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고 싶은 게 아니라 받고 싶은 걸 드려야”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8.07.13 12:48
  • 호수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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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베이 청년’ 원종건씨가 전하는 도움의 철학…‘히어, 히어로’ 캠페인 통해 소방관 지원 나서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이뤄 대중에게 열광적인 사랑을 받는 사람.’ 

 

영웅(英雄) 또는 히어로(hero). 이 단어의 정의다. 사전에 따르자면 영웅이란 영화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란 게 비단 초능력이나 악당 퇴치에만 국한되지는 않아서다. 불이 난 건물에 들어가는 일, 그 속에서 아이를 구출하는 일, 이 일을 24시간 해낸다면 그들은 영웅이 맞다. 그러나 현실 속 영웅의 삶은 사전에 적힌 것과는 다르다. 대중은 그들을 쉽게 잊고, 쉽게 말한다. 이 시대 소방관이 마주한 박한 현실이다.

 

외면받는 영웅의 삶을 다시 조명한 이는 이베이코리아 소셜임팩트팀 원종건(25) 매니저다. 원씨가 19개월 가까이 전국의 소방관을 돕고 응원하기 위한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소방관 처우 문제가 재조명되고 있다. “미라클(miracle·기적)이 아닌 작은 고민과 실천들이 모여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원씨. 7월11일 서울 강남구 이베이코리아 사무실에서 원씨를 만나 그가 전하는 ‘도움의 철학’을 들어봤다.

 

© 시사저널 이종현

 

불우한 과거에서 싹튼 ‘도움 DNA’

 

이베이코리아는 G마켓-옥션 고객참여형 기금인 ‘후원-나눔쇼핑’으로 열악한 환경에 처한 지역 소방본부를 지원하는 ‘히어, 히어로(Here, Hero)’ 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다. 이를 통해 소방관이 필요로 하는 물품을 마련해 전달한다. 2017년 2월에는 강원소방본부에 제설기, 경남소방본부에 신발건조기 등을 지원했다. 이어 광주·인천, 충북소방본부에 꼬임방지 소방호스 등 연간 10억원 규모의 소방용품도 전달했다.

 

이 프로젝트를 최전선에서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는 입사 1년7개월 차 원종건 매니저다. 원씨는 신입사원 딱지를 이제 막 뗐다. 그런 그가 이베이코리아의 CSR(사회공헌활동)을 일선에서 이끌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성장 배경에 있다. 원씨의 두 살 터울 여동생은 심장에 구멍이 뚫린 채 태어나 스웨덴으로 입양됐다. 아버지는 이듬해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원씨의 곁에는 시·청각 장애를 지닌 어머니만이 남았다. 

 

어두운 터널 같던 소년의 삶에 차츰 빛이 들기 시작한 건 2005년. 당시 MBC의 공익 예능 프로그램 《느낌표-눈을 떠요》에 원씨 사연이 소개된 뒤, 어머니가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각막 수술을 받고 눈을 떴다. 원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이후 ‘프로 리시피언트(recipient·수혜자)’가 됐다. 원씨 모자(母子)에게 도움의 손길이 빗발쳤다. 그러나 고민도 같이 늘었다. 

 

“겨울이면 복지관에서 패딩을 줬고 교회에서는 김치가 왔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그런데 옷은 사이즈가 맞지 않았고, 배추김치는 2인 가족이 먹기 버거울 만큼 쌓여갔다. ‘줬는데 왜 버리냐’는 얘기가 나올까봐 열심히 먹었지만 결국에는 음식물 쓰레기가 되더라.”

 

원씨는 그래서 쉽게 돕지 않는다. 그는 “누굴 돕는다면 주고 싶은 게 아니라 받고 싶은 걸 드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음만 있는 도움은 ‘김치 같은 지원’을 낳게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베이코리아에서 소방관을 지원하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원씨가 전국 산간벽지에 위치한 소방서를 직접 돈 이유기도 하다. 

 

“몸은 힘들다. (소방관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러나 그래야 (그들의 삶을) 공감할 수 있다. 일부 네티즌들이 ‘소방관 처우 이 정도면 괜찮은 것 아니냐’고 항변하기도 하던데 현장에 가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이분들은 최고의 시설, 최고의 환경에서 근무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응급 상황에서) 살 수 있다.”

 

이베이코리아는 최근 소방관들이 직접 참여하는 ‘소방용품 아이디어 공모전’을 개최했다. 공모전은 약 2개월 동안 진행됐고 부산소방본부 서벧엘 소방관이 제출한 ‘격자무늬 레이저 랜턴’이 최우수상으로 선정됐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화재 현장에서 레이저 불빛으로 좀 더 밝게 물체를 확인할 수 있다. 향후 개발 과정을 거쳐 상용화할 계획이다.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아이디어는 21개지만, 원씨의 책상에는 접수된 소방관 아이디어 서류 171개가 빼곡히 쌓여 있다. 원씨는 이 서류뭉치를 가리켜 ‘보물상자’라고 말했다. 원씨는 “소방관분들이 직접 생각하고 고민한 아이디어라 정말 소중하다. (아이디어 서류를) 보다 보면 더 잘 도울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돕는다는 것, 거창하지 않아도 좋아”

 

당분간 원씨는 소방관을 돕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다만 그의 삶은 이미 누군가를 돕는 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여가시간에는 2016년 10월 대학 친구들과 결성한 ‘설리번’이라는 봉사 모임에서 활동한다. 이곳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통역사 호출 앱(APP)을 개발 중인데, 오는 8~9월 중 한국농아인협회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정식 출시할 계획이다. 

 

우리 사회 가장 낮은 곳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원씨. 쉽지 않은 일을 일상에서 해 나가는 그가 작은 영웅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는 이런 칭찬마저 정중히 거절했다. 돕는 이들이 조명받는 순간 ‘좋은 일’의 의미와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엄마가 각막 이식 수술로 시력을 회복한 것은 발전한 의료기술의 힘과 도움을 줄 사람을 찾던 제작진의 고민이 더해진 결과였다. 기적이 아니었다. 기술은 발전하고 있고 우린 충분히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 단지 어떻게 도울 것인가 하는 생각과 공감, 고민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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