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계란 사태, 농민만 ‘죽일 놈’ 만들어선 안 돼”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8.07.09 14:40
  • 호수 1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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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치킨전》 저자 정은정 박사 인터뷰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

 

2017년 8월15일 포털사이트 뉴스난이 ‘살충제 계란’으로 도배됐다. 전 국민이 경악했다. 정부의 구멍 난 검역제도가 도마에 올랐다. 동시에 비난의 화살이 향한 곳은 무지(無知)했던 양계 농가. 정부는 살충제를 뿌린 양계 농가를 재교육·단속하고, 이를 어길 시 엄단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닭을 길러낸 이들은 범법자 낙인이 찍힌 채 계도(啓導) 대상이 됐다.

 

시간은 흘렀다. 300일 전 자취를 감췄던 계란은 다시금 우리네 식탁에 오르고 있다. 살충제 계란 사태는 해결 국면에 접어든 것일까. 7월2일 경기도 남양주시 자택에서 만난 정은정 박사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살충제 계란 문제는 철저하게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 입장에서 담론이 형성돼 왔다”며 “문제가 왜 생겼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농민을 범죄자로만 낙인찍어서는 문재인 정부의 농축산 정책도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정부 대책 마련했다지만

 

정은정 박사는 농촌사회학자다. 동시에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양계 전문가’다. 정 박사는 살충제 계란 사태가 발생하기 3년 전인 2014년 《대한민국 치킨전》이라는 저서를 통해 닭 사육 농가의 현실을 짚어낸 바 있다.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1인 1닭 시대지만 양계 농민들의 처지가 나아지진 않는다. 양념치킨을 많이 먹는다고 해서 양념채소를 키우는 농민들의 처지가 나아지지 않은 것처럼.’ 일찌감치 양계 농가가 처한 박한 현실을 조명했던 정 박사. 그가 마주한 2017년 살충제 계란 사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정 박사는 “제일 먼저 든 생각은 ‘터질 게 터졌구나’였다”고 답했다. 표정에 좌절감은 없었다. 대신 옅은 미소를 띠었다. 대한민국 양계 산업을 향한 조소(嘲笑)로 읽혔다. 정 박사는 정부가 이후 내놓은 대책들을 보면 살충제 계란 사태가 왜 발발했는지에 대한 고민을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불이 났는데 화재 원인을 밝히지 않고 큰불만 잡느라 정신이 없는 모습”이라고 표현했다. 정부가 국민들의 놀란 가슴을 달래주는 데 혈안이 된 나머지, 재앙의 원인을 외면하고 있다는 얘기다. 

 

일례로 난각(계란 껍데기)에 생산자 고유번호와 산란일자 등을 표기하게 한 개정안을 문제로 짚었다. 계란의 ‘신분증’이 생기는 것으로 소비자 입장에선 나쁠 게 없다. 다만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한 중소 규모의 양계 농가 입장에선 추가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탓에, 생계를 위협하는 큰 장애물이 생긴 셈이다. 정 박사는 “계란 한 알 가격이 50원 내외다. 이 가격에 계란을 팔면서 농민들은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데, 난각에 정보를 새기는 기계 구입비부터 잉크비 등을 농민들이 추가로 부담하라는 것은 무리”라며 “산란일자까지 표기하게 한다는데 이렇게 되면 소비자들은 최근에 낳은 계란만 구매하려 할 것이고 2~3일 지난 계란이 재고로 남아 양계 농가들에는 더 큰 부담을 안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 박사는 인터뷰 내내 정부가 농민이 ‘지킬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애초 농민들이 닭장에 살충제를 뿌릴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럴 수밖에 없는 사유가 있었을 텐데 이에 대한 정부의 고민이 부족해 보인다는 얘기다. 계란 값은 바닥을 기는데 진드기가 창궐하는 상황에서 ‘친환경 사육’ ‘사육환경 개선’ 등을 강조하는 것은 농민 입장에서 ‘알고 밟는 지뢰’라는 것이다. 지키자니 당장 생계가 막막하고, 지키지 않는 순간 범법자로 전락한다.

 

정 박사는 ‘제2 살충제 계란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생산자의 입장이 고려된 대안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찍만이 건강한 양계 산업을 키우는 데 능사는 아니라는 얘기다. 정 박사는 “농민들도 분명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양계 농가에 원칙을 지켜도 먹고살 수 있다는 신호를 줘야 한다는 것”이라며 “때에 따라서는 (공급 과잉을 막기 위해) 양계 농가의 퇴로도 열어줘야 한다. 손실을 보존해 주는 공적자금 투입도 논의해 봐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라운드 테이블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비자도 인식전환 해야

 

정 박사는 문재인 정부가 유독 농축산 정책에선 아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청와대의 신정훈 농어업비서관과 이재수 선임행정관에 이어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까지 지난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사표를 던졌다. 이 탓에 사상 처음으로 청와대와 농식품부의 농정 컨트롤타워 부재 사태가 발생하며 농축산계의 거센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정 박사는 “문재인 정부의 농업 식품 정책을 봐선 기대감이 없다. 농산물 가격보존 정책 등에 정부가 보다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박사는 인터뷰 말미 소비자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살충제 잔류량에 경악을 할 게 아니라 이렇게 길러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우리의 무관심에 경악해야 한다. 친환경·동물복지 계란을 먹고 싶다는 생각도 좋다. 다만 우리 모두가 살충제를 덜 뿌리고 먹고살 수 있는 환경을 같이 만들어가는 일원이라는 생각부터 할 수 있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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