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고법원장의 갑작스런 자살 미스터리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18.06.11 09:58
  • 호수 149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故 이태운 변호사 지인들 “의뢰인 때문에 심적 고통”…의뢰인 안씨 “내가 아닌 다른 이유”

 

전직 서울고등법원장, 대법관 후보, 전효숙 전 헌법재판관의 남편,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후견 법인 이사장. 화려한 이력의 이태운 법무법인 원 대표변호사 겸 사단법인 선 이사장(71)이 지난 3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법조계가 충격에 빠졌다. 주변 신망도 두터웠던 유명 법조인이 황망하게 죽자 세간의 이목이 쏠렸다. 하지만 자살을 한 이유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전혀 없다시피 했다. 이 변호사의 유가족은 물론 그가 몸담았던 법무법인과 동료 법조인들도 모두 함구했다. 궁금증이 증폭되면서 일각에선 “롯데나 이명박 전 대통령 검찰수사와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제기될 정도였다. 

 

이태운 변호사가 서울고등법원장이었던 2009년 국회 국정감사에 임하는 모습 ⓒ연합뉴스

 

 

의뢰인과의 대출 문제로 이 변호사 곤경

 

이태운 변호사의 자살 사건이 일어난 지 3개월째. 여전히 그의 죽음에 대해 구구한 억측만 나도는 가운데, 최근 이 변호사 주변 지인들이 그의 자살 원인에 대해 한 사건을 거론하고 있다는 얘기가 기자에게 전해져 왔다. 이 변호사는 사망 직전 친한 지인들에게 2016년 불거진 ‘고금리 대출 의혹’ 사건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인으로 쌓아왔던 그의 명예와 건강은 해당 사건 이후 급격히 무너져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2010년 법복을 벗고 처음 수임한 사건에서 시작된 의뢰인 안아무개씨(여·62)와의 악연이 죽음 직전까지 그를 따라다녔다는 게 주변 지인들 전언이다. 이에 대해 안씨는 “말도 안 된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이 변호사의 갑작스러운 자살로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가 됐다는 안씨는 기자에게 또 다른 자살 원인을 지목했다. 점점 더 미궁에 빠져드는 이 변호사의 자살 사건을 되짚어봤다.

 

3월8일 정오쯤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단지 화단에 이태운 변호사가 숨져 있는 것을 이웃 주민이 발견해 119에 신고했다. 이날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이 변호사의 고소로 법정에 선 안씨가 재판을 받고 있었다. 재판 도중 이 변호사 사망 소식을 전달받은 재판부는 5분간 휴정을 선언했다. 안씨는 찾아온 기자들 몇몇이 이 변호사 사망에 관해 묻자 “그분이 왜 죽나. 혹시 동명이인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 “내가 없는 사실을 지어낸 적이 없는데 이 변호사가 나를 무고죄로 고소해 지난 1년6개월 동안 재판받았다”며 “오히려 내 땅을 돌려주고 처벌도 받아야 할 텐데, (그가) 이렇게 죽어버리면 어쩌느냐”며 놀라워했다. 

 

앞서 이태운 변호사는 자신에 대해 고금리 대출과 횡령 의혹을 제기한 안씨를 무고 혐의로 고소했다. 안씨는 서울 강남의 금싸라기 땅으로 유명한 서초구 내곡동 ‘대청마루’ 부지를 두고 매도인 정아무개씨(72)와 소유권 이전 등기 및 명도 소송을 하려고 2010년 이 변호사를 선임했다. 안씨는 정씨로부터 2002년 3월과 2004년 5월 두 차례에 걸쳐 이 땅을 매입했다. 그러다 2005년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임대주택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땅값이 30억원에서 42억여원으로 급등했다. 정씨는 돈을 더 달라고 했고, 안씨가 이를 거부하면서 분쟁이 생겼다. 양측 간 조정으로 결국 안씨가 매매대금의 잔금(25억5000만원), 즉 추가금을 치르고 부지 소유권을 얻었다. 

