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원 학생·학부모 비하한 세종시 고등학교
  • 세종 = 김상현 기자 (sisa411@sisajournal.com)
  • 승인 2018.06.29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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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고, 공개문서에 조치원 학생을 '생활수준 낮고 불안정한 가정환경' 표현 논란

 

세종시의 한 고등학교가 사는 지역에 따라 학생과 학부모를 차별하는 표현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문제가 발생한 학교는 세종시 아름동에 위치한 아름고등학교. 이 학교는 ‘2017 학년도 학교교육과정 운영계획’에 학생 생활태도를 분석해 놓았는데 일부 내용이 문제가 됐다. 문건에는 ‘생활수준이 낮고 불안정한 가정환경의 구시가지(조치원) 학생들, 생활과 가정환경이 우세한 신시가지 학생들, 타시도 전입생 등의 이 세 그룹이 서로 다른 양상을 보임’이라고 적혀있다. 이 내용은 2016년 운영계획에도 비슷하게 명시돼 있다. 학교교육과정 운영계획은 누구나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도록 공개돼 있다.

 

세종시는 조치원읍을 포함해 조치원 이남의 금남면, 연기면, 연서면, 연동면과 공주 일부, 청원 일부를 편입해 만들었다. 이중 정부세종청사와 인접해있는 고운동, 아름동, 도담동, 종촌동 새롬동, 한솔동, 보람동 등이 신시가지로 불린다. 신시가지에 속해있는 고등학교에서 조치원 학생들은 생활수준이 낮고 불안정한 가정환경을 가지고 있다고 치부해 버린 꼴이다.

 

세종시의 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이 문건이 퍼지면서 학부모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현재 세종시 관련 각종 커뮤니티에는 학부모들의 아름고에 대한 질타가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잣대를 드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온라인 상에 공개된 아름고 학교교육과정 운영계획 문건. 공개한 사람의 글에서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이 중 한 학부모는 최교진 세종시 교육감의 SNS에 문서를 캡처한 이미지와 함께 항의 서한을 보냈다. 여기에는 “조치원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저런 기준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사람이 선생이라는 직함으로 근무 중이라는 사실에 통탄을 감출 수 없다”라고 적혀있다.

 

그러자 최 교육감은 29일 오전 SNS에 사과문을 올렸다. 그는 “아름고등학교 교육과정에 서술된 내용으로 상처받으셨을 모든 분과 시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라며 “서술된 교육여건 분석은 매우 편향돼 있다. 교육청의 방향과 맞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자세한 경위와 현황을 파악해 잘못을 바로 잡고 책임을 묻겠다”라고 설명했다. 교육감 말고 아름고의 공식 사과는 없냐는 질문에 “아름고 역시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후속조치도 할 것으로 안다”라고 답했다. 

 

교육감의 발빠른 사과에도 학부모들의 분노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한 학부모는 “신도심 선생님 상당수가 원도심서 전출했고 조치원에서 살다가 신도심으로 건너간 분들도 많은데, 조치원에 거주한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고 있었다니 우리 아이들이 가엾다”라고 말했다. 이어 “아름고에 다니는 학생들이 조치원에 사는 걸 숨겨야 한다고 해서 설마 했는데 바로 학교가 이런 분위기여서 그랬을 거란 생각을 하니 씁쓸하다”라고 통탄했다. 

 

아름고는 문제가 발생하자 2018년 운영계획만 남겨두고 2016년과 2017년 문서를 홈페이지에서 삭제하고 사과문을 올렸다. 하지만 또 다른 부분에서 논란이 발생했다.

 

현재 아름고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2018년 운영계획에는 문제가 된 내용이 삭제돼 있다. 하지만 학부모 참여도 문항에 있는 ‘학부모의 학력이 높고 자녀에 대한 기대감이 커 학교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라고 되어 있는 부분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학부모들은 이 분석결과에 대해 “학교에서 학부모 학력 수준까지 조사하고 있었던 거냐?”라며 항의하고 있다. 한 학부모는 “이 내용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뭘 말하는 건가?”라며 “교육계 종사하는 사람의 가치관이 이러니 다른 건 불 보듯 뻔할 듯”이라고 표현했다.

 

교육감과 학교장이 사과문까지 올렸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어느 학부모의 말처럼 "상처 입은 마음 회복되긴 쉽지 않을 것" 같다.

 

세종시 교육청 담당자는 "본 문서는 어느 한 교사가 작성한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작성한 문서"라면서 "운영위원회 심의까지 거친 문서인데 사전에 문제된 내용을 걸러내지 못한 것에 교육청도 책임을 통감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아름고등학교에 대해서도 별도 조치를 교육청 차원에서 논의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아름고등학교의 공식 사과문.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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