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비리③] [단독] 비리 부풀리는 ‘먹이사슬’ 구조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8.07.06 15:26
  • 호수 1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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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비 52억 사업, 하청업체에 10억만 지급…“나머진 양산업체서 받아라”

 

올해 국방 분야 예산은 43조1581억원 규모다. 병력운영과 전력유지, 방위력 개선 세 부문으로 이뤄져 있다. 이 가운데 방위력 개선 예산 규모는 13조5203억원에 이른다. 예산 증가율만 10.8%로, 전체 국방예산 증가율(7.0%)을 뛰어넘는다.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방위산업의 현주소를 개선하기 위해 국내 방위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반영돼 있다. 

 

상반된 시선도 있다. 국내 방위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방산비리로 얼룩진 방위산업에 대한 차가운 시선도 공존하고 있다. 실제로 대형 방위산업을 둘러싼 각종 방산비리와 의혹이 끊이지 않으면서 국민적 불신과 질타를 받아왔다. 올해만 해도 중거리 지대공유도무기 ‘천궁(天弓)’ 양산사업 과정에서 조직적인 비리가 있었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왔다.

 

방산비리는 더 이상 새로운 이슈가 아니다. 해마다 반복적으로 불거지고 있다. 그때마다 정부는 관계자들을 줄줄이 처벌하면서 엄정처벌을 내세우고 있다. 정부의 강경한 대처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문제가 반복된다면 그 이유는 다른 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시사저널은 전술정보통신체계 사업(차세대 통신망 사업) 과정에서 벌어진 납품단가 부풀리기 흔적을 추적했다. 왜 이 같은 의혹이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것일까. 누군가는 초과 수익을 위해 단가를 부풀렸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의도적으로 눈감았을 개연성이 크다. 단순히 비리 커넥션만으로 설명하기엔 너무 많은 의혹들이 산재해 있다. 이에 대해 방산업계 관계자는 방산 사업 구조 자체가 비리를 키운다고 지적했다. 예산 계획에 맞추기면 하면 된다는 방위사업청(방사청)과 이 기준만 충족시켜 사업을 따내는 대형 방산업체들의 합작품이라는 주장이다. 대형 방산업체들은 개발 단계부터 하청을 주면서 개발비 또한 축소시키고, 양산업체들에 부족한 개발비를 보전하도록 하는 꼼수를 쓰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씨맥스와이어리스(씨맥스)라는 소규모 업체 사례를 통해 방위산업 구조의 불합리성을 들여다보자.

 

ⓒ연합뉴스


 

부족 예산, 업체 부담으로 고스란히

 

씨맥스는 2007년 설립된 중소기업이었다. 당시 신기술이었던 와이브로, 모바일 와이맥스 솔루션을 통해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었다. 무인 전투로봇의 통신 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하고 있던 이 업체는 정부가 군 차세대 통신망 구축 사업을 추진하면서 개발 의뢰를 받게 됐다. 씨맥스는 초기 전술용다기능단말기 탐색개발 사업을 맡게 됐다. 당시 씨맥스는 사업권을 따낸 삼성탈레스(현 한화시스템) 측에 7억원의 견적서를 제출했다. 이에 삼성탈레스 측은 3억원의 과제비를 책정했고, 나머지 4억원은 탐색개발에 성공한 이후 사업권을 가져가기로 하고 우리별텔레콤 측에서 지불했다고 한다.

 

씨맥스 측은 또 다른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LCTR(저용량전송장치)과 SRE(소형중계기) 체계개발 사업이었다. 씨맥스가 삼성탈레스 측에 제출한 견적서는 총 52억원 규모였다. 이때 삼성탈레스 측은 개발비로 10억원밖에 책정돼 있지 않다는 점을 들어, 이 금액에 맞춰서 견적서를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실제로 당시 양측에서 오간 이메일을 확인한 결과, 삼성탈레스 측은 견적갑지금액을 특정한 뒤 “해당 금액에 맞춰 작성해 주시고, 세부원가내역은 업체에서 산출한 실원가를 기준으로 작성해 달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견적갑지와 실원가가 다르다고 해서 개발비 투자라는 명목의 문구는 넣지 말아 달라”는 요청도 붉은색 글씨로 강조해 표현했다. 삼성탈레스는 2014년 11월 삼성그룹이 방산부문을 한화그룹에 넘기면서 한화탈레스로 사명을 바꿨다가, 탈레스그룹이 한화테크윈 지분을 매각해 2016년 한화시스템으로 개칭했다. 

 

그렇다면 씨맥스는 부족한 개발비 42억원은 어디서 받아야 하는 것일까. 씨맥스 관계자는 “삼성탈레스 측에서 제품이 개발된 뒤 양산할 업체에서 부담할 것”이라며 “양산업체 한 곳을 소개시켜줬다”고 밝혔다. 하지만 삼성탈레스가 소개해 준 업체는 나머지 금액에 대한 부담 때문에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씨맥스는 다른 양산업체를 물색했고 부족한 개발비를 부담하겠다는 업체를 찾게 된다. 이곳이 쏠리드라는 업체였다. 

 

쏠리드는 1998년 KT 사내 벤처로 시작해 무선통신장비 부문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일반인에게는 팬택을 인수한 기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한화시스템 관계자는 “적정한 개발비를 10억원 수준으로 책정해 적절한 업체와 계약을 맺었을 뿐, 소위 협력업체와 재하청업체 사이의 계약 과정에 대해선 모른다”고 밝혔다.

 

 

두 차례 계약변경 요구…“회사 파산 직전”

 

씨맥스 관계자 주장에 따르면, 양산업체가 명목에 넣을 수 없는 개발비까지 부담하면서 사업에 끼어든 것은 그만큼 다른 부분에서 초과 수익을 달성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씨맥스 입장에선 사업을 발주한 방위사업청(甲)과 사업권을 따낸 대형 방산업체 삼성탈레스(乙)에 이어 개발비를 지원해 줄 양산업체 쏠리드(丙)의 눈치까지 봐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갑을 구조에 끼어든 쏠리드 측은 이내 불합리한 요구를 해 왔다. 수익성이 떨어진다며 두 차례 합의 변경을 요구했다. 당초 쏠리드는 40억원의 개발비를 지불하고, 매출의 5%를 씨맥스 측에 지급하기로 계약했다. 이후 쏠리드는 30억원만 미리 지급한 뒤 10억원을 지급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익 배분율을 조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 뒤엔 자신들이 추가 투입한 개발비를 모든 이익에서 먼저 가져가고 이후 매출 이익을 분배하자고 요구했다. 결국 씨맥스는 2022년 이후에나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처지에 놓였다. 먹이사슬의 최하단에 위치한 개발업체는 어쩔 수 없이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씨맥스 측의 주장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 같은 사업 구조가 비단 이번 사업에만 해당되진 않는다는 점이다. 한 방산 협력업체 관계자는 “대부분 예산에 맞춰 개발비를 정해 놓고 부족한 부분은 양산업체를 데려와 메우도록 하는 구조로 진행되고 있다”며 “방위사업청과 소위 ‘빅3’ 방산업체에선 손해 볼 일이 없어 비리가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대형 방산업체들도 대부분의 개발 사업에서 실제 원가보다 적은 단가로 수주하는 현황”이라며 “(정부에서) 시장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상태로 예산을 짜놓고 업체에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 발단”이라고 설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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