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째 軍 병원 천막 떠나지 못하는 의문사 유족들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8.07 11:29
  • 호수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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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함광열 이병 가족들의 외로운 싸움…“내 아들은 타살됐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 국군고양병원 장례식장 앞에는 검은 군용 천막 하나가 세워져 있다. 천막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앞쪽에 제단이 있고, 그 위에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이 청년은 16년 전 의문사한 고 함광열 이병(당시 22세)이다. 이 천막에서는 함 이병의 가족들이 생활하고 있다. 이 가족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서울 은평구 역촌동에 살던 함광열 이병은 1남1녀 중 장남이다. 그는 관광분야에 종사하고자 대전 우송대 관광계열학과에 입학했다. 학교에서는 댄스동아리 회장을 맡을 정도로 밝고 쾌활한 성격이었다. 대학 2학년을 다니던 중 2002년 7월 군에 입대했다. 자대는 집에서 가까운 서울 은평구 진관내동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방패교육대로 배치받았다. 함 이병의 삼촌 함상웅씨(66)는 “집에서 가깝다며 부모도 광열이도 좋아했다”고 전했다. 

 

같은 해 9월18일 가족들은 군에서 청천벽력 같은 연락을 받았다. “함광열 이병이 사고로 숨졌다”는 내용이었다. 군에 입대한 지 70일, 자대 배치를 받은 지 20일 만에 생긴 일이다. 

 

유족들은 국군고양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천막생활을 하고 있다. 사진은 유족 대표이자 삼촌인 © 故 함광열 이병 유족 제공


 

갑작스러운 비보에 충격을 받은 가족들이 속속 사고현장인 부대로 모여들었다. 군에서는 현장을 통제하고 사고 직후 4시간 동안 공개하지 않았다. 함 이병이 사망한 시각은 오전 10시46분쯤, 사망원인에 대해서는 “조사해 보자”고만 했다. 

 

유족 대표로 삼촌 상웅씨와 함 이병 동생인 수진씨(당시 여고 2학년)가 현장에 들어갔다. 함 이병은 머리에 총상을 입은 채 부대 내 재래식 화장실 안에 숨져 있었다. 무엇에 놀란 듯 두 눈을 뜬 상태였다. 동생 수진씨는 “죽기 전 무엇엔가 크게 놀란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런데 현장이 예사롭지 않았다. 상웅씨는 “나는 군에 있을 때 중대 사격 선수로 나갔었기 때문에 총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현장을 처음 봤을 때 소총(K2) 위치도 그렇고 탄창도 없었고, 특히 주위에 발라놓은 듯한 핏자국이 심상치 않았다”고 말했다. 

 

 

의문투성이 군 수사 발표

 

가족들이 현장을 확인한 후 함 이병의 시신은 오후 6시쯤 인근 고양국군병원 영안실로 옮겨졌다. 군은 다음 날 아침 지휘보고 때 이미 함 이병의 사망원인을 ‘총기사고 자살’로 보고했다. 이후 자살로 몰아갔다고 한다. 군의 발표는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사망 당일 부대 상황부터 달랐다. 당시 언론에는 이날 오전 부대 인근 자동화 사격장에서 ‘(함 이병이) 훈련을 마치고 부대로 복귀’한 뒤 내무반 부근 야외 화장실에서 머리 부분에 관통상을 입고 피를 흘린 채 쓰러진 상태로 발견됐다고 보도됐다. 

 

군이 유족에게 한 말은 달랐다. ‘사격을 마치고’가 아니라 “사격훈련 중 심부름을 보냈는데 사고가 났다”고 했다. 이처럼 전후 상황이 완전 달랐다. 군의 말대로 사격 중 심부름을 보냈다고 해도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군에서 사격장 안전수칙은 아주 엄격하다. 특히 탄피 하나까지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군 수사기관에 따르면, 사고 당일 부대에서는 사격훈련이 있었다. 당시 함 이병의 소총이 고장 났고, 혼자 응급조치를 하던 중 실탄 한 발이 땅에 떨어졌다. 함 이병은 이것을 몰래 주머니에 넣었다. 그때 마침 교육대장(소령)이 함 이병을 행정반으로 심부름을 보냈다. 함 이병은 그 길로 화장실로 가서 자살했다는 것이다. 

 

이에 유족 측은 말도 안 되는 설정이라고 반박한다. 사격장에서 이등병인 신병에게 심부름을 보낸다는 것도 납득이 안 가지만, 무장한 채 심부름을 보냈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사고 당일 실제 사격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당시 천주교인권위원회 오창래 위원장이 중대원 전원을 모아놓고 사격 시작시간, 사격 종료시간 등 교육 전반에 대해 물어봤으나 이에 대해 제대로 답변하는 중대원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최초 현장 목격자의 진술과 현장 상황도 달랐다. 함 이병 시신의 상체는 화장실 벽면에 기댄 채 오른쪽 다리를 포갠 상태였고, 왼쪽 다리는 바깥쪽으로 길게 뻗어 있었다. 방탄모는 앞쪽이 바깥쪽을 향한 채 반대편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경비단 소속 신아무개 중위는 최초 발견 당시 “총기가 왼쪽 가슴 부위에 올려진 상태로 개머리판이 지면 방향, 총구가 하늘 방향으로 약 45도 기울어 있었다”고 수차례 진술했다. 군이 유족들에게 보낸 수사경위서에도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런데 군이 현장을 공개할 때는 총기의 방향이 달랐다. 방탄모 아래쪽에 위치해 있었고, 총구는 바깥쪽을 향한 채 놓여 있었다. 유족이 문제를 제기하자 군은 다른 목격자가 있다며 같은 경비단 소속 박아무개·윤아무개 중위를 등장시켰다. 이들은 신 중위가 현장을 보고 나온 지 20초 후에 화장실에서 함 이병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불과 20초 차이로 총의 위치가 어깨에서 바닥으로 달라졌던 것이다. 

 

유족 측은 세 명의 목격자들 모두 군에서 만든 ‘가짜’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함 이병이 발견된 재래식 화장실은 당시 거의 사용하지 않던 곳이었다. 오래된 곳이라 역겨운 냄새가 진동하고 파리와 모기떼가 들끓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바로 앞에는 새로 지은 깨끗한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기 때문에 모두 이곳을 사용했다. 

 

그럼 왜 목격자들은 수세식이 아니라 냄새나는 재래식 화장실에 들어왔던 것일까. 유족들이 신 중위에게 물어보니 “처음에는 수세식 화장실에 갔으나 문이 잠겨 있어 재래식 화장실에 갔다”고 대답했다. 유족들은 신 중위의 말이 거짓이라고 반박한다. 

 

수세식 화장실은 24시간 개방돼 있었다는 것이다. 하루 500~1000여 명이 교육을 받기 때문에 화장실을 닫아놓을 수도 없었다. 더욱이 사고 당시는 오전 10~11시로 교육생들 수백 명의 오전 교육이 한창 진행되던 때였다. 

 

故 함광열 이병이 시신으로 발견된 화장실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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