 

이태운 변호사 사망 후에도 사단법인 선 홈페이지의 이사장 인사말은 바뀌지 않고 그대로다. ⓒ사단법인 선 홈페이지 캡처


 

잘 마무리되나 싶었던 사건은 안씨가 잔금을 급히 구하느라 거래한 한 대부업체와 마찰을 빚으면서 제2라운드로 흘렀다. 건설 대기업 부영그룹의 계열인 부영대부파이낸스(부영파이낸스)는 이태운 변호사의 주선으로 안씨에게 23억원을 빌려줬다. 이 변호사의 고향(전남 광양) 후배가 부영파이낸스 대표로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안씨와 부영파이낸스는 곧 소송을 벌이게 된다. 안씨는 “고액의 이자를 착실히 갚는 와중에 부영파이낸스에서 갑자기 대출기한 연장을 거부하고 경매 신청을 했다. 회생 신청도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부영파이낸스는 “처음부터 3개월 단기 대출이었고, 상환 기한을 한 번만 3개월 연장해 주는 계약이었다”고 반박했다. 

 

이 변호사는 자신이 대표변호사로 있는 법무법인 원의 자금 5억원도 안씨가 빌리도록 했다. 안씨는 채무 변제에 실패했고, 결국 이 부지는 경매를 통해 L업체에 넘어갔다. 2015년 안씨가 경매 절차의 무효를 인정받으려 제기한 소송은 패소로 결론 났다. 그러자 안씨는 이 변호사를 전방위로 공격하고 나섰다. 그는 애초 이 변호사의 강권으로 원치 않는 조정을 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L업체가 부영파이낸스의 하청 건설업체라는 의혹도 제기하며 “이 변호사가 부영파이낸스 대표와 짜고 대청마루를 가로채려 한 것”이라 해석했다. 안씨는 “이 변호사가 법무법인 원의 자금을 고금리로 빌려주면서 2억3000여만원을 성공보수 명목이라고 떼어갔다”며 “(소송에서) 성공도 안 해 놓고 무슨 성공보수를 받느냐”고 비판했다. 당시 안씨의 주장은 2016년 2월 그대로 한 중앙일간지에 보도됐다. 보도 직후 대한변호사협회는 경위 조사 등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이 변호사는 순식간에 ‘비리 변호사’로 낙인찍혔다. 법원에서 퇴직하고 이제 갓 변호사로 첫발을 뗀 그의 변호사 경력은 첫 사건에서부터 망가졌다. 

 

 

법원·검찰이 손 들어줬지만, 극단적 선택

 

그러나 이어진 법·제도적 절차는 모두 이태운 변호사의 손을 들어줬다. 변협은 제기된 의혹과 관련해 2016년 3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이 변호사로부터 경위서를 받았다. 그 사이 검찰은 2016년 6월22일 안씨의 형사 고소에 대해 ‘이 변호사의 혐의가 없다’며 불기소 처분했다. 안씨가 이에 불복해 항고했으나, 이에 대해서도 2016년 9월27일 최종 항고 기각 결정을 내렸다. 나지수 변협 대변인은 “세 가지 혐의 중 업무상 횡령, 배임수재에 대해서는 검찰의 불기소 결정에 따라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며 “의뢰인과의 금전 거래(법무법인 자금 5억원 대출 알선)는 변호사 품위유지 위반에 해당하나, 징계 시효가 지난 데다 선의로 빌려준 점도 참작돼 2016년 11월28일 징계 각하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나 대변인은 또 “사건 조정은 성공으로 간주하므로 당연히 성공보수는 받아야 했다”고 덧붙였다. 

 

이 변호사는 변협에 제출한 경위서에서 ‘선의로 의뢰인 안씨를 도왔다’ ‘자신이 유명인인 사실을 안씨 측에서 이용해 정당한 채권 추심을 방해하고 있다’는 점 등을 어필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사건을 최초 보도한 일간지는 법원 명령에 따라 올해 1월 “사실 확인 결과 이 변호사가 조정을 강권한 사실이 없고, 애초부터 자신의 고교 동창(보도에서 안씨 진술에 따라 고향 후배를 고교 동창으로 잘못 기재)과 짜고 대청마루를 가로채려고 한 사실도 없으며, 위와 같은 의혹은 제보자의 일방적 주장으로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바로잡는다”는 정정보도를 냈다.

 

비극의 씨앗이 된 서울 서초구 내곡동 ‘대청마루’ 부지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