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범죄 노리는 잔혹한 살인자들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7.13 09:46
  • 호수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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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인적사항 공개된 후 변장 등으로 위장 장기도피

 

사람을 잔혹하게 죽인 살인자들이 완전범죄를 노리며 장기간 도피행각을 벌이고 있다. 이 중에는 얼굴과 인적사항이 공개됐는데도 보란 듯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경찰은 변장하거나 성형수술 등을 통해 신원을 숨기고 있다고 추정한다. 산골이나 외진 곳에 은신해 있을 가능성도 있다. 경찰은 전담반을 꾸리는 등 추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지만, 살인자들 또한 꼬리를 잡히지 않으려고 더욱 깊게 숨는 모습이다. 이런 와중에 15년간 도피생활을 하던 토막살인 용의자가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6월22일 강원도 속초의 한 원룸에서 50대 남성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이 신원을 확인해 보니 ‘제천 토막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인 신명호(59)였다. 신씨가 머물던 원룸 안에서는 약봉지가 발견됐고, 외부 침입 흔적은 없었다. 경찰은 신씨가 지병으로 숨진 것으로 판단했다. 이로써 경찰의 15년간 추격전도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 시사저널 고성준


 

■ 충북 제천 독신녀 토막살인 사건

‘신명호’ 15년 도피하다 숨진 채 발견

 

신씨 사건은 2003년 3월1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충북 제천시 청풍면 야산 입구 골짜기에서 농경지 배수로 공사를 하던 굴삭기 기사가 토막 난 여성의 시체를 발견했다. 시신은 신원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됐고 부패 상태도 심했다. 

 

경찰이 출동해서 보니 토막 난 시신은 여러 곳에 흩어지지 않고 가지런히 배열돼 있었다. 시신이 발견된 현장 인근에는 불에 탄 여행가방과 피 묻은 속옷, 차량 깔판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범인이 다른 곳에서 피해자를 살해한 후 토막 낸 다음 여행가방으로 옮겼고, 증거인멸을 위해 불에 태운 것으로 추정됐다. 

 

피해자는 약 4개월 전인 2002년 12월 경기도 용인에서 실종신고된 구아무개씨(여·53)였다. 구씨의 사망원인은 교살(목졸림)이었다. 경찰은 용의자를 파악하기 위해 구씨의 주변 인물을 탐문하기 시작했다. 구씨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남성이 있었는데, 전과 11범인 신명호였다. 그는 서울·경기·부산·대구·제주 등 전국을 무대로 사기행각을 벌여온 전문 사기범이었다. 구씨와는 골프동호회에서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신씨는 구씨가 실종되기 직전 40여 차례나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고, 같은 달 16일 구씨의 예금 4300여만원을 신씨의 내연녀 계좌로 이체한 것도 확인됐다. 구씨의 신용카드로 결제하거나 현금서비스를 받는 등 2450만원을 인출한 사실도 드러났다. 

 

구씨의 시신이 발견된 지점 인근에서 신씨가 통화한 기록도 있었다. 구씨 사망과 관련한 모든 의문의 화살표가 신씨를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경찰은 신명호가 구씨를 살해한 것으로 특정하고 그의 행방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신씨의 사기 행각과 범행수법도 속속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신씨는 골프동호회를 운영하면서 돈 많은 여성 회원들을 끌어들였다. 사업가를 사칭하며 주부들을 동호회에 가입시킨 뒤 고가의 명품 선물을 주는 방법으로 피해자들을 유혹해 성관계를 맺고 금품을 갈취했던 악랄한 제비족이었다. 

 

제천 토막시신 발견 현장 ⓒSBS 캡처


 

신씨에게 당한 피해자만 수십 명으로 추정됐고, 일부는 가정이 파탄에 이르렀다. 그는 다른 사람의 명의를 도용해 활동했다. 그의 이름과 직업 등이 한두 개가 아니었던 것이다. 주로 내연녀 남편의 명의를 도용했다. 

 

신씨의 도피 행각은 한 편의 영화 같았다. 그는 도피하기 전에 최대한 자금을 끌어모았다. 신씨는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전국을 무대로 도피 행각을 벌였다. 2015년에는 전남 지역의 한 원룸에서 신씨가 머물던 흔적이 발견됐다. 

 

신씨는 용의주도하게 움직였다.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자가용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았다. 대신 자전거만 타고 다니며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조차 마트에 직접 가지 않고 대량으로 구매한 후 배달을 시켰다. 그는 도주 중에도 변장을 한 채 주로 밤 시간에 낚시터에 나가서 시간을 보냈다. 

 

신씨가 강원도 속초에 숨어든 것은 지난해 말이다. 그는 낮에는 바깥출입을 삼가고, 주로 늦은 밤과 새벽 시간에 얼굴을 가리고 외출한 뒤 낚시를 즐겼다. 경찰은 유력 용의자인 신명호가 사망함으로써 ‘제천 토막살인 사건’을 공소권 없음으로 마무리했다. 이로써 신씨는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고, 살해된 피해자나 유족들은 더욱 원통하게 됐다. 

 

 

​ 울산 살충제 요구르트 살인 사건 

‘김영세’ 20년째 도주 중

 

‘울산 살충제 요구르트 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인 김영세(69)도 20년째 도피 행각을 벌이고 있다. 김씨가 살해한 피해자는 12살의 초등학생 아들이었다. 

 

1998년 7월19일 울산의 한 백화점에서 요구르트를 사서 마신 김용민군(12)이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사망했다. 경찰 조사 결과 김군의 사망원인은 ‘독극물 중독’으로 밝혀졌다. 요구르트에는 고독성 진드기 살충제 포스파미돈이 다량 함유된 상태였다. 

