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회장의 뚝심, 20년 만에 결실 맺다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18.07.09 15:06
  • 호수 149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대차그룹, 제이디파워 신차품질조사 1~3위 석권

 

“벤츠도 BMW도 아니다. 제이디파워 신차품질조사의 위너는 놀랍게도 한국차 브랜드였다.”(USA투데이)

“한국 자동차가 품질조사에서 포르쉐를 눌렀다.”(블룸버그통신)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제이디파워(J.D.Power)가 6월20일(현지 시각) ‘2018 신차품질조사(IQS·Initial Quality Study)’를 발표한 직후 나온 주요 외신들의 반응이다. 기아차가 독일과 일본, 미국 등의 쟁쟁한 경쟁 브랜드를 제치고 일반 브랜드 1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는 2017년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미국에서 판매된 신차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구입 후 3개월이 지난 차량의 고객들에게 233개 항목의 품질 만족도를 물어 불만점수가 가장 적게 나온 브랜드를 추렸다. 기아차는 도요타와 닛산, 폴크스바겐 등 해외 유명 자동차 브랜드를 누르고 1위를 기록했다. 쏘렌토와 프라이드, 쏘울은 각각 중형 SUV와 소형, 소형 다목적 차급에서 1위에 올라 ‘최우수 품질상(Segment Winner)’을 수상했다. 현대차 역시 74점을 기록하며 일반 브랜드 2위를 차지했다. 엑센트는 소형 차급에서, 그랜저(현지명 아제라)는 대형 차급에서 각각 1위에 올랐다. 

 

미국 시장조사 업체 제이디파워가 6월20일 발표한 신차품질조사 결과 현대차 브랜드가 상위 1~3위를 석권해 주목된다. ⓒ연합뉴스


 

한국차, 美 코미디 프로그램 단골 소재 

 

특히 제네시스 브랜드는 BMW와 벤츠, 아우디, 렉서스, 캐딜락 등 프리미엄 브랜드를 포함한 전체 31개 브랜드 중 종합 1위(68점)를 차지해 주목을 받았다. 독일과 일본 브랜드가 양분해 온 미국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에 진출한 지 2년 만에 정상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외신들은 “한국차가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하던 때는 이제 옛말이 됐다. 품질 면에서 일본과 독일을 넘어섰다”며 “제네시스와 기아차, 현대차가 제이디파워 신차품질조사에서 1~3위를 석권한 게 증거”라고 평가했다.

 

현대차그룹의 ‘품질 경영’을 진두지휘한 인사가 바로 정몽구 회장이다. 정 회장은 1999년 현대기아차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했다. 2000년에는 국내 최초로 자동차 전문 그룹을 출범시켰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한국 자동차는 미국 코미디 프로그램의 단골 소재가 되다시피 했다. NBC 코미디 프로그램인 ‘자니 카슨 쇼’나 ‘데이비드 레터맨 쇼’에서 미국 정부의 잘못된 정책 결정을 현대차 구매와 비교했을 정도였다. 

 

품질이 뒷받침되지 않은 탓에 미국에 수출했던 자동차의 리콜 요청이 쇄도했다. “품질이 안 좋아 차를 팔 수가 없다”는 현지 딜러들의 하소연이 잇달았다. 회장 취임 직후 수출 현장 점검차 미국을 방문했다가 한국 자동차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고 정 회장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정 회장은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품질 경영’을 선포했다. 회장 취임 이후 줄곧 추진해 온 제1의 경영 목표 역시 ‘품질’이었다. 정 회장은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객이 믿고 탈 수 있는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이고, 그 기본이 바로 품질”이라고 틈날 때마다 직원들에게 강조했다. 우선적으로 제이디파워에 품질을 올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컨설팅을 받게 했다. 이후 생산과 영업, A/S 등 부문별로 나뉘어 있던 품질 관련 기능을 묶은 품질총괄본부를 서울 양재동 사옥에 만들었다. 매달 품질과 연구·개발(R&D), 생산 담당 임원들을 모아놓고 품질 관련 회의를 주재했다. 생산라인을 중단시키면서 신차 출시 일정이 미뤄지기도 했다. 

 

품질에 자신이 붙은 정 회장은 미국에서 ‘10년 10만 마일 워런티’를 내세웠다. 그 결과 현대·기아차는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유례없는 고속 성장을 이어올 수 있었다. 2008년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전 세계 자동차업계가 신음할 때도 현대·기아차는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었다. 현대차의 주가는 2008년 11월28일 3만5750원에서 2012년 5월4일 27만2500원으로 4년여 만에 662.24% 폭증했다. 같은 시기 기아차의 주가는 5720원에서 8만4800원으로 1382.52%나 올랐다. 

 

현대차그룹의 한 관계자는 “도요타나 혼다가 ‘2년 2만4000마일 워런티’를 내세울 때 현대·기아차는 ‘10년 10만 마일 워런티’를 선포했다. ‘미친 짓’이라거나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는 바보짓’이라는 비웃음이 적지 않았다”며 “이런 일본차 브랜드들이 슬그머니 ‘3년 3만6000마일’로 워런티를 늘렸다. 현재는 ‘5년 6만 마일 워런티’를 채택하는 회사들도 생겨났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0년까지만 해도 현대차와 기아차의 신차품질조사 순위는 각각 34위와 37위에 그쳤다. 하지만 정 회장이 품질 경영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현대차는 2002년 20위권에 처음 진입했다. 이후 등락을 거듭하다 2006년에는 전체 3위를 기록했다. 현대차보다 늦기는 했지만 기아차도 2006년 처음 20위권에, 이듬해 10위권에 진입한 후 가파른 성장을 거듭하다 올해 1위를 기록했다. 

 


 

한때 기아차 주가 1300% 오르기도 

 

정 회장은 최근 ‘품질 안정화’를 넘어 ‘품질 고급화’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얼마 전 미국 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정 회장은 “지금까지 현대·기아차가 ‘품질 안정화’를 위해 애써 왔지만 앞으로는 ‘품질 고급화’에 주력해야 할 때”라며 “고객 만족을 넘어 고객에게 감동을 주고 감성을 만족시키는 품질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새로운 과제”라고 말했다. 

 

전 세계 자동차 역사상 유례없는 성장을 했지만,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품질 고급화를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게 정 회장의 생각이다. 제네시스 브랜드의 탄생 배경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현대·기아차는 기존 차량 개발 기준을 강화한 ‘품질 표준(Q-Standard)’을 운영하고 있다. 현장에서 협력사와 함께 직접 품질을 검증하는 고유의 소통 및 협업 기반시설인 ‘품질 클러스터(Q-Cluster)’도 구축했다. 20년 뚝심으로 포르쉐 등 명차를 제치고 정상을 차지한 정 회장의 다음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