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생존권마저 위협하는 폭염의 공포
  • 차여경 시사저널e. 기자 (chacha@sisajournal-e.com)
  • 승인 2018.08.03 11:47
  • 호수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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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도 이하 마트·복합몰로 손님들 몰려…“동네 상권엔 손님 발길 끊겼다”

최고 40도에 가까운 폭염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전통시장 상인들과 자영업자들은 한 달가량 지속되는 폭염이 버겁기만 하다. 무더위가 심해지면서 골목상권을 찾는 손님들이 크게 줄어든 탓이다. 자영업자들은 결국 휴무일을 늘리거나 영업시간을 단축하며 해결책을 모색 중이다. 심각한 경우엔 점포를 정리하는 경우도 있다.

대형 쇼핑몰과 동네상권을 가르는 열쇠는 바로 평균 온도다. 경제학에서는 환경적인 요소가 자영업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고 진단한다. 전문가들은 “마(魔)의 ‘25도’를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은 평균온도가 25도를 넘는 매장을 찾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배달 스타트업들의 매출이 급격히 오른 것도 날씨 영향이 크다. 

기자가 7월31일 오후 서울 중구와 마포구 일대 주요 상권을 직접 둘러보며 온도를 쟀다. 마트와 시장의 평균 온도는 최대 14도까지 차이가 났다. 가장 온도가 높았던 곳은 마포구 연남동이었다. 낮 12시 연남동 기온은 39도까지 치솟았다. 학생들의 방학이 시작된 7월임에도 점심시간의 연남동은 조용했다. 

연남동은 최근 젊은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상권이다. 연남동에서 카페를 하고 있는 이가림씨(31)는 “손님들이 대부분 해가 떨어지는 오후 7~8시 이후에 몰린다. 낮에 오기엔 햇빛이 너무 세고 덥기 때문”이라며 “3~4월에는 테이크아웃 해서 연남동 공원에서 커피를 마시는 손님이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매장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간다”고 말했다.

서울 낮 최고기온이 39.6도를 기록한 8월1일 서울 중구 명동길의 한산한 모습(왼쪽 사진)과 시민들로 북적이는 서울 용산구 대형 쇼핑몰 모습

서울 낮 최고기온이 39.6도를 기록한 8월1일 서울 중구 명동길의 한산한 모습(위쪽 사진)과 시민들로 북적이는 서울 용산구 대형 쇼핑몰 모습. ⓒ 시사저널 고성준 



동네상권과 마트 평균 온도 최대 14도 차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게들은 하나둘씩 휴무일을 늘리거나 운영시간을 단축하고 있다. 마포구 연남동에서 빵집을 영업하고 있는 김모씨(32)는 “원래 주 1회에서 2회로 휴무일을 늘렸다”며 “매장이 대로변에 있지 않아 20~30대 손님이 직접 SNS를 보고 찾아오는데 요샌 더워서 발길이 뚝 끊겼다”고 토로했다. 3년 전 마포구에 터를 잡은 식당 주인 최모씨(40)는 “골목상권에 무더운 여름은 적이다. 요새 날씨가 너무 더워서 대부분 사람들이 복합몰이나 영화관 등을 더 찾는다. 휴가철이 겹친 것도 손님 감소에 한몫했다”며 “원래 낮 11시에 영업을 시작했지만 올해 여름부턴 낮 12시로 영업시간을 살짝 조절했다”고 설명했다. 

남대문시장은 오후 2시 32도를 기록했다.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가게 앞까지 천막을 길게 펴 햇빛을 가렸다. 어떤 매장은 매대 앞까지 바람이 갈 수 있도록 에어컨을 세게 틀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가게들은 선풍기 하나로 버티고 있었다. 그마저도 매장이 없는 무점포 상인들은 가판대를 지키며 햇빛을 겨우 가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가방 등 잡화를 팔고 있는 김영권씨(54)는 7월 내내 이어진 폭염에 상대적으로 손님 발길이 끊기긴 했지만 관광객 덕에 그나마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남대문시장은 그나마 명동과 가까워 외국인들이 찾고 있지만 손님이 많은 것은 아니다”며 “더위에 불경기까지 겹치니 더 힘들다”고 말했다. 

서울역에 위치한 대형마트와 명동에 위치한 백화점의 상황은 정반대였다. 평균 온도가 25~26도로 매우 쾌적했다. 전체적으로 매장이 넓고, 에어컨 역시 쉴 새 없이 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트와 백화점엔 평일 낮임에도 손님들이 많았다. 매장 직원들은 여름철 특수 물품이나 음식을 팔고 있었다. 서울역 대형마트 안에서 프랜차이즈 식품매장을 운영하는 직원은 “최근 폭염이 계속되면서 손님이 많아졌다. 대부분 냉면이나 메밀면 등을 주문한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들도 무더위에 동네상권을 찾는 게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주기적으로 소규모 빵집을 찾았다는 대학생 한아람씨(24)는 “크림빵이나 마카롱 등 디저트들은 더위에 쉽게 녹는다. 무리해서 빵을 사러 갔다가 빵도 녹고 사람도 녹을까봐 최근엔 빵을 잘 사러 가지 않았다. 오히려 여름철이기 때문에 시원한 복합쇼핑몰을 더 찾게 된다”고 말했다.

젊은 자영업자들은 SNS 등을 활용해 돌파구를 찾고 있다. 이들은 SNS에 실시간으로 매장 상황을 안내한다. 더위를 뚫고 가게를 찾아달라는 일종의 호객 행위다. 동네빵집들은 무료로 보냉가방을 제공하기도 한다. 마감시간에 빵을 더 주는 행사도 진행하고 있다. 홍보 효과가 나름 쏠쏠하다.


SNS·시설 현대화로 살길 찾는 자영업자

하지만 더위에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전통시장은 별다른 해결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매장 앞 천막이나 쉼터를 설치하는 것도 임시방편이다. 시장 상인들은 대형마트와 백화점, 복합쇼핑몰에 소비자를 뺏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상인들은 상권 활성화를 위해 스마트시장 등 시설현대화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최근 전국상인연합회는 상인 주도 시설현대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례적인 폭염 탓에 소비자들이 시원한 대형마트나 프랜차이즈 매장을 더 찾고 있는 것에 우려를 표한다. 동네상권이나 전통시장은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환경의 영향을 더 받는다는 것이다. 서용구 숙명여자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소비자들은 온도가 25도를 넘는 매장은 피한다. 여름철에 전통시장이나 골목상권보다 대형마트가 더 잘되는 이유”라며 “더위나 환경적인 문제는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통제할 수 없는 변수다. 1년 중 여름에 골목상권 매출이 가장 낮다는 통계도 있다. 휴무일 확대 같은 한시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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