 

당시 멀리 뱃일을 떠났다가 1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 김영세는 햄버거를 먹고 싶다는 아들과 함께 백화점으로 향한다. 김군은 6살 때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쳐 거동이 불편했는데도, 부자는 2km를 걸어 백화점에 도착했다. 

 

부자는 지하 1층 식품매장으로 내려갔다. 음료수 코너에서 딸기 맛 요구르트 3개를 사서 스낵 코너로 향한다. 그곳에서 샌드위치를 구매한 뒤 샌드위치와 요구르트를 먹던 김군은, 한 모금 마신 뒤 “요구르트 맛이 이상하다”며 이상증세를 보였다. 김군은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55시간 뒤인 7월22일 새벽 1시쯤 끝내 숨졌다.

 

경찰은 요구르트 회사의 생산 과정 및 유통 과정을 추적했다. 요구르트에 독극물이 주입될 가능성을 조사했지만 제조 과정에서 이물질을 넣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경찰은 요구르트를 건넨 아버지 김영세를 의심하고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했다. 김영세의 행적도 수상했다. “아들의 요구에 따라 요구르트를 구매했다”고 진술했으나, 폐쇄회로(CCTV) 확인 결과 본인이 요구르트를 구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 전에 수차례 동일 백화점 식품관에서 같은 요구르트를 구입한 적도 있었다. 김군이 이상증세를 보이자 병원에 데려가는 대신 “요구르트에 독극물이 들었다”고 백화점에 항의한 것도 수상했다.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떠도는 소문 중에 “용민이가 6살 때 교통사고를 당하고 나서 김영세가 보험금을 수령한 뒤, 용민이의 다리를 고쳐주지 않고 그 돈을 도박판에서 전부 탕진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경찰은 아이가 장애가 있어 아버지가 아이를 키우기 힘들어했다는 증언도 확보했다. 

 

경찰은 김씨를 조사하기 위해 아이의 장례식이 끝나면 경찰서로 출석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김씨는 아들의 발인 날 “목욕탕에 다녀오겠다”며 장례식장을 나가 곧바로 종적을 감췄다. 

 

이 사건의 공소시효를 하루 앞둔 2013년 7월17일 관할 울산지방검찰청은 김영세를 불구속 기소했다. 이에 따라 김씨를 검거하면 처벌이 가능하다. 

 

주요 살인 사건 유력 용의자들


 

​ 충북 영동 주부 살인 사건

‘최용배’ 14년째 도주 중

 

2004년 6월25일 충북 영동군 한 마을에서 40대 주부가 살해된 채 발견된다. 머리에는 둔기에 맞은 상처가 있었고, 주변에서는 다량의 혈흔이 검출됐다. 경찰은 피해자가 둔기에 맞아 살해된 것으로 보고 용의자를 찾아 나섰다. 

 

피해자의 주변인물을 조사하던 중 유일하게 조사에 응하지 않고 연락이 두절된 마을 주민이 있었다. 최용배(59)였다. 최씨는 평소 마을의 대소사를 챙기는 등 피해자와도 가깝게 지내던 이웃이었다. 경찰 조사결과 최씨는 피해자와 채무관계가 있었다. 그가 피해자에게 연대보증을 섰는데, 그 후 은행으로부터 변제 독촉을 받았다. 경찰은 최씨가 이에 앙심을 품고 피해자를 살해한 것으로 추정했다. 최씨는 14년째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잠적 상태다. 

 

 

​ 서울 반포동 센트럴시티 살인 사건

‘황주연’ 10년째 도주 중

 

길을 걷던 전처와 내연남을 흉기로 찔러 전처를 살해한 황주연(43)도 10년째 도주 중이다. 황씨는 2008년 8월17일 오후 8시19분쯤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센트럴시티 앞 도로에서 미리 준비하고 있던 흉기로 전처 김아무개씨(34)와 함께 있던 남성(33)을 흉기로 찔렀다. 이 중 전처가 사망하고 남성은 중상을 입었다. 

 

경찰은 사건 발생 직후 황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하고 공개수배했다. 하지만 황씨는 종적을 감췄고, 10년째 도주 중이다. 경찰은 황씨가 가발을 쓰거나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신원을 위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황씨는 키 180cm에 호리호리한 체격이다. 

 

 

​ 서울 송파구 도박 빚 살인 사건

‘박종윤’ 9년째 도주 중

 

2009년 9월말 강원도 영월군 국도변에서 풀을 베던 주민이 끈으로 묶인 사람의 유골을 발견했다. 신원 확인 결과, 2년 전 연락이 두절된 김아무개씨와 오아무개씨였다. 경찰은 이들이 실종되기 전 통화기록을 분석하고 당일 행적을 파악했다. 그랬더니 함께 도박을 했던 2명이 수상했고, 이들을 용의자로 지목했다. 이 중 남궁씨를 검거해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그는 “도박 빚 갚을 돈을 마련하려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털어놨다. 

 

경찰 조사 결과, 범인들은 정선 카지노와 카드 도박 등으로 많은 돈을 탕진하고 4억6000만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 채권자들로부터 계속된 빚 독촉에 시달리자 현금이 많다고 소문난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범행에 나섰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2007년 서울 송파구에서 피해자들을 살해한 뒤 이불에 싸서 국도변에 암매장했다. 살인을 주도한 박종윤(59)은 범행 직후 행방을 감췄다. 

 

 

​ 대구 아내 살인 사건

‘이준세’ 8년째 도주 중

 

8년째 도주 중인 이준세(56)는 아내를 살해했다. 2010년 1월30일 오전 아내가 잘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방에 있던 가위로 온몸을 마구 찔렀다. 그의 아내는 다량의 출혈로 숨졌고, 이씨는 범행 후 도주했다. 현재까지 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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