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사법부 모든 자료 샅샅이 들여다봐야”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8.07.04 15:31
  • 호수 1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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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재판 거래’ 고발인 조사 받은 임지봉 서강대 교수…“국민을 두려워하지 않은 사법부, 불신 초래해”

 

“절망, 아니 그보다는 분노에 가까웠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법부의 ‘재판 거래’ 의혹을 접했을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목소리에선 쇠 갈리는 소리가 났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임 교수는 지난 1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발한 참여연대의 사법감시센터 소장이다. 최근에는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을 추가로 고발했다. 양 전 대법관 시절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일자, 사법부를 저격하는 최전선에 앞장선 것이다. 임 교수는 이후 13시간에 이르는 검찰의 고발인 조사를 받는 등 강도 높은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그는 왜 사법부의 치부(恥部)를 드러내는 데 전력을 쏟는 것일까. 6월26일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연구실에서 시사저널과 만난 임 교수는 “문제가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개혁을 말하는 것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이다. 이번에 (사법부의) 위법행위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같은 문제가 다시금 터져 나오게 될 것”이라며 “사법부가 국민 앞에 바로 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검찰의 성역 없는 수사를 받아들이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시사저널 최준필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근거가 무엇인가.

 

“대법원의 방침을 반대하는 개인이나 단체를 감시하고 사찰하고 또 제압하려 했다. 재판 거래도 시도했다. 재판부의 동향을 청와대에 보고하고 관련 대응 문건을 작성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명백한 직권남용이다. 만약 재판 거래를 위한 재판 개입이 실제로 있었다면 이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검찰이 수사에서 밝혀내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실제 재판 개입이 이뤄졌을 것이라 보는가. 양 전 대법원장은 관련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데.

 

“물론 현 시점에서 사법부 전체를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3000명의 판사들이 있는데 훌륭한 분들이 많다. 다만 아직 그 어떤 실체도 드러나지 않았다. 일단 의혹이 제기된 만큼 앞으로 수사 방향에 따라 사건 결론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재판 개입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라도 검찰에서 사법부의 모든 자료들을 샅샅이 들여다봐야 한다.”

 

검찰의 수사 의지를 의심하는 시선도 있다. 이미 일부 자료가 디가우징(자기장을 이용해 하드디스크를 훼손하는 기술)을 통해 삭제됐다는 보도도 있었다.

 

“검찰의 수사 열의가 뜨겁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데, 조사 당시 나에게 수사 범위에 대해 조언을 구하더라. 그래서 포렌식(디지털 증거수집·분석) 전문가 등을 동원해 재판 개입 여부 등을 판가름해야 한다고 강조했더니, 담당 검사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포렌식) 수사는 검찰에 정예 인력이 있다’고 하더라. 수사 초반이지만 분명 강한 의지를 읽었다. 만약 검찰이 용두사미식으로 수사를 마무리하려 한다면,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립에 속도를 내고 공수처에 관련 수사를 맡긴다거나 특검을 도입하는 방법도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법원행정처가 공무상 비밀을 이유로 검찰에 관련자 하드디스크는 제출하지 않았다.

 

“검찰이 고발인까지 불러놓고 조사를 했는데, 법원행정처가 반대한다고 본격적인 자료 조사조차 못 한다면 국민들이 보기에도 우스울 것이다. 결국 사법부가 검찰이 요구한 것을 얼마나 들어주느냐에 따라 검찰의 대응은 달라질 것이라고 본다.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은 사법부가 임의제출 형식으로, 굉장히 전향적인 자세에서 검찰에 자료를 많이 넘겨주는 것이다. 미제출 자료가 많다고 판단될 경우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검찰수사에 협조할 뜻을 밝혔다. 

 

“앞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이 재판 개입 문건이 범죄행위로까지 나아가지 않았다고 평가를 내렸다. 그런데 다음 날 (김명수) 대법원장이 ‘대법원장인 자신이 나서서 검찰 고발이나 수사 의뢰도 할 수 있다’고 하는 걸 보며 굉장히 신중한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후 법원 내·외부의 목소리를 듣고,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장고(長考)의 시간을 갖고 계신 것 같더라. 그러나 이제 (검찰의 자료 제출 요구 등을) 판단할 시간은 그리 길게 남지 않았다. 빠르게 결정해야 한다.”

 

사법농단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이 모든 일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도입 때문이다. 기승전(起承轉) 상고법원인 셈이다. 양 전 대법원장이 그거(상고법원)를 필요 이상으로 집요하게 추진하려고 했고, 머리 좋은 엘리트 판사들은 관료화에 젖어서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을 성취시켜 주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결국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고, 인사권자인 대법원장만 바라본 결과다. 이로 인해 뿌리내린 국민의 불신은 사법부에 굉장히 큰 타격을 줄 것이다.”

 

향후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 있다면.

 

“검찰이 성역 없는 수사를 할 수 있게끔 정부가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해 줘야 한다. 가장 기본이지만 앞선 정부들은 늘 검찰을 간섭해 왔다. 만약 이번 수사에 청와대 등이 간섭했다는 사실이 나중에라도 밝혀진다면, 그때는 검찰이 큰 위기를 맞을 것이다. 반대로 검찰이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준다면, 검경 수사권 조정 등과 관련해 검찰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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