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쪽지 예산 성사시키는 밀실회의 ‘소소위’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8.07.09 11:15
  • 호수 1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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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입법조사처 “소소위, 법적 근거 없어 투명성·대표성도 문제”

 

429조원. 올해 나라 살림살이에 들어가는 예산이다. 가늠도 잘 되지 않는 이 천문학적인 예산을 둘러싸고 언론은 매년 빠짐없이 “밀실 흥정과 졸속·부실의 구태를 되풀이했다”는 비판적인 기사를 쓴다. 예산을 심의하는 국회의원들은 어느 누구보다 여론의 반응에 민감하지만, 이때만큼은 민심을 감지하는 더듬이를 깊숙이 숨긴다. 

 

460조원. 내년도 나라 살림살이를 위해 편성될 것으로 추정되는 예산이다. 올해의 429조원보다 8%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언론은 이 460조원의 예산 심의에 대해서는 국회의 밀실 흥정과 졸속·부실의 구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얼추 예상은 가능하다. 국회는 올해 5월 3조8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심의하는 과정에서도 같은 모습을 반복했다. 심의 5일 만에 예산안을 통과시켜 어김없이 ‘부실·졸속 심사’라는 지적을 받았다. 지역 예산 챙기기와 밀실 심사 등의 재연도 어김없이 반복됐다. 

 

ⓒ시사저널 임준선



소소위, ‘밀실 흥정’의 제도적 장치

 

제도는 행위를 규정한다. 국회의원들의 지상과제, 정치적 목표는 ‘재선’이다. 재선을 위해서는 표를 얻을 수 있는 지역 민심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예산안 심의 과정에 ‘쪽지 예산’ ‘카톡 예산’을 밀어 넣을 수 있는 ‘밀실 흥정’은 필수적이다. 국회의원들은 다가오는 선거 전 지역구의 사업예산을 한 푼이라도 더 많이 확보하는 것만큼 재선을 담보하는 장치는 없다고 여긴다. 실제로 유권자들은 지역구 예산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 의원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즉 지역구 예산 확보가 의원의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재선에 목을 매는 국회의원들은 당연히 지역구 쪽지 예산을 밀어 넣을, 즉 ‘밀실 흥정’이 가능한 제도적 장치를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이 제도적 장치가 바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소소위(小小委)’다. ‘소소위’라는 제도적 장치가 ‘쪽지 예산’과 ‘카톡 예산’이라는 악습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국회에 보낸 예산안은 각 사업의 성격에 따라 상임위원회 심사를 거쳐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 심의를 거치게 된다. 한정된 자원의 최적 배분을 위해 단계를 두고 국회가 예산을 심사하는 것이다. 예결위는 예산안조정소위라는 소위원회에서 예산을 본격적으로 심의한다. 예산안조정소위에서는 통상 굵직굵직한 사안들을 중심으로 심의한다. 문제는 여야 간 합의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예산안 법정처리 시한이라는 ‘마감시간’이 다가오면 여야는 슬그머니 ‘소소위’를 가동시킨다. 소소위는 한마디로 소위원회보다 더 작은 규모의 회의체를 말한다. 통상 원내교섭단체에서 지정한 간사들이 대표로 참석한다. 올해 예산안과 추경 심사 당시에는 여야 의원 3명과 정부 관계자 몇 명이 소소위를 구성했다. 소소위는 지금까지 여야 간 쟁점 사안에 대해 참여 인원을 줄여 허심탄회하게 논의해 합의안을 도출하자는 취지로 관행처럼 여겨져 왔다.  

 

문제는 소소위 예산 심의가 아무런 법적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국회법에 따르면, 모든 소위는 공개가 원칙이다. 여야 간 합의가 있으면 비공개로 진행할 수는 있지만 반드시 회의록을 작성해야 한다. 예산 증감액 및 신설 이유를 투명하게 하기 위해 국회의원과 부처 관계자의 발언을 회의록을 통해 공개하는 것이다. 하지만 소소위를 규정하는 법적 근거는 없다. 그렇게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되고 회의록도 남지 않는다. 

 

이렇게 ‘밀실 흥정’을 위한 무대가 완성된다. 소소위가 비공개라는 뜻은 소소위가 진행되는 시간과 장소를 언론이 파악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된 후에야 알려진다. 그런데 회의록 작성도 없다. 소소위에 참석하는 여야 간사들과 정부 측 관계자 몇 명만 입을 다물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검증할 방법이 원천 차단돼 있다. 소소위에서 공개되는 것은 단 하나뿐이다. 소소위에 참여하는 의원의 이름이다. 즉 국회의원들에게는 자신의 지역구 예산을 챙길 ‘쪽지 예산’을 밀어 넣을 절호의 기회가 열리는 셈이다. 

