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팅으로 보는 세상, 지금은 ‘알루미늄의 시대’
  • 손민정 산업은행 선임컨설턴트 (mjson@kdb.co.kr)
  • 승인 2018.06.25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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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은행’의 ‘작은 컨설팅’ 이야기 5화] 인터뷰로 보는 현장, 지금 이 순간 세상에는 어떤 일이?

 

“목적지 부근에 도착했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안내를 종료하면, 필자 가슴은 나지막이 쿵쾅대기 시작한다. ‘오늘은 어떤 얘기를 듣게 될까’, ‘나는 무엇을 물어봐야 할까.’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제일 쫄깃한 순간, 바로 인터뷰를 하러 가는 길이다. 불편한 부분이 있어서 의사를 불렀는데, 문진하러 간 의사가 엉뚱한 처방을 내리면 안 되지 않는가. 행여나 필자의 질문이 오진을 불러일으킬까 걱정된다. 그래서인지 늘 인터뷰 직전엔 온 몸의 근육이 경직된다.

 

인터뷰는 컨설팅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현장에는 숫자, 그러니까 기업의 재무제표가 말해주지 않는 생생함이 있다. 인터뷰를 통해 필자는 기업을 이해하고, 산업을 배우며, 세상을 느낀다. 지난 3년여 간 시멘트·상용차·해운·건설·전기차·반도체·전력기기·기초소재 등 다양한 산업을 통해 세상을 봐왔다. 그 중 필자 눈에 가장 선명하게 들어온 산업, 아니 소재는 ‘알루미늄’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진행한 각기 다른 산업에서 알루미늄에 대한 동일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한 자동차 부품업체와 또 다른 건설 자재업체에서는 ‘알루미늄을 미래의 먹거리로 삼고 있다’라는 말을 했다. 그 이유도 한결같았다. 바로 ‘스틸의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대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알루미늄 휠 제조 공장 (사진 제공 = 산업은행)

 

소비자가 원하는 자동차 휠은?…가볍고 예쁜 게 좋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4월의 어느 날, 필자는 전북 김제의 한 상용차 부품 제조공장에서 자동차 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동차 휠이 원래 저렇게 반짝거렸나?’ 궁금해 하던 찰나, 인터뷰이가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셨다. “엄청 반짝거리고 예쁘죠? 순도 100% 다이아몬드로 표면처리를 하면 저런 빛깔이 나오고, 불순물이 많아질수록 색깔이 탁해져요.” 트럭·버스 하면 무겁고 둔탁한 이미지만 생각했는데, 반짝반짝 예쁠 수 있다는 건 신선한 충격이었다. 

 

자동차 휠 시장에서 알루미늄이 스틸의 자리에 들어가기 시작한건 꽤 된 일이다. 승용차의 경우 시중에 굴러다니는 휠은 거의 알루미늄이다. 스틸 대비 비싸긴 하지만, 가볍고 예뻐서 운전자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그 트렌드가 이제는 상용차로 넘어오는 중이다. 물론 트럭이나 버스 운전자가 반짝이는 바퀴를 갖고 싶어서 비싼 휠을 장착하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상용차에서 알루미늄휠이 매력적인 이유는 가볍기 때문이다. 연비 향상을 위한 부품경량화, 환경 규제에 따른 전기차 보급 확대 등 산업 트렌드가 바뀌면서 가벼운 알루미늄이 많이 주목받고 있는 듯하다.

 

사실 알루미늄이 인류의 사랑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세기만 하더라도 알루미늄은 금·은보다 더 몸값이 높았다. 알루미늄 애호가로 유명했던 나폴레옹 3세는 연회를 개최할 때 수저로 신분을 구분했다고 한다. 저명인사들에겐 알루미늄 수저를, 그보다 급이 떨어지는 인사들에겐 금과 은으로 만든 수저를 제공해 후자의 공분을 샀다는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다. 알루미늄이 귀했던 이유는 원석인 보크사이트에서 알루미늄을 분리하는 작업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는데, 전기분해기법으로 분리작업이 쉬워지자 자연스레 알루미늄의 지위도 귀금속에서 기초소재로 바뀌게 되었다.

