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현지 취재] “세월호 외력설 음모론 아니다”
  • 네덜란드 = 이용우 시사저널e. 기자 (ywl@sisajournal-e.com)
  • 승인 2018.06.29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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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선조위·유가족, 네덜란드 해양연구소 ‘마린’에서 외력 실험 진행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에 외력설은 사고 초기부터 배제 대상이었다. 외력을 주장하면 음모론자로 몰렸다. 그러나 세월호 선체가 인양된 이후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이하 선조위)가 선체 조사에서 발견한 증거들이 외력의 가능성을 높였기 때문이다. 음모론 수준에 머물렀던 외력설에 대해 선조위가 공식적인 영역에서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이유는 명백한 증거들 때문이다. 

 

선조위와 세월호 유가족들이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동남쪽으로 100km 떨어진 바헤닝언에 있는 해양연구소 ‘마린(MARIN)’을 다시 찾았다. 지난 1월과 2월 세월호 자유항주모형실험과 침수실험이 진행된 바 있는 마린에 다시 찾은 가장 큰 목적은 ‘외력 실험’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침몰의 원인으로 다양한 가설이 제기됐지만 여러 조사에서 외력으로 보이는 현상들이 다수 발견됐다. 이런 상황에서 선조위나 유가족들은 진상규명을 하는데 외력을 음모론으로 치부하고 배제한다는 것은 더 납득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수조를 가진 마린에 다시 찾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네덜란드 해양연구소 마린의 대형수조에서 선체조사위원회와 유가족이 외력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세월호 GM 0.5m에서 실험…“세월호 복원성 나쁘지 않았다” 

 

선조위와 마린은 이번 실험을 6월27일부터 29일까지 사흘에 걸쳐 진행한다. 대형 수조(길이 170m, 폭 40m, 깊이 5m)에 세월호 크기의 약 25분의 1로 축소한 모형배를 가지고 진행한다. 선조위는 배의 복원성을 의미하는 GM을 0.58m로 설정했다. 일각에서 세월호의 복원성이 더 낮아야 한다며 0.45m도 제시했지만 이 수치에 대한 근거가 부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실험에는 0.58m를 주된 복원성 수치로 반영하기로 했다. 이 수치가 중요한 점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복원성이 좋은 수치를 선조위가 채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실험 첫날인 27일 선조위는 모형배를 이용한 경사우력정(힐링모멘트) 실험을 진행했다. 물 위에 떠 있는 배에 화물의 이동만으로 기울기를 계산한 뒤 다시 GM 값을 찾는 실험이다. 선조위는 이번 실험으로 4400t·m의 힘(1t·m 은 1톤이 1m 이동하는 힘)​이 있어야만 사고 당시처럼 45도로 기울어진 채 유지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사고 당시의 화물을 이용해 GM을 역으로 구현하는 방식을 사용한 것이다. 이에 GM이 0.58m가 되어야만 기울기가 45도인 채로 표류하는 세월호를 구현한 것이다. 선조위 관계자는 “2200여 톤의 세월호 화물이 2m 이동해야만 이 수치가 나온다”며 “선조위가 예상한 GM이 0.56~0.58m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크기의 약 25분의 1로 축소한 세월호 모형바. 선조위는 배의 복원성을 의미하는 GM을 0.58m로 결정했다.

 

GM 0.58m가 중요한 의미는 복원성이 사고를 설명할 수 없는 수치기 때문이다. 결국 외력 없이 세월호가 급변침과 급격한 기울기를 보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과거처럼 복원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세월호가 급변침으로 침몰했다는 가설이 맞으려면 GM값은 0.4m 대를 유지하거나 그 이하여야 한다. 이런 이유로 해양안전심판원에서는 복원성 값을 0.38m로 잡았고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O)에선 42분의 1 크기로 세월호 모형배를 제작해 실험할 때 이 수치를 0.42m, 0.47m로 설정했다. ‘복원성이 나쁜 배가 조타 실수로 넘어졌다’라는 가설이 그래야만 설명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조위는 세월호의 복원성이 그만큼 나쁘다고 보지 않았다. 화물 조사를 통해 얻은 수치이기 때문에 복원성이 나쁘다는 주장 모두 가설 수준에 머물게 됐다. 선조위 관계자는 “화물량과 화물 배치 등을 모두 조사하고 나온 GM값이 0.58 또는 0.56이다”라며 “물론 오차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나온 복원성 값 중에서 사실에 근접한 값”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세월호의 GM이 0.6m에 가까울수록 타각에 변화를 줘도 기존 사고 당시의 급선회를 설명하기 어려워진다는 데 있다. 세월호는 사고 당시 선수 각도의 변화를 말하는 선회율(ROT)이 초당 15도씩 바뀌는 비정상적인 급선회를 했다. 사고 초기 횡경사(기울기)는 블랙박스에서 약 50도에 이를 만큼 급격했다. 복원성이 좋을수록 이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진다. 모두 외력설의 근거가 될 수 있다. 

 

행크봄 마린 세월호 프로젝트 총괄대표와 빅터 페라리 연구원이 선조위와 유가족들에게 실험을 설명하고 있다.​

 

마린 “2000톤의 힘이 있어야 세월호 급선회 구현할 수 있다”

 

이번 외력 실험은 윈치와 와이어를 세월호에 걸고 수평외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마린은 이미 컴퓨터를 이용한 CFD 수치해석을 통해 세월호의 급선회를 가능하게 하는 외력의 크기는 2000여 톤이어야 가능하다고 봤다. 

 

다만 배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핀 스태빌라이저(핀 안정기·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장치)가 CFD에서는 260톤 이상의 힘이 가해지면 부러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선조위와 마린은 260톤 이상의 외력을 반영할 수 있는지 이번 외력 실험에 적용할 계획이다. 

 

마린의 세월호 외력 프로젝트 책임자인 빅터 페라리 연구원은 “이전에도 마린에서 외력 실험을 진행한 바 있다”며 “외력의 방향과 힘의 변화를 통해 외력의 가능성을 알아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영빈 선조위 1소위원장은 “외력은 지금까지 음모론의 영역으로만 치부됐지만 선조위는 원점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침몰 원인을 규명하려는 것”이라며 “배 자체만으로는 사고가 나기 어렵다. 외력을 가했을 때 사고가 설명이 되는지 찾기 위한 실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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