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못대는 노후건물, 계속 방치되는 ‘시한폭탄’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18.07.04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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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건물 붕괴 사고·지진 위협 속에도 조치 못하는 이유는

 

"경주·포항 지진과 용산 상가건물 붕괴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사람들이 자신이 이용하는 건물의 붕괴 가능성을 생각해보지 않았다."


2016년의 경주 지진, 그리고 지난해 포항 지진, 올해 6월 용산 상가 붕괴 사고를 거친 뒤 노후 건물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특히 건물 안전 관리 책임을 진 건물주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보강공사를 통해 안전성을 보완하려는 건물주들이 급증했다. 그런데 실제 공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노후 건물의 위험성, 절차상 문제 등으로 인해 보강공사를 시도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노후 건물은 붕괴 위험을 안은 채 계속 도심에 '시한폭탄'으로 남아있다.

 

6월3일 낮 12시35분께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4층짜리 상가건물이 무너졌다. ⓒ 시사저널 임준선


 

‘시한폭탄’ 노후건물 “보강공사 하고 싶어도 못해”   
 

지은 지 30년 이상 된 벽돌 건물을 보유한 정아무개씨(41·남)는 용산 상가건물 붕괴 사고에 가슴을 쓸어내린 뒤 최근 보강공사 준비에 나섰다. 일단 '구조 안전 확인서'를 떼 구청으로부터 보강공사 허가를 받아야 했다. 구조 안전 확인서는 건축구조기술사에게 의뢰해 비용을 지불하고 뗀다. 그런데 노후 조적조(돌·벽돌·​콘크리트 블록 등으로 쌓아 올려서 벽을 만드는 건축) 건물이라는 얘기를 꺼내자마자 기술사는 "구조 안전 확인서를 준비해 주기 어렵겠다"며 난색을 표했다. 다른 기술사도, 또 다른 기술사도 마찬가지였다. 정씨는 "답답한 마음에 전방위로 알아보다 보니 접촉한 기술사가 20명에 이르렀다"며 "하나 같이 대답은 '노(No)'였다"고 말했다. 기술사들이 노후 조적조 건물에 손사래를 치는 가장 큰 이유는 안전성이다. 한 기술사는 정씨에게 "부실하고, 심지어 보강공사를 하면서도 무너질 수 있는 노후 조적조 건물 구조 안전 진단을 맡기가 꺼려진다"고 토로했다. 정씨는 끝내 보강공사에 착수하지 못했다.

 

퇴짜를 맞지 않더라도 건축구조기술사와의 용역비 절충, 관련 서류 준비 등의 과정에서 논의가 어그러진다. 한 기술사는 "구조 안전 확인서 작성을 위해서는 안전 진단 외 보강·내진 설계도 필요하다. 그래서 용역 비용이 생각보다 비싸다"며 "견적을 제시하면 (용역비가 비싸다며) 논의를 중단하는 건물주가 많다"고 설명했다. 공사비를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으로 맞춰 달라고 요구하거나, 보강공사 기간 건물을 비워야 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건물주도 있다고 이 기술사는 전했다. 아울러 노후 조적조 건물들 가운데선 건축 당시 설계, 구조 안전 등에 관한 고려가 세밀하지 못했던 경우가 다반사다. 설계 도면조차 제대로 없는 노후 건축물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도면이 없으면 제대로 된 도면부터 만들어야 하고 다른 여러 가지 서류도 제시할 필요가 있는데, 일련의 절차를 감당하지 못하는 노후 조적조 건물주들이 수두룩 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건축구조기술사들이 구조 안전 확인서를 선뜻 발급해줄리 만무하다. 보강공사 중이나 이후 자칫 붕괴 사고라도 나면 건물주와 더불어 구조 안전 확인서를 발급한 기술사도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기술사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관계자는 "구조 안전 확인서 발급은 건물 안전 확인의 마지막 단계다. 기술사가 도장을 찍고 문제 발생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지게 된다"며 "안전이 확인이 안 된, 사고 가능성을 안고 있는 건물에 서류를 발급해줄 순 없다. 쉽게 생각해선 안 되고 기술사들에게 발급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해결 난망…“건물주들 안전 의식 높여야” vs “정부가 대책 내놔야”

 

노후 건물 안전의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도 이런 분위기를 모르는 게 아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관계 전문가가 구조 안전성 검토를 통해 노후 건물에 대한 사용 제한이나 철거 또는 보강공사를 적극 제시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안에 대해서는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토부는 "건축구조기술사 등이 (노후 조적조 건물) 구조 안전 확인 업무를 기피하면 제재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기술사 제재는 근거 법령이 없을 뿐더러 책임 떠넘기기란 지적을 받을 수도 있다. 서울시는 용산 상가건물 붕괴 사고 후속 조치로 노후 조적조 건물에 대한 대대적인 안전점검을 7월부터 벌이고 있다. 점검에서 위험 요인이 확인되면 해당 건물주에게 보수·보강·유지관리 방안 등을 안내한다. 서울시의 대책에서도 '보수공사 안내 이후'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서울시 산하 서울연구원의 '건축물 재난 안전 관리 기본 방향 수립(2016)' 보고서를 보면, 서울 건물 6개 중 1개는 수명이 다했거나 노후화가 상당한 수준까지 진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건물 중 내용연수 대비 사용연수가 90% 이상인 건축물은 10만5982개 동에 이른다. 서울 모든 건물(62만여 동)의 6분의1 수준이다. 이 중 상당수가 조적조 건물이다. 서울뿐 아니라 다른 대도시 구도심에서도 재개발·재건축 요건을 맞추려고 방치해 둔 노후 조적조 건물이 적지 않다. 이 같은 건물은 용산과 같은 돌연 붕괴 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당연히 지진에는 완전 무방비 상태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6월25일 국내에서 경주(규모 5.8)·포항(규모 5.4) 지진보다 더 큰 규모 6.0 이상의 지진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용산 사고에서 사망자가 없었지만 다른 노후 조적조 건물이 무너졌을 때도 인명 피해가 없을 거라곤 결코 장담할 수 없다"며 "이제 우리나라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닌데, 만약 지진이라도 나서 노후 조적조 건물들이 와르르 무너진다면 사망자가 수천, 수만명에 달할 수도 있다. 그때 가서 또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대책이 나올까봐 걱정된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대책도 현재로서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건물주들의 이해관계, 지방자치단체의 원도심 재생 정책 등이 얽혀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다. 건축구조기술사회는 "우선 건물주 개개인의 안전 인식부터 제고돼야 한다"고 밝혔다. 채흥석 건축구조기술사회 회장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이용하는 건물은 그저 안전하다'고 생각해왔다. 그 속에서 노후 조적조 건물이 계속 방치됐다"며 "그러다 우리나라에 (규모 5.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한 뒤 다들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일부 노후 조적조 건물주들은 말로만 '(지진 위협 속) 안전한 건물에 살고 싶다'고 하면서, 이를 위한 시간·노력·비용을 들이려고는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 대책을 바라거나 누구를 탓할 게 아니라 건물주 개개인이 인식과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반면 노후 조적조 건물주들은 "안전을 위해서 시행하려는 보강공사에 대해 지나친 규제와 기준을 적용해 오히려 안전을 방해하는 지금의 제도는 개선돼야 한다"고 성토하고 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과거 조적조 건물에 대해 허술하게 건축 허가를 내준 국가 탓도 분명히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노후 건물 대책을 시급히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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