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실리콘까지 동원해 화장실 구멍 막는 여성들
  • 조문희 기자·김윤주·김정록 인턴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18.07.2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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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개 지하철 화장실, 여자는 구멍의 95% 스스로 메웠는데 남자는 그대로 뚫려있어

 

‘몰카포비아(몰래카메라 공포증)’가 여전히 일상을 잠식하고 있다. 정부가 몰카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지난 5월부터 공중화장실 5만여 곳을 점검했지만, 여성들은 아직도 불안하다. 휴지와 실리콘을 들고 다니며 화장실 안에 뚫린 구멍을 스스로 메우는 여자들. 지하철 여자 화장실은 몰카포비아 집결지였다.

 

회색 빛 화장실 문에는 흰 점들이 가득했다. 문고리에 박힌 나사는 흰 휴지로 감싸져 있었다. 벽에 난 구멍은 하얀 실리콘으로 막혀 있었다. 시사저널이 7월25일 확인한 지하철 8개 역사 여자 화장실의 단면이다. 공사의 흔적은 아니었다. 여성들이 직접 메운 자국이었다. 반면 남자 화장실은 휴지는커녕 구멍도 대부분 그대로 뚫려있었다.

 

시사저널이 7월25일 확인한 지하철 여자 화장실의 모습. 구멍과 나사들이 휴지나 실리콘 등으로 막혀 있다. ⓒ조문희·김윤주 제공


 

구멍 난 화장실 비율은 비슷한데 女는 꽁꽁, 男은 텅텅

 

시사저널이 찾은 역사는 홍대입구·고속터미널·​강남·​서울역·​신도림·​사당·​역삼·​건대입구·​대림·​서울대입구 등 10곳이었다. 그중 대림역과 서울대입구역은 화장실이 점검 중이어서 확인하지 못했다. 이 역들은 서울교통공사가 공개한 2017년 몰래카메라 신고가 가장 많은 역사 상위 10곳이다. 해당 역에 있는 남녀 화장실 총 17곳을 돌았다. 여자 화장실은 173칸, 남자 화장실은 양변기가 설치된 70칸을 확인했다. 여자 기자 2명과 남자 기자 1명이 동행했다.

 

구멍이 뚫린 비율은 비슷했다. 여자 화장실은 173곳 중 111칸(64%)에서 벽이나 문짝에 구멍이 난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남자 화장실도 비슷한 비율로, 70곳 중 59%(41칸)에 구멍이 있었다. 휴지 걸이나 문고리를 옮겨 다는 와중에 생긴 자국으로 보였다. 여자 화장실에 구멍이 훨씬 많을 거라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셈이다.

 

 

다만 구멍의 상태는 전혀 달랐다. 여자 화장실은 구멍의 95%가 막혀있던 반면, 남자 화장실은 24%만이 메워져 있었다. 구멍이 있던 111칸의 여자 화장실 중 106칸엔 휴지 쪼가리가 가득했다. 문고리에 달린 나사, 벽에 뚫린 구멍, 비상벨에 있는 못은 흰 휴지로 덮여있었다. 간혹 두꺼운 테이프나 카메라 모양이 그려진 스티커가 붙여진 경우도 발견됐다.

 

남자 화장실은 사뭇 달랐다. 구멍 자국이 있던 41칸 중 10개(24%)만 막혀 있었고, 나머지는 그대로 뚫려 있었다. 그마저도 절반은 역사 측에서 막았다. 강남역 10번 출구 근처 남자 화장실에서 확인한 5칸은 구멍이 전부 까만 테이프로 막혀 있었다. 강남역사 관계자는 “열쇠고리가 낡아 새로 다는 과정에서 구멍이 생겼고 역사 차원에서 구멍을 막았다”고 설명했다. 똑같은 구멍이 있어도 여성들은 막기 바쁜데 남성들은 태연한 거다.

 

구멍이 그대로 뚫려 있는 지하철 남자 화장실의 모습. ⓒ김정록 제공


 

“불법촬영 중대 범죄” 홍보, 女화장실 앞에서만

 

차이가 뚜렷한 곳은 홍대입구역이었다. 홍대입구역은 지난해 몰카 범죄 신고가 가장 많았던 곳이다. 홍대입구역 2호선 여자 화장실은 19칸 모두에서 구멍이 메워진 흔적이 발견됐지만, 남자 화장실은 7칸 중 1칸만 막혀있었다. 특히 여자 화장실에는 문짝에 “몰카 설치하러 온 거면 재기해(‘재기해’는 ‘자살해’라는 의미의 인터넷 용어)”라는 문구가 적힌 칸도 있었다.

 

홍대입구역 2호선 여자 화장실에 쓰인 문구 ⓒ조문희 제공


 

화장실 앞에는 “불법촬영 중대한 범죄행위입니다”가 적힌 홍보물이 세워져 있었다. 서울경찰청과 여성가족부 등이 설치해 둔 입간판이었다. 여자 화장실 앞에만 있었다. 화장실 통로쪽 입구에도 “불법촬영하는 당신, 지켜보고 있습니다”라고 적힌 거울이 붙어 있었다. 역시 여자 화장실에서만 보였다.

 

남자 화장실 안에 불법촬영 금지 홍보물이 붙어 있던 건 건대입구역뿐이었다. 17개 남자 화장실 중 건대입구역 2호선 방향 화장실에만 “남의 몸을 몰래 찍으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라는 서울특별시의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건대입구역사 안에는 옥외간판도 있었다.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서 후원을 받아 설치된 광고물엔 “올바른 몰카 예방법은? 애초에 안 찍는다”고 적혀있었다.

 

건대입구역에 설치된 불법촬영 금지 옥외광고물 ⓒ김윤주 제공

 

실리콘 들고 다니는 여성들 “불쌍하다”

 

구멍을 효율적으로 막기 위해 여성들은 빠데(흠집을 메울 때 쓰는 공사용품)를 공동구매하기도 한다. 서울 신림동에서 고시학원을 다닌다는 여성 김진아(25)씨는 “자주 이용하는 커뮤니티에서 빠데를 공동구매하자는 게시물이 올라왔는데 살까 고민 중이다”고 말했다. 그는 3년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공중화장실 몰카 게시물을 본 이후 지하철 화장실은 “죽었다 깨나도 이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어 “요즘은 학원 화장실을 사용하는데, 학원에도 구멍이 너무 많이 뚫려있어서 소름 끼친다. 구멍이 보일 때마다 휴지를 물에 적셔서 막고 있다”고 했다. 이어 “가끔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고, 여자들이 불쌍하다”고 말했다.

 

화장실 구멍을 대하는 남성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화장실에 뚫린 구멍을 스스로 막아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직장인 이현종(28)씨는 “구멍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데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양변기 칸을 잘 이용하지 않아서 몰랐던 것도 있지만, 애초에 몰카가 있을 거란 의심을 안 하기 때문에 무관심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대학생 정아무개(23)씨는 “요즘 들어 남자도 화장실 구멍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워마드’에서 남자 화장실 몰카 게시물이 올라왔다는 보도를 접한 이후다. 그는 “피해 학교에 재학 중인 터라, 나도 찍힌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아직 구멍을 메워본 적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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