의미하는 갑을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갑’의 좋지 못한 행동, 폭언·폭행 등을 말한다. 이 갑질의 유래는 유교사회인 조선시대에서 비롯되었다. 양반과 쌍놈으로 대표되는 조선시대의 신분사회가 이런 갑질의 원조다.

 

나어린 양반집 자제가 늙수그레한 하인들에게 말을 놓는 것이 예사다. 장유유서나 남존여비의 질서에 따라 상대방에게 지배력을 행사한다. 이런 유교적·수직적 지배력이 현대에 와서 권력이나 돈으로 그 지배력이 바뀐다.

 

5월25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한진그룹 조양호 일가 및 경영진 퇴진 촉구 4차 집회에 참가한 대한항공 직원들이 조 회장 일가의 퇴진을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다른 한편 쌍방 계약 관계에서 하위의 당사자인 ‘을’에게 보통 ‘을질’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을’이란 보통 ‘놈’(이 말은 오구라 기조가 쓴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서 한국의 수직 사회, 즉 ‘님- 나- 놈’에서 따온 말이다)으로 나이가 어리거나 여성이거나(여성은 놈 대신에 년을 쓴다), 기업의 피고용자에게 많이 쓴다.

 

‘을’은 사회적으로 ‘갑’에 비해 항상 불리하거나 불평등한 상황에 놓여 있다. 피고용자에 속하는 노동자들은 기업을 경영하는 사용자들에게 노사 협약에서 밀리기 일쑤다. 삼성처럼 무노조로 일관하거나 어용노조를 내세워 노조를 파괴해 온 기업의 갑질은 익히 보아온 터이다.

 

정부하고의 관계에서도 ‘을’은 항상 취약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박근혜 정권에서의 블랙리스트다. 비교적 자유스러운, 자율적인 예술가들을 1만 명이나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면서 최악의, 최대의 갑질을 일삼았다. 그들 농단 세력들은 지금 수감돼 있지만 그동안 그들의 갑질에 예술가들은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대표적인 ‘을’의 피해 사례다.

 

‘갑’질이 늘어날수록 ‘을’들의 저항도 거세지고 있다. 대표적인 게 서지현 검사의 ‘미투’ 후에 여기저기서 ‘미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동안 ‘을’의 위치에서 당하고만 있던 여성들의 감성혁명이다.

 

옛날에 이런 얘기가 있다. 행세깨나 하는 양반이 갑자기 내린 비에 개울물이 불어나 건너지 못하고 있을 때 이를 딱하게 여긴 인근의 농부가 자기 등에 업히게 해서 개울을 건너는데 이 양반짜리가 대뜸 “자네 어디 사는 누군가? 내가 말을 놓겠네”라고 하니 이를 들은 농부가 “그럼 나도 놓겠네”해서 망신을 당했단다. 그렇다. ‘을’은 당하지만 말고 당연히 저항해서 ‘갑’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이 나라에 평등의 시대가 열린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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