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관계②] 김정은, 싱가포르 파격 행보 숨은 의미
  • 싱가포르 = 송창섭·공성윤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8.06.15 16:20
  • 호수 1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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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김정은 공동주연 ‘싱가포르 3일’ 밀착 취재(中)

※ 앞선 ‘트럼프·김정은 공동주연 ‘싱가포르 3일’ 밀착 취재’ (上)편에서 이어지는 기사입니다.

 

싱가포르 현지에선 입국 당시부터 김 위원장의 행보를 예사롭게 보지 않았다. 리커창 중국 총리의 전용기를 빌린 김 위원장은 당초 회담 하루 전 싱가포르를 찾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하루 앞당긴 10일 전격적으로 입국했다. 현지 언론은 “북한 측 협상단이 창이공항 착륙 2시간 전까지 싱가포르 정부나 공항 쪽에 어떠한 통보도 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싱가포르 도착 후 김 위원장의 행보는 전 세계 언론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입국 장면은 비비안 발라크리쉬난 싱가포르 외무장관의 트위터를 통해 생중계됐다. 북한은 그간 김 위원장의 동선에 민감해하던 것과 달리 별다른 항의를 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발리크리쉬난 장관은 김 위원장의 입국뿐만 아니라 다음 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 간 오찬 장면도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찍어 트위터에 올릴 정도로 유명한 ‘트위터리안’이다. 

 

싱가포르 도착 다음 날 김 위원장은 숙소인 세인트레지스 호텔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전 세계 미디어가 김 위원장 숙소 주변에 진을 치고 기다렸지만 별다른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다. 그러던 북한 측 숙소에 변화가 감지된 것은 11일 오후부터다. 이날 오후 싱가포르 외교가에는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 현지시찰에 나설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오후 들어 북한 경호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소문은 기정사실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 직후 미국과의 실무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싱가포르 현지시찰은 없던 일로 바뀌는 듯했다. 

 

그랬던 김 위원장이 전격적으로 호텔을 빠져나와 싱가포르 시내 관광에 나선 것은 오후 9시. 또 하나의 파격이었다. 일부 취재진이 철수한 틈을 타 김 위원장은 마리나베이 근처 식물원 가든즈 바이 더 웨이,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 전망대, 머라이언 파크 등을 둘러봤다. 일부 싱가포르 시민과 관광객을 보고는 손을 흔드는 모습도 이례적으로 연출했다. 이날 싱가포르 시내 시찰에는 발라크리쉬난 싱가포르 외무장관과 옹예 쿵 교육장관이 동행했으며 일정을 마친 후 김 위원장은 밤 11시20분 호텔로 돌아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싱가포르 경제개발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사진은 김 위원장이 회담 하루 전인 6월 11일 밤 싱가포르 시내 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들어가는 모습 ⓒEPA 연합

 

 

회담 하루 전 싱가포르 관광한 김정은

 

세기의 담판이라고 불릴 정도로 중요한 일정을 앞둔 김 위원장이 현지시찰에 나선 이유는 뭘까. 현지에선 김 위원장이 북한 경제개발 모델로 ‘싱가포르식(式)’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6월12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포르의 경제 발전이 인상적이다. 많이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그동안 서구 언론이 북한의 경제개발 모델로 많이 거론한 것은 중국식·베트남식 모델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식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그 자체가 파격적이다. 자본의 출입이 자유로운 싱가포르 경제개발 방식을 북한 전역에 적용하기는 힘들지만 일부 경제특구에만 한정한다면 실현 불가능한 문제는 아니다. 

 

중국과 베트남, 싱가포르의 공통점은 권력구조가 독점화돼 있다는 점이다. 중국과 베트남이 공산당 일당 독재라면 싱가포르는 국부인 리콴유 전 총리가 세운 인민행동당의 집권이 건국 이래 계속되고 있다. 현 총리인 리센룽은 리콴유의 장남이다. 권력 세습에 대한 국민적 저항도 전혀 없다. 지난해 6월 리센룽 총리의 동생인 리센양과 리웨이링은 리 총리가 아들인 리홍이에게 권력을 넘겨주려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 역시 별다른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이러한 싱가포르의 사례는 체제 안정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는 김정은 정권 입장에선 구미가 당길 만하다. 

 

또 싱가포르의 민주화 지수는 경제발전 수준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다. 정치 결사체를 만드는 데도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 리콴유와 마찬가지로 리센룽 총리는 국가 원수라기보다 기업 CEO(최고경영자)에 가깝다. 올해 ‘국경 없는 기자회’의 언론자유 지수 조사에서 싱가포르는 조사 대상 180개 나라 중 151위를 기록했다.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태형(곤장)으로 다스린다는 점은 싱가포르의 사회발전 수준이 아직도 전근대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싱가포르에서 무역업을 하는 김재관씨는 “집권세력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많지만 공개된 자리에서 얘기를 꺼내는 경우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상당수 국영기업을 총리 일가가 소유하고 있는 점도 북한엔 참고가 될 수 있다. 김 위원장 집권 이후 북한이 가장 신경을 쓴 것이 핵기술 개발이지만, 정작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긴 것은 경제구조 개선이다. 4월20일 김 위원장이 주재한 노동당 중앙위 제7기 제3차 전원회의(7기 3차 전원회의)에서 북한은 “경제건설과 핵 병진노선이 위대한 승리로 결속됐다”고 밝힘으로써 앞으로 국정운영의 중심을 경제개발 쪽으로 옮길 것을 천명했다. 특히 원산 갈마지구 개발은 북한 지도부의 숙원 사업이다. 5월26일자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의 원산 갈마지구 현지시찰을 1~2면에 걸쳐 소개하면서 “군민이 힘을 합쳐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을 최단기간 내에 완공하는 데 대한 전투적 과업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 

 

※ 계속해서 ‘트럼프·김정은 공동주연 ‘싱가포르 3일’ 밀착 취재’ (下)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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