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적십자 회담서 납북자 생사확인 가능성 주목
  • 인천 = 구자익 기자 (sisa311@sisajournal.com)
  • 승인 2018.06.07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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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 457명 등 납북자 516명…생사확인 시급

1967년 6월5일 오전 8시경.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조기를 잡던 풍복호가 북한군 무장선 10여 척에 포위당해 총격을 받고 납북됐다. 선원은 모두 8명이었다. 이들 중 5명은 1967년 9월25일 인천항으로 귀환했지만, 당시 57세였던 선주 최원모씨와 16살이던 선원 문경복씨 등 2명은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최씨는 한국전쟁 당시 8240 유격부대(켈로부대)의 선박대장으로 활동했던 사실이 드러나 북한에 억류된 것으로 정보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켈로부대는 한국전쟁의 판세를 뒤집은 인천상륙작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알려진 부대다. 최씨는 2013년 6월27일에 정부로부터 납북자 최초로 켈로부대 소속으로 참전한 공로를 인정받아 화랑무공훈장을 추서받기도 했다. 이어 지난 6월5일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에 최씨의 위패와 2005년에 숨진 아내 김애란씨의 유골이 함께 봉안됐다.

 

최씨의 위패와 함께 놓는 명패에는 사망일이 없다. 대신 납북된 날짜가 적혀 있다. 이는 북한이 아직까지 최씨의 생사여부를 확인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은 2002년 4월에 진행된 제4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명단교환 시 최씨의 생사여부에 대해 ‘확인불가’로 통보했다. 최씨의 나이는 이제 108살이 됐고, 당시 15살이던 최씨의 아들은 백방으로 아버지의 생사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뛰어다니다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됐다.

 

 

한국전쟁 이후 납북자 516명, 대부분 생사 불투명

 

통일부와 전후 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에 따르면, 한국전쟁 이후 북한군 등에 의해 피랍된 납북자는 총 3835명이다. 이들 중 3310명은 송환됐고 9명은 북한에 억류돼 있다가 탈출했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납북자는 무려 516명에 달한다. 조기나 홍어, 명태 잡이에 나섰다가 피랍된 어부들이 457명이고, 이들을 보호하던 군인과 경찰은 30명이 납북된 상태다. 1969년 12월11일 강릉 발 서울 행 KAL기가 납치됐을 당시 승객과 승무원 50명 중 11명이 아직 북한에 억류돼 있으며, 학생 등 기타 납북자도 18명에 이른다.

 

납북자들의 출생지역별로는 강원도가 135명으로 가장 많고, 부산·경남 111명, 광주·전남 76명, 인천 51명, 대구·경북 43명이다. 이어 서울과 충남, 전북은 각각 19명이고, 경기 18명, 충북 6명, 제주 2명이다. 황해도와 함경남도, 평안북도에서 남한으로 이주했다가 피랍된 어부들도 14명이나 된다. 출생지역이 확인되지 않는 납북자도 3명이나 된다.

 

이들 중 최초의 납북자는 1995년 5월28일 대성호를 타고 연평도 앞 바다에서 조기잡이 조업을 하던 인천시 옹진군 주민 4명과 황해도 해주에서 옹진으로 이주한 4명 등 10명이다. 이들은 아직까지 생사여부가 확인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연평도 앞 바다에서 우리나라 해군 초계함이 NLL 부근을 경계하면서 운항하고 있다. ⓒ구자익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27일 손을 맞잡고 웃으면서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장면이 공중파를 타면서 납북자 생사확인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판문점 선언에는 ‘남과 북은 민족 분단으로 발생된 인도적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며, 남북적십자회담을 개최해 이산가족·친척 상봉을 비롯한 제반 문제들을 협의 해결해나가기로 했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이는 오는 6월22일 열리는 남북적십자회담에서 납북자들에 대한 생사여부 확인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논의될 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앞서 북한은 2002년 9월17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일본 총리가 방북해 고(故)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진행할 당시 일본적십자사에 일본인 납북자 등 14명에 대한 생사를 확인해 줬다. 북한적십자사는 생존자 4명과 사망자 8명, 북한에 들어온 적이 없는 대상 1명, 명단에 없는 대상으로서의 생존자 1명 등을 비교적 꼼꼼히 확인해 일본적십자사에 통보했다.  당초 일본적십자사가 생사확인을 요청한 6명 보다 많은 규모였다.

 

최성룡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 이사장은 납북자들의 생사확인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비핵화는 물꼬가 터졌지만 납북자들의 생사여부 확인 문제는 아직도 캄캄하다”며 아쉬워했다. 이어 “납북자나 그 가족들은 이미 고령이다”며 “정부가 납북자의 생사확인을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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