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비리④] [단독] “프랑스 나흘 머물며 1시간 미팅”
  • 이민우·김종일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8.07.06 15:28
  • 호수 1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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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 해외출장 가려고 초청장 강요…해외 업체 거절해도 ‘막무가내’

 

방위산업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조직이 있다. 방위사업청 산하 공공기관인 국방과학연구소(ADD·국과연)라는 곳이다. 이곳은 국방에 필요한 무기나 국방과학기술에 대한 조사·연구, 개발, 시험 등 핵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개발 단계에서부터 뛰어드는 방위산업체들은 방사청보다 국과연과 훨씬 업무 연관성이 크다고 밝힌다. 개발 단계부터 테스트를 거쳐 전력화 판정을 받을 때까지 개입하고 있어서다. 사실상 방산분야 개발 단계에선 먹이사슬의 최상부에 국과연이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국과연의 파워를 확인할 수 있는 사례를 발견했다. 해외출장을 위해 국내 방산업체를 통해 해외 현지 업체로부터 초청장을 받아달라고 요구하는 내용이 공개됐다. 초청자 명단과 초청일정까지 명확히 정해졌다. 심지어 다른 초청장을 보여주며 이 같은 양식으로 초청장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까지 곁들였다. 국과연의 황당한 요구는 방산 사업 먹이사슬 구조의 최하위 업체까지 내려왔다. 현지 업체에서 거절 의사를 밝혔는데도 요구는 막무가내였다. 수차례 압박이 지속되자 어쩔 수 없이 현지 업체를 설득해 출장을 가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왜 이토록 출장을 가고 싶었던 것일까. 또 출장을 가선 어떤 업무를 하고 돌아왔을까.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국방과학연구소 정문 ⓒ연합뉴스


 

“홍 박사와 김 수석도 목을 조르고 있다”

 

한 중소 방산업체가 있다. 이 업체는 차세대 통신망 사업 가운데 소형 중계기 등을 개발하는 업무를 맡았다. 개발 업무가 한창이던 2011년 8월22일, 이 업체 대표는 계약을 맺은 원청 방산업체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해외 업체에서 국과연 연구원들을 초청하도록 해 달라는 요구였다.

 

해당 이메일에는 “날짜는 10월4일부터 7일 사이로 해 달라. 프랑스 파리 본사에서 미팅을 하자. 미팅 목적은 회사 및 회사 기술 소개 등이 들어가게 해 달라”고 언급돼 있었다. 홍아무개, 김아무개, 박아무개씨(직함은 포함돼 있지 않음)가 초청자로 적시돼 있었다. 해당 이메일엔 “이런 양식으로 보내면 된다”며 다른 해외 업체가 국과연으로 보낸 초청 메일까지 첨부했다.

 

부탁을 받은 협력업체는 해외 현지법인 측 관계자에게 의사를 타진했지만 거절당했다. 이 협력업체는 “수차례 얘기했지만 금번 방문은 어려우리라 사료된다” “담당자가 전혀 없다” “오히려 ADD(국과연) 측을 설득해 달라”고 했다. 해외 업체도 “너의 걱정을 이해할 수 있다(I understand your concern)” “우리는 이 사업에 관심이 없음을 이해해 달라(please understand we are not in this kind of business)”며 확고한 거절 의사를 밝혔다.

 

방산 협력업체 직원들이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들의 초청장을 받기 위해 협의한 이메일 내용을 보면 압박의 수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원청업체 측은 재차 압박을 가했다. 원청업체 담당자는 “굳이 (현지법인) 참석자를 섭외할 필요 없고 초청하는 메일만 담당자 이름으로 먼저 와도 관계없다”며 “현 상황은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골 때리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홍○○ 박사와 김○○ 수석도 목을 조르고 있다”며 “잘못하면 골로 가기 일보 직전”이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해외 현지법인 측에선 해당 일정에 담당자가 출장으로 인해 자리를 비운다며 미팅이 어렵다고 거부했지만 요구는 막무가내였다.

