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친서, 적극적·우호적 내용 담겼을 것"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18.05.3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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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에 전달할 회심의 두 번째 서한, 북·미 대화 윤활유 될 듯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親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가고 있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5월30~31일 방미 일정에서 특히 관심을 모으는 부분은 김 위원장의 친서다. 북·미 정상회담 취소 소동과 이후 양측 간 치열한 실무회담 수싸움 등을 고려할 때 친서가 무사히 전달될지 100% 장담할 순 없는 상황이다.

 

이번 북·미 대화판은 문재인 정부가 주선했으나, 마중물은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였다. 친서는 말 그대로 친밀한 서한이다. 한 나라의 국가 원수가 다른 나라의 국가 원수와 좋은 관계를 도모하고자 할 때 보낸다. 김 위원장은 지난 3월 트럼프 대통령에게 쓴 친서를 남측 대북 특사단에 쥐여줬다. 특사단은 곧바로 미국 워싱턴DC로 날아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 친서를 배달했다. 

 

북한에 대해 '최대한의 압박' 기조를 이어가면서도 대화의 가능성을 닫지 않고 있던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 친서를 접한 뒤 자세를 확 틀었다.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진정성 있게 받아들이고 급기야 정상회담을 열자고 밝혔다. 하지만 세계사적 대전환은 그리 호락호락하게 허락되지 않았다. 북·미 사이 공고한 불신의 벽은 극심한 진통을 불러왔다. 파국으로 치달았던 정상회담 준비가 겨우 재개된 가운데 김정은 친서의 재등장은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 2월10일 문재인 대통령 초청으로 청와대를 방문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접견실에서 오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든 모습. ⓒ 연합뉴스

  

 

김영철, 전격 방미…트럼프에게 김정은 친서 전달할 듯 

 

북한의 대표적 정보라인인 김영철 부위원장은 5월30일 중국 베이징에서 미국 뉴욕으로 출발했다. 그는 뉴욕에 도착한 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릴 북·미 정상회담 의제에 대해 최종 조율할 계획이다. 북한 최고위급 인사가 미국을 찾는 것은 18년 만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인 2000년, 조명록 북한군 차수(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특사로 워싱턴DC를 방문했다. 조명록 차수는 미 국무부에서 매들린 올브라이트 장관과 면담한 뒤 백악관을 찾아 클린턴 대통령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클린턴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 친서를 전달받았다. 이번에 김 부위원장도 폼페이오 장관과 만난 후 김정은 위원장 특사 자격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예방하고 김 위원장 친서를 전달할 여지가 많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불가능한 스타일 등을 고려할 때 북·미 고위급 회담 결과에 따라 김정은 위원장 친서 수령 여부가 결정되지 않겠느냐고 관측한다. 그러나 김영철 부위원장이 김 위원장 친서를 가져온 이상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바람 맞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트럼프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4, 5월 두 차례 방북한 폼페이오 장관도 김 위원장을 면담한 바 있다"며 "김영철-폼페이오 회담이 파탄나지만 않는다면 큰 어려움 없이 친서 전달이 성사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측 간 오랜 적대 관계에 종지부 찍자는 내용일 것"  

 

최대 관심사는 친서에 적힌 내용이다. 정성장 실장은 천신만고 끝에 대화 불씨가 살아난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기대하는 표현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정 실장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전이 보장되면 북한이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기존 주장을 조금 바꿔 얘기할 듯하다"면서 "'미국이 북한에 신뢰할 만한 체제 보장을 해주면 우리도 미국이 신뢰할 비핵화 조치로 호응할 준비가 돼 있다. 미국과 적대 관계가 계속 유지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과 싱가포르에서 만나 양측 간 오랜 적대 관계에 종지부를 찍고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길 바란다'는 내용 정도가 아닐까"라고 전망했다. 

 

정영태 북한연구소장도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과 명확한 의지를 밝히고, 이행·실천하는 데 있어 '우리가 이 정도는 할 테니 이런 반응을 보여 달라'는 게 친서에 담기지 않겠느냐"며 "구체적인 의제에 관한 입장은 실무협의에서 피력하고 있겠지만, 큰 그림은 친서를 통해 마지막으로 전할 것이라 본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정은 위원장은 2011년 북한을 이끌기 시작한 이후 문서를 통한 통치·외교 활동, 이른바 서신 정치를 활발히 펼쳐왔다. 북한 내부에선 여러 조직과 행사에 수시로 서한을 보내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또 취임 후 해외를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을 때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에게 친서를 보냈다. 남한 대통령에게는 지난 2월10일 처음 친서를 전달했다. 당시 친서는 김 위원장 특사 자격으로 동생 김여정 제1부부장이 들고 왔다. 남북 관계 개선 의지와 관련한 내용이 포함됐다. 친서를 담은 서류철 겉면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라는 김 위원장의 국가 직책이 적혀 있었다. 외국으로 보내는 친서는 각 나라 언어로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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