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회담 전야에 싱가포르 구경 다닌 이유
  • 싱가포르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8.06.12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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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은 남·북‧미‧싱가포르 모두 ‘윈윈’ (上)

 

세계인의 눈이 싱가포르를 향하고 있다. 세계 주요 외신들은 6월12일 열린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 담긴 의미를 분석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이번 회담은 한국전쟁 이후 첫 북·​미 정상간 직접 대화라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북한과 미국이 회담 장소를 싱가포르로 택한 것은 양국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김정은, 중국식 아닌 싱가포르식 경제 개발 선호


회담 하루 전인 11일 밤 9시 김정은 위원장은 리수용 노동당 부위원장 겸 국제부장, 김여정 중앙위 제1부부장, 김창선 서기실장 등을 대동하고 싱가포르 시내를 둘러본 뒤 밤 11시 20분 호텔로 돌아왔다. 가든스바이더베이 등 싱가포르 유명 관광지를 둘러본 이날 현지 시찰에는 비비안 발라크리쉬난 싱가포르 외무장관과 옹예 쿵 교육부장관이 동행했다. 

 

세기의 담판이라고 불리는 중요한 일정을 앞둔 김 위원장이 현지 시찰에 나선 이유는 왜일까. 싱가포르 현지에서는 김 위원장의 머릿속에 북한 경제 개발의 롤모델로 ‘싱가포르식’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6월12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의 경제 발전이 인상적이다"며 "시내 야경을 구경하면서 싱가포르에 대해 배웠으면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의 경제 개발 방식을 북한에 그대로 적용하기란 쉬운 게 아니다. 하지만 북한 일부 지역을 경제 특구로 지정해 적용한다면 전혀 실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북한 지도부가 실제로 이를 연구하고 있다면 현재 북한 경제를 옭아 메고 있는 경제 제재가 풀려야 하며 이를 위해선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싱가포르는 아시아 경제부국으로 부패지수가 지역 내 가장 낮다. 자본의 이동이 쉬워 아시아의 금융허브로 불린다. 무엇보다 홍콩이 중국으로 편입된 이후 아시아 금융, 물류 허브의 위상은 한층 높아지고 있다. 

 

싱가포르 세인트리지스 호텔에 머물던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1일 오후 9시 4분(한국시간 오후 10시 4분)께 전용차를 타고 호텔을 떠나 싱가포르의 초대형 식물원 가든바이더베이의 대표적 관광명소를 차례로 둘러봤다. 사진은 이날 마리나베이샌즈 호텔 전망대에 선 김정은이 손가락으로 창 밖을 가리키며 싱가포르의 비비안 발라크리쉬난 외무장관과 대화하는 모습 (사진 = 연합뉴스)


권력세습‧주민통제 싱가포르 모델에 매력

 

반대로 사회 민주화 지수는 경제 발전 수준에 비해 낮다. 정치 결사단체를 설립하는데 제약은 없지만, 독립 이후 인민행동당의 집권은 계속되고 있다. 현 총리는 싱가포르의 국부이자 초대총리인 리콴유의 아들 리센룽이다. 리콴유와 마찬가지로 리센룽은 국가원수라기보다 기업 CEO(최고경영자)에 가까운 모습이다. 지금까지 치러진 총선에서 집권당인 인민행동당이 패배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매번 거의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를 거두고 있다. 집권당을 견제할 야당의 존재감은 찾아보기 힘들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조사한 언론자유 지수를 보면, 싱가포르는 조사 대상 180개 나라 중 151위(2018년 기준)다. 사회 근간을 뒤흔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태형(곤장)으로 다스린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 역시 법에서만 인정할 뿐 사실상 불가능하다. 싱가포르에서 무역업을 하는 김재관씨는 “집권세력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많지만 공개된 자리에서 정치 얘기를 꺼내는 경우는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싱가포르는 공공연하게 권력이 세습되고 있다. 지난해 6월 리센룽 총리의 동생인 리센양과 리웨이링은 리 총리가 아들인 리홍이에게 권력을 그대로 넘겨주려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싱가포르의 사례는 체제 안정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는 북한 김정은 정권 입장에서는 구미가 당길 만하다. 뿐만 아니라 상당수 국영기업을 총리 일가가 소유하고 있는 점도 북한에게는 참고가 될 수 있다. 

 

이복형인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암살되기 전까지만 해도 북한과 싱가포르 양국은 끈끈한 우호관계를 보여왔다. 민간 교류도 활발해 싱가포르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하는 비정부기구 조선익스체인지(Choson Exchange) 2007년부터 지금까지 북한 주민 2만명을 대상으로 경제, 기업경영 노하우 등을 교육시키고 있다. 

 

문제는 대외적인 이미지다. 특히 김 위원장에게 씌어진 독재자 이미지를 걷어내는 게 급선무다. 그런 다음 안전한 투자처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자본, 인력 유출입이 자유로워야 한다. 현재까지 상황을 놓고 보면 북한이 그 정도까지 문호를 개방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 계속해서 북·미 정상회담은 남·북‧미‧싱가포르 모두 ‘윈윈’ (下)편☞트럼프-김정은이 싱가포르서 만난 이유 기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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