 

알폼 시공 현장 (사진 제공 = 산업은행)

 

건설의 기본인 거푸집, 이젠 간단하고 실속 있게 조립하자

 

벚꽃이 지고 장미가 피기 시작할 즈음, 필자는 충북 음성공장에서 “땅! 땅! 땅!”하고 알루미늄이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건물에 들어가는 거푸집 자재를 만드는 소리였다. 자재는 네모난 알루미늄판에 구멍이 송송 뚫린 모양을 하고 있는데, 구멍 사이를 이어서 거푸집을 만든다고 한다. 조립하는 걸 좋아해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레고매장을 기웃거리는 필자에겐 너무나 해보고 싶은 작업이었다. ‘가까운 건설현장에 가서 딱 한 부문만 조립해본다고 부탁해볼까’라고 진지하게 고민했을 정도였다.

 

거푸집은 건물의 콘크리트를 굳히기 위해 사용된다. 전통적으로 건설현장에서는 스틸에 목재를 붙인 ‘유로폼’이라는 형태의 거푸집을 사용했는데, 요즈음은 단층건물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유로폼은 목수가 조립을 해야 하는데 요즘은 전문 목수를 구하기가 어렵단다. 폐기물 처리는 유로폼이 가진 또 하나의 약점이다. 목재는 재활용이 안 돼서 무조건 폐기처리를 해야 하는데, 거기에 드는 돈이 만만치 않다. 이 틈을 치고 들어온 게 ‘알폼’(알루미늄폼)이다. 알폼은 유로폼 대비 이동 및 조립이 쉽다. 알루미늄은 재활용이 되기 때문에 폐기비용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유로폼의 대안으로 자리 잡을 만하다.

 

여기서 필자 머릿속엔 물음표 하나가 떠올랐다. 음료수 캔, 은박지, 단추 등등 눈만 뜨면 보이는 게 알루미늄인데, 이 소재는 어떤 매력을 가졌기에 눈을 떠도 보이지 않는 건설자재나, 눈을 크게 떠야 보이는 자동차 휠에도 슬며시 자리를 깔고 앉는 걸까? 건축가인 판 데어 로데는 1956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알루미늄의 위험성은 이것을 가지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며, 정말 그 한계가 없다는 것이다.” 알루미늄은 가볍고 유연하며, 잘 부식되지 않는다. 전도율도 탁월하며 다른 금속과 결합해도 알루미늄의 여러 특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니까 알루미늄으로 사실상 거의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알루미늄이 가진 치명적인 매력이 아닐까? 

 

 

알루미늄의 미래, 스틸의 운명은?

 

스틸은 인류문명과 함께 발전해왔다. BC(기원전) 4000년경 소아시아의 어느 지역에서 청동의 원료를 잘못 채취한 덕분에 ‘어쩌다가’ 발견되어버린 스틸은 두드리고 녹이는 과정을 거쳐 무기로 만들어지고 공장에 들어갔다. ‘제련기술이 곧 국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스틸은 산업혁명을 이끈 주역이었다. 지금도 스틸은 현 인류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산업금속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철기시대부터 이어온 스틸의 왕좌는 이제 알루미늄으로 넘어가는 걸까?

 

1825년 덴마크의 한 화학자가 알루미늄을 발견한 이후, 알루미늄은 가벼움과 전도율, 그리고 성형력을 앞세워 스틸과 각을 이루었지만, 무른 성질 때문에 건설·자동차 등 안전성이 중요한 산업에선 큰 환영을 받지 못했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고 기술이 발전했으니 철기시대가 알루미늄의 시대로 바뀔 것 같기도 하지만, 필자의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글쎄’이다. 알루미늄이 스틸의 ‘보완재’는 될지언정 ‘대체재’는 안 될 듯하다. 바로 알루미늄의 본연적인 한계인 연성 때문이다. 알루미늄이 아무리 합금을 한들 강철의 단단함을 이길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전까지는 둘이 적절히 공존하고 알루미늄과 스틸의 장점을 모두 갖춘 소재에 대한 인간의 다양한 시도가 계속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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