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션샤인》도 피해 가지 못한 ‘역사 왜곡’ 논란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7.27 09:44
  • 호수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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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근현대사 특수성 이해 부족이 원인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역사 왜곡 논란이 커지고 있다. 처음 문제가 된 건 연발총 사용 등 고증 관련 사안이었다. 그러나 이 정도는 드라마 표현상 허용될 수 있는 수준이다. 진짜 문제는 이다음부터다. 극 중에서 구동매(유연석 분)는 일본으로 가 겐요샤 하부 조직의 한성 지부장이 돼 조선으로 돌아온다. 겐요샤가 명성황후를 시해한 단체라는 점이 논란이 돼 제작진이 구동매의 소속 단체를 바꾸는 것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논란의 지점은 구동매의 소속 단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묘사였다. 구동매는 일제 앞잡이, 즉 친일파다. 드라마에서 구동매는 조선에서 잔학한 차별을 받은 끝에 일본으로 넘어갔다. 구동매를 친일파로 만든 것이 조선의 자업자득이라는 설정이다. 이것은 친일파의 친일 행각에 면죄부로 작용한다. 친일파의 사연을 부각시켜 그들의 잘못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친일파에게도 사연은 있을 것이고, 일부는 그런 복잡한 사정을 그릴 수도 있다. 구동매 캐릭터에서 더 큰 문제는, 일제 면죄부의 측면도 있다는 점이다. 구동매는 조선인이다. 조선 사람이 일제의 선봉에 서서 조선을 침탈한다. 구동매를 그렇게 만든 건 조선 자신이다. 그러므로 조선의 잘못에 의해 조선인이 조선을 침탈했다는 이야기가 되고 일제는 면책되는 것이다.

 

© pixabay


 

친일파와 일제 침략에 면죄부 

 

일제 면죄부 설정은 이완익(김의성 분) 캐릭터에서 더 분명히 드러난다. 1회에서 이완익은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를 찾아가 5만원에 조선을 팔겠다고 제안했다. 심지어 운요(雲揚)호 파견도 이완익이 먼저 제안했다. 1875년 강화도에서 발생한 ‘운요호 사건’은 일제의 조선 침탈 출발점이다. 그것을 조선인이 기획했다는 설정이다. 일본은 이완익의 제안에 수동적으로 응한 입장이다. 조선을 망하게 한 건 조선인 스스로다. 이대로라면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것도 잘못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 침탈의 원흉이 아니라 단지 친일파의 제안에 응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조선은 다들 나라 못 팔아 안달이라던데?” “친일하고자 하는 마음은 둘째가라면 서럽네” 등의 대사로 당시 조선에 친일파가 들끓었다는 인상을 준다. 백성들이 너도나도 일본에 영합하고 조선의 안위엔 관심이 없었다면, 일본의 조선 점령은 그리 큰 잘못이 아닌 게 된다.

 

제국주의 침탈의 역사엔 엄연히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다. 피해자에게도 물론 여러 가지 내부 문제가 있겠지만, 그렇다고 침략자가 가해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가해자는 분명히 침략국이고, 친일파 등 내부 반역자들은 가해자의 하수인일 뿐이다. 친일파가 준동하는 내부 사정을 과도하게 부각시키는 것은 침략자가 몸통이고 친일파는 꼬리라는 사실을 뒤집는다. 친일파를 조선 침탈의 몸통으로 오인하게 만들어 침략자의 책임을 꼬리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다. 

 

게다가 이때는 아직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기 전이어서 나라를 팔겠다는 친일파가 만연하던 무렵도 아니었다. 드라마가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친일파를 부각시켜 조선 패망을 내부 책임으로 돌렸다.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 처신의 잘못을 부각시키는 것이 위험한 것처럼 침략 범죄에서도 피해국의 잘못을 부각시키는 건 위험하다.

 

조선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것이 맞고, 어쨌든 친일파의 득세도 맞으니, 드라마가 이런 역사도 그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유럽이라면 가능하다. 유럽에선 나치의 침략 범죄가 공인됐고, 가해자인 독일도 수차례 사죄했다. 그런 상태라면 피해자 내부의 다양한 사정을 그려도 나치의 책임을 희석시킨다는 비난이 덜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유럽에서조차 나치와 그 부역자들은 절대악으로만 그려질 때가 많다. 나치는 물론 언제나 침략의 몸통으로 등장한다. 동아시아에선 가해자가 아직도 가해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넷우익들이 피해자 한국에 2차 가해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드라마가 나서서 일본의 책임을 덜어줘야 할까? 친일파와 조선 내부 문제를 그리더라도 침략 범죄의 몸통이 일본이라는 점은 분명히 해야 한다. 특히 이 드라마의 시대 배경이 구한말이라서, 이 시기 일본을 침략의 주체로 그리지 않으면 조선은 일본에 침략당하지 않은 게 된다.

 

일제는 구제불능 조선을 일본이 구해 줬다는 식민사관을 유포했다. 《미스터 션샤인》은 주요 인물들이 조선의 질곡 속에서 고통받는다는 설정을 통해, 결과적으로 식민사관에 부합하게 된 측면도 있다.

 

왼쪽부터 《미스터 션샤인》 《군함도》 《마이웨이》 © tvN·CJ엔터테인먼트·CJ E&M 제공


 

반복되는 근대사 왜곡 논란 왜?

 

영화 《군함도》에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군함도에서 조선인을 괴롭힌 원흉이 조선인이라는 설정이 일제의 책임을 희석시켰다는 것이다. 영화 《마이웨이》에선 평화로운 일본 가정에 조선 독립군이 폭탄을 던지는 설정으로 마치 조선 독립군이 평화를 깨뜨리는 테러리스트처럼 느껴지게 했다. 일본군이 침략 책임을 인정하지도 않는데, 무작정 화해하는 설정으로 일본의 죄를 추궁해야 할 한국의 입장을 옹색하게 만들기도 했다.

 

근대사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다. 앞서 언급했듯 동아시아의 침략사가 서양과는 달리 아직 정리되지 못했고, 그래서 지금은 일제의 책임을 확정짓는 데 주력해야 할 단계라는 인식이 부족한 것이다. 그 상태에서 근대사라는 배경만 활용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넘어선 안 될 선을 넘게 된다. 우리끼리는 일제의 책임이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그것은 모두가 전제했다고 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 더 복잡한 내부 문제를 그리는 경우도 있다. 

 

《미스터 션샤인》이 한류 대작 드라마라 더욱 문제다. 한국에서 영화는 내수 상품의 성격이 강하지만 한류 대작 드라마는 수출 상품의 성격이 강하다. 우리끼리만 보는 게 아닌 것이다. 실제로 이 드라마는 전 세계 190여 개국에서 동시 방영된다. 동아시아에서 큰 관심을 받을 것도 확실시된다. 외국인들이 일본의 침략 범죄에 대해 오인하도록 만들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나치에 비해 일제 범죄에 대해선 서구인들의 인식이 미약해서 문제였다. 남은 방영분에서라도 일본이 가해자라는 점을 분명히 표현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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