 

압박에 시달리던 협력업체는 급기야 홍콩에 있는 아시아 지사장을 만나기 위해 원청업체 이사와 이 업체 대표가 직접 출국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원청업체 측은 협력업체에 “초청 메일이 올 것이란 대답을 매일 반복했다”며 “조치가 지연됨에 따라 제반 부담이 가중됐으며, 이로 인한 책임 소재를 물을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알려드린다”는 협박성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계속되는 요구에 해외 업체는 일정을 조정하면 초청 가능하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국과연 측 연구원들이 지목한 날짜에는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는 이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청업체 측은 반드시 해당 일정에 맞춰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절대로 무겁고(heavy) 심각한(serious) 초청 메일이 아니고, 미팅 한 번 하자, 너희 기술력 있는 거 다 알고 있다, 제품 지원에 별 이상 없나 수준의 미팅 정도면 되니 제발 좀 보내 달라”고 덧붙였다. 담당자는 “(국과연의) 홍○○ 박사에게 전화 오면 대응할 거리가 있어야 한다”며 “낼 아침이 무섭다. 이게 도대체 무슨 신세인지…”라고 신세한탄을 내놓기도 했다. 결국 해당 업체는 가까스로 초청 메일을 받아 위기를 모면했다.

 

초청 메일을 받자 국과연의 김아무개 연구원이 등장했다. 그는 삼성탈레스(현 한화시스템) 측에 1~2일 차 일정 등을 임의로 언급하며 “방문시각과 연락처, 숙박 추천을 해 달라”고 언급했다. 결국 하청업체 측은 국과연 연구원들의 요청대로 10월6일 10시 회사 소개와 와이맥스 기술 소개 등을 위한 미팅을 성사시켰다. 

 

이들은 왜 이토록 출장에 집착했던 것일까. 그 목적은 알 수 없으나 출장 결과를 공유하는 메일을 확인한 결과, 해당 출장에는 국과연 연구원을 비롯해 삼성탈레스 관계자 3명이 동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외 현지 업체 측은 미팅 이전에 기술 설명을 위해 NDA(기술 자료를 공유하기 위한 보안 합의서) 서명을 국과연 측에 요청했으나 출장자들은 내부 과정이 복잡하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렵사리 성사된 미팅은 1시간 정도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미팅 결과 또한 “국과연 측에서 NDA에 사인을 하지 않은 관계로 일반적(generic)인 자료로 미팅을 가졌다”고 서술돼 있었다.

 

 

국과연 “국내 방산업체에 부득이 요청했던 것”

 

해당 초청장을 받기 위해 실무를 봤던 업체 관계자는 “해외 현지 업체와 관련된 업무를 진행하는 것은 우리 회사였는데, 삼성탈레스 직원들이 동행한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당시 초청장을 어렵게 받아내는 과정에서 미팅보다는 출장 일정을 위해 형식적으로 미팅을 끼워 넣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일정을 특정해서 추진한 것도 출장 일정에 맞춰서 바로 프랑스로 이동하려는 것으로 추측된다”며 “프랑스 파리에서 나흘간 머물며 1시간 미팅을 한 뒤 나머지 시간엔 뭘 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국과연 측은 7월4일 “당시 연구를 진행하던 사업의 일환으로, 부품·소프트웨어·시험평가 등에 대한 위험 요소나 문제점을 인지하고 해결 방안을 습득하기 위해 출장을 갔던 것”이라며 “해당 업체와 연락할 창구가 국내 방산업체밖에 없어서 부득이 요청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문 일정을 특정한 데 대해선 “당시 9박10일 일정으로 미국과 프랑스를 방문한 것이며 업무 효율성을 위해 다른 업체들과 미팅 일정을 맞추려 했던 것”이라며 “1시간 미팅을 했다는 주장과 달리 세 업체를 방문해 시뮬레이션·회의 등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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