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은 굿 프레지던트… ‘중재자’ 이전에 ‘조력자’”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8.06.1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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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 진행 도중 회담장 앞에서 만난 외신 기자들의 솔직한 이야기

 

“기자가 기자를 취재하면 되나.”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 때 남한을 찾은 한 북한 기자가 우리 취재진에게 쏘아붙였다. 동종업계 종사자를 취재 대상으로 삼지 말라는 은근한 압박이었다. 일종의 언론계 ‘불문율’이랄까. 하지만 이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깨져버렸다. 

 

6월12일 오전 10시(한국시각), 세기의 담판이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시작됐다. 새벽부터 호텔 약 500m 밖에서 진치고 있던 각국 취재진들은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호텔로 이어지는 도로가 전면 통제돼 인상적인 장면을 취재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호텔 입구 쪽만 바라보던 취재진의 눈길이 빠르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6월12일 오전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던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 앞. 100여명의 취재진들이 호텔로 들어가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모여들었다. ⓒ 시사저널 공성윤




기자가 서로를 취재했던 북·미 회담 진행장 앞

 

“몇 시부터 와 있었습니까?” 노트와 펜을 든 동양 남성이 기자에게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아침 7시20분쯤 왔는데, 한국 기자들 중엔 새벽 4시부터 온 사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에 남성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홍콩 ‘빈과일보’ 초이 위안 퀘이(薺元貴) 기자였다. 세월호 취재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한다. 

 

초이 기자는 “싱가포르 당국의 통제가 너무 심해 취재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역사적인 현장에 와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분된다”고 했다. 그에게 이번 정상회담을 어떻게 전망하는지 물었다. 

 

“솔직히 부정적인 입장이다. 우선 김정은은 너무 비밀스러운 독재자다. 의중을 헤아리기 쉽지 않다. 자신을 철저히 가리기 때문에 그가 하는 말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 또 트럼프 역시 믿기 힘들다. 그가 지금껏 파기한 조약이 너무 많다. 이번 회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홍콩 영자지 ‘아시아타임스’ 닐 보위(Nile Bowie) 기자의 입장도 비슷했다. 그는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는 사실 자체는 칭찬할 만하나 그 성과를 논하기는 아직 이르다”며 “미국 내에서 회담이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려면 의회의 법적 비준을 받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비핵화에 대해선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닐 기자는 “북한은 비대칭 전력으로서 핵무기를 개발했고, 그로써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 서게 됐다”며 “이번 협상 한번만으로 핵무기를 포기할 리 없다”고 했다. 일본 NHK 요코타 아카히로 기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얼마나 크다고 생각하나’는 질문에 그는 헛웃음을 지으며 “없다고 본다”고 짧게 답했다. 

 

 

홍콩 ‘빈과일보’ 초이 위안 퀘이(薺元貴) 기자 ⓒ 시사저널 공성윤




회담 개최 자체는 “GOOD”, 성과는 “글쎄…”

 

호주 일간지 ‘더 오스트레일리안’의 부편집장 닉 타바코프(Nick Tabakoff)의 얼굴에선 긴장한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빈손으로 취재진들 사이를 유유히 지나다녔다. 미소 띤 얼굴엔 여유가 넘쳐 보였다. 알고 보니 그는 취재가 아닌 휴가 목적으로 싱가포르에 왔다고 한다. 그에게 정상회담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러자 얼굴에 갑자기 진지한 기색이 나타났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얘기로 입을 열었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국제무대로 처음 이끌어 낸 지도자로서 인정받고 싶은 거다. 그가 생각하는 정상회담 성공의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또 북·미 정상회담이란 쇼에서 자신이 주인공임을 전 세계에 보여주려는 의도를 감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트럼프는 기본적으로 자아가 매우 강한(big ego) 사람이다. 게다가 노련한 협상가이자 쇼 비즈니스맨이다.”

 

반면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선 ‘훌륭한 협상가(good negotiator)’라고 표현했다. “김정은이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 핵무기를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호주 일간지 ‘더 오스트레일리안’의 부편집장 닉 타바코프(Nick Tabakoff. 자전거 타고 있는 사람). 그는 북.미 정상회담이 끝나고 싱가포르 당국의 경계가 풀리자 카펠라 호텔 앞을 지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 닉 타바코프 제공




“문 대통령은 합리적인 ‘조력자’”

 

그렇다면 외신 기자들은 북·미 정상의 만남에 있어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대만 종합뉴스채널 ‘SET’ 비비엔 웨이(Vivienne Wei) 기자는 “중재자로서 역할을 잘 해냈다고 본다”며 “문 대통령은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추켜세웠다. 

 

아시아타임스 닐 기자는 “문 대통령은 중재자이기 이전에 핵심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조력자)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중재자(moderator)는 대화가 구체적인 목표에 다다를 수 있도록 주도하는 사람을 뜻한다. 한편 퍼실리테이터는 대화 참여자들을 도와줌으로써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를 이끌어내는 사람을 가리킨다. 

 

닐 기자는 이어 “어쨌든 북·미 정상이 역사적인 첫 만남을 가진 데에는 문 대통령의 공이 컸다”고 했다. 또 “그는 지금까지 보면 좋은 대통령이다(He is good president so far)”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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