 

 

입법조사처 “소소위, 문제 많다” 이례적 질타

 

보다 못한 국회 입법조사처가 나섰다. 예산정책처와 함께 국회 싱크탱크 쌍두마차로 평가받는 입법조사처는 소소위의 예산 심의 과정에 다양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입법조사처는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실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2018년도 예산 심의 과정에서 원내지도부나 예결위 간사 의원의 지역구 예산 증액은 일명 예결위의 소소위에서 논의되고 결정됐다는 점에서 비판받고 있다”고 꼬집었다. 입법조사처는 특히 “(국회가) 예산 증액을 결정하는 절차와 방법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여부를 알 수 없어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입법조사처가 제출한 보고서의 제목은 ‘소소위 예산심의의 문제점과 주요국 의회의 예산심의제도’다. 학술적으로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돕는 입법조사처가 어떤 특정 사안에 대해 ‘문제점’이라는 말을 써가며 강한 톤으로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소소위 예산심의와 관련해 입법조사처가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실에 제출한 보고서


 

입법조사처가 소소위의 예산 심의와 관련해 문제 삼은 측면은 크게 ‘법적 근거·투명성·대표성’ 등 세 가지다. 먼저 법적 근거 문제다. 입법조사처는 “국회법 어디에도 소소위에 대한 규정은 없다”고 강조했다. 전진영 정치의회팀 입법조사관은 “국회법 제57조제8항은 ‘예결위는 소위원회 외에 그 심사의 필요에 의하여 이를 수 개의 분과위원회로 나눌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따라서 예산 심의는 전체회의나 예결위 산하 소위 또는 분과위원회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을 만들고 심의하는 국회가 스스로 법을 어기고 있음을 꼬집은 것이다. 

 

아울러 입법조사처는 “소소위에서 예산이 증액되더라도 회의록이 없어 예산 심의 과정의 공개성과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입법조사처가 투명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뭘까. 단순히 재원이 국민 세금이기 때문은 아니다. 투명성이 확보돼야 예산의 효율적 배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치란 자원의 권위적 배분이다. 여기서 권위란 단순히 권력의 크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예산 배분을 권력의 유무나 크기의 문제가 아닌 효율성, 공정성과 같은 가치에 근거해 움직이는 방정식으로 바꿔내려면 ‘투명성’은 반드시 전제돼야 할 원칙이다.

 

입법조사처는 보고서에서 “교섭단체를 대표하는 간사 3인(2018년도 예산안 심의 기준)에 의한 예산 증액은 대표성의 측면에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는 지적도 했다. 전진영 입법조사관은 “예산 심의의 효율성을 위해서 소위원회 또는 분과위원회를 구성해 예산안 심의를 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보다 더 작은 단위인 소소위에서 3인의 의원에 의한 결정은 의사결정의 대표성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표성은 민주주의 원리의 핵심이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로서 어떤 주체보다 민주적 가치를 지켜야 하는 국회가 사실상 위법 행위를 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셈이다. 차분하게 쓰인 이번 입법조사처의 보고서가 사실은 얼마나 강하게 여야 모두에게 쓴소리를 던지고 있는지 음미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국회 내부에서는 소소위가 ‘필요악’이라는 분위기도 있다. 타협과 협상보다는 갈등과 반목이 일상인 국회 현실과 짧은 심의 기간 등을 감안하면 극소수의 의원들이 비공개로 모여 담판을 짓지 않는 이상 예산안 처리가 힘들다는 항변이다. “현실적으로 방법이 많지 않다”(백재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소소위로 넘겨야 회의가 효율적으로 진행”(곽대훈 자유한국당 의원), “예결 심의의 오랜 관행이 있으니 그 관행을 존중하자”(황주홍 민주평화당 의원) 등의 발언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소소위의 예산 심의는 ‘민주적 원리’에 부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많다. 대표적으로 상임위에서의 예산 심의 결과가 소소위에서 뒤집히는 경우다. 국회법 84조는 ‘예결위가 소관 상임위에서 삭감한 예산을 증액하거나 새로운 비목(費目·비용 항목)을 설치할 경우에는 소관 상임위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소소위에서 결론을 바꾼 경우 상임위의 동의를 구하는 일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특히 불투명한 예산 심의는 국회 결산 기능의 마비까지 가져온다. 헌법 99조는 감사원으로 하여금 매년 세입·세출의 결산을 국회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회법 84조2항은 ‘결산의 심사 결과 위법하거나 부당한 사항이 있을 경우 정부 또는 해당 기관에 변상 및 징계조치 등 시정을 요구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법적 근거는 물론 논의 내용을 알 수 있는 회의록조차 없이 불투명하게 예산을 편성하고 심의하면 결산 권한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당장 누구에게 예산의 낭비와 사업 실패의 책임을 물어야 하느냐는 지적이 나오게 되기 때문이다.

 

올해 5월 추가경정예산안 심의에서도 소소위는 어김없이 가동됐다. ⓒ시사저널 박은숙

 

 

“혈세 낭비 책임, 누구에게 물을 수 있나”

 

전문가들은 소소위에서 예산을 심의하는 관행을 강하게 비판했다. 성공회대 교수인 임세은 민생경제연구소장은 “물리적인 시간 문제와 정치적 쟁점 등 말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더라도, 민의기관인 국회가 민생에 가장 깊고 넓게 영향을 주는 예산 심의를 밀실에서 소수에 의해 처리한다면 ‘어쩔 수 없이’ 국민들의 실망과 비토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국회법에서 소위 등 회의 내용을 공개로 하고 회의록을 남기게 한 이유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견제와 균형’ ‘책임성’이라는 원칙을 달성하기 위함”이라면서 “소소위처럼 밀실에서 예산을 심의해 국민 혈세를 낭비하게 되면 그 책임은 대체 누구에게 물을 수 있냐”고 지적했다. 하 대표는 이어 “지방의회에서도 현재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국가 예산을 밀실에서 비공개로 결정해 세금이 낭비되는 것은 고질적인 병폐로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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