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망천’ 발언 논란 그 후, 씁쓸한 뒷맛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18.06.25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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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논란 확산 불구 투표율 꼴찌…여전히 갈길 먼 지방자치도 난제

 

"서울에서 살던 사람들이 양천구, 목동 같은 데 잘 살다가 이혼 한 번 하거나 직장을 잃으면 부천 정도 갑니다. 부천에 있다가 또 살기 어려워지면 인천 중구나 남구나 이런 쪽으로 갑니다."

 

정태옥 의원(대구 북구 갑)의 이른바 '이부망천'(이혼하면 부천 가고, 망하면 인천 간다) 발언은 인천이나 부천은 물론  '지방'이라 불리는 모든 곳을 들썩이게 했다. 발언 후 20여일이 지났다. 그 사이 정 의원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유한국당을 탈당했다. 6·13 지방선거에서 인천시장과 부천시장엔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뽑혔다. 그러나 씁쓸한 뒷맛은 여전하다.

 

6월21일 인천 남동구 로데오거리 인근에서 정의당 인천시당 관계자들이 '이부망천 613소송인단 모집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 캠페인은 '이부망천(이혼하면 부천 살고 망하면 인천 산다)' 발언을 한 정태옥 의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고자 마련됐다. ⓒ 연합뉴스

  

 

‘이부망천’ 집단소송 동력 주춤…인천 투표율 또 꼴찌 

 

정 의원 발언으로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인천시민들은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정의당 인천시당은 정 의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로 하고 지난 6월11일부터 시민 소송인단을 모집해왔다. 지방선거 날짜에 착안해 소송인단 모집 목표는 613명이고, 소송액 또한 6억1300만원으로 정했다. 지방선거 효과를 등에 업고 6월20일까지 510여명이 모인 소송인단은 이후 좀체 늘어나지 않고 있다. 6월21일 인천 번화가에서 오프라인 모집 캠페인이 열렸음에도 증가 인원은 10여명에 그쳤다. 선거 이슈가 점차 사그라들고 있는 가운데 100여명을 더 모집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의당 인천시당 관계자는 "개인 인감, 서류 등을 제출해야 하고 소송 관련 비용도 분담해야 하는 사안이라 단순 서명보다는 참여자 모집이 힘든 게 사실"이라며 "모집이 완료되는 대로 소송인단 대표 선정, 일정 조율 등에 나설 예정"이라고 전했다.

 

앞서 인천의 지방선거 투표율이 전국 꼴찌를 기록한 점도 이부망천 응징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6월13일 오후 6시 투표를 마감한 결과, 인천의 잠정 투표율은 55.3%로 전국 광역지방자치단체 중 가장 낮았다. '이부망천 발언 때문에 인천 투표율이 높아질 수 있다'는 관측은 빗나갔다. 특히 정 의원의 비하 발언 때 직접 언급된 인천 중구와 남구는 투표율이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더 낮았다. 이를 두고 이부망천 발언이 정치 혐오를 불러일으켜 투표율을 떨어뜨린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지만, 과거를 돌아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인천 투표율은 최근 10여년간 지방선거, 국회의원 선거, 대통령 선거 등 9차례의 전국 단위 선거에서 전국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인천은 2006년 4회 지방선거에서 44.3%, 2007년 17대 대선에서 60.3%, 2012년 19대 총선에서 51.4%의 투표율로 전국 시·도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다른 선거에서도 인천 투표율은 17개 시·도 중 13위가 최고기록일 정도로 하위권을 맴돌았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인구통계학적 특성이 지목된다. 인천은 전체 유권자 중 토박이 비율이 낮고 다른 지역에서 유입된 인구 비중이 높다. 거주 지역에 대한 연대감과 귀속감이 떨어지고 지역 정체성도 옅은 탓에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의지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결국 이부망천이란 변수가 원래 낮던 인천 투표율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해석하는 게 더 맞아 보인다.   

 

 

해결 방법 안 보이는 서울중심주의, 무기력증 빠진 ‘지방’ 
 
시각을 넓히면 이번 사태는 지방 특유의 무력감과도 맞닿아 있다. 정태옥 의원 발언 직후 인천·부천 외 여타 지역에서도 반발 목소리가 나왔으나, 그때 뿐이었다. 오히려 온라인상에는 지방의 낙후되고 팍팍한 현실을 인정하는 반응도 심심찮게 등장했다. 한 네티즌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지방에서 올라오긴 했는데 '인(IN)서울' 못하는 사람들이 인천에 자리잡아 사는 게 틀린 말은 아니다"라고 적었다. 다른 네티즌은 "서울에서 지방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을 실패했다고 보는 시각이 여전히 팽배하다"며 "실제로 일자리, 인프라 등 모든 측면에서 지방이 서울에 비해 상당히 뒤처져 있다"고 했다. 발언 당사자인 정 의원 역시 나름대로 인천을 잘 안다는 사람이다. 2010년 7월부터 2013년 4월까지 인천시청에서 기획관리실장으로 일했다. 문제 발언이 나온 방송에서 스튜디오가 술렁이자 정 의원은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듯 행동했다. 확신에 찬 눈빛으로 주변을 생경하게 쳐다봤다.   
  
서울-지방간 격차는 어제오늘 일이 아닐뿐더러 해결 방법도 희망도 잘 보이지 않는 난제다. 지난 2월 국민은행이 발표한 주택 매매가격 지수에 따르면, 올해 1월 서울의 주택매매가격 지수는 107.6으로 2015년 말 전국의 지수 재조정(지수 100.0)이 이뤄진 이후 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매매가격 지수가 기준시점(100.0)보다 높다는 것은 그만큼 매매가격이 많이 올랐다는 뜻이고, 100 이하는 그 반대를 의미한다. 이에 비해 5대 광역시를 제외한 지방 주택지수는 99.0으로 지수 재조정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이 기간 서울 아파트값이 2015년 말과 비교해 7.6포인트 오른 반면 지방은 1.0포인트 하락하면서 서울과 지방간 매매가격 지수 격차도 최근 2년 새 가장 높은 8.6포인트로 벌어졌다. 부동산 외 교육 격차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2022학년도 대학 입시제도 개편을 준비 중인 국가교육회의는 지난 3일 대전에서 대학 입시와 관련한 공청회를 열었다. 이번 행사에서 참석자들은 입시 정보 격차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지역 교사와 학부모에게 우선 발언권을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은 지난 6월11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살다가 1996년 인천으로 와 22년째 지내고 있다"며 정태옥 의원 발언과 지방자치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전 편집장은 "서울은 주변 인재와 자원을 빨아들이며 끝없이 팽창하는 블랙홀이다. 모든 자원을 빨아들이고, 폐기물을 지방으로 전가한다"며 "그 결과 서울을 제외한 주변 지역은 사헬벨트(Sahel belt·사하라 사막 남쪽에 위치했으며, 수십년째 가뭄이 이어지고 있는 지대)처럼 말라 죽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1991년 지방의회,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실시되면서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지 어느덧 30년을 향해 가고 있다. 그러나 지방분권과 자치는 여전히 머나먼 이야기에 불과하다"며 "그런 상황이기에 표를 달라고 요구하는 정당과 정치인의 입에서 저와 같은 지역 비하 발언이 거침없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돈은 지역에서 벌고 자식은 서울로 보내면서도 끝없이 지역 사랑, 지역 불균형 발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외치는 사람들은 부동산 계급사회 혜택과 서울 중심주의 기득권을 누려온 이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솎아내는 몫은 물론 주권자인 시민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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