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스타 외질 사태가 쏘아올린 ‘Me Two’ 운동
  • 강성운 독일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8.07 14:22
  • 호수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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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국가대표 외질 “이기면 독일인, 지면 이주자 취급받았다”

 

“나는 우리 팀이 이기면 독일인이지만 지면 이주자 취급을 받는다. 더 이상 인종차별과 멸시를 겪으며 독일을 위해 국제경기에서 뛰지 않겠다.”

 

전 독일 축구 국가대표선수인 메수트 외질이 발표한 장문의 성명서가 독일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축구계와 정치권, 독일 언론의 인종차별 때문에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한다고 말해 외질을 둘러싼 소동이 독일 사회의 인종주의 문제에 대한 논의로 번지고 있다. 

 

5월14일 터키의 여당인 정의개발당(AKP)이 사진을 올렸다. 영국프리미어리그(EPL)에서 활약 중인 독일 축구선수 메수트 외질(아스널)과 일카이 귄도간(맨체스터시티)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런던의 한 행사장에서 찍은 기념사진이었다. 

 

정치인과 스포츠 스타가 만나 유니폼을 들고 찍은 흔한 기념사진이었지만, 시기와 맥락이 좋지 않았다. 에르도안이 6월 예정된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한창 유세를 벌이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두 선수 모두 터키계 독일인인 것도 문제였다. 귄도간이 선물한 맨체스터시티의 유니폼에는 “나의 대통령께, 존경을 담아”라는 문구가 씌어 있었다.

 

귄도간은 이날 바로 인스타그램을 통해 “우리는 이 사진을 통해 정치적인 성명을 낼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외질은 침묵했다. 둘의 행동을 두고 독일 축구계 안팎에서 비난이 쏟아졌다. 라인하르트 그린델 독일축구협회(DFB) 회장은 “두 선수가 에르도안의 선거전에 이용됐다”고 비판했다. 에르도안을 강력히 비판해 온 셈 외즈데미어 독일 녹색당 총재 역시 “축구계의 백만장자가 (국제사회의) 압박을 받고 있는 권위주의적 통치자에게 낚여 그를 사면하는 제스처를 취한 것은 악취미이고, 창피한 일”이라며 두 선수를 힐난했다. 월드컵을 한 달여 앞두고 벌어진 악재였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기념사진을 찍었다가 거센 비판을 받은 독일의 터키계 간판 축구선수 외질이 인종차별을 이유로 축구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해 파장이 커지고 있다. © EPA 연합


 

에르도안의 선동에 움직이는 터키계 독일인들

 

에르도안은 독일을 비롯한 대부분의 EU(유럽연합) 국가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이다. 특히 그가 지난해 개헌을 통해 삼권분립을 무력화하고 대통령의 영구 중임을 가능하게 만든 이후로 독일 언론은 그를 “사실상 독재자”라고 부른다.

 

에르도안은 이 같은 비판을 이용해 독일 내 터키 이주민 사회에 분노와 피해의식을 부추기고 있다. 그는 독일을 비롯한 서구 사회는 터키가 강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해외의 터키 동포들을 부당하게 차별하고 있다고 선동해 왔다. 이러한 ‘이간질’에 힘입어 지난해 국외투표에 참여한 터키계 독일인 중 63.1%가 에르도안에게 절대 권력을 쥐여주는 개헌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는 터키 국내의 찬성률인 51.4%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다. 

 

독일 사회는 이 현상을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다. 독일에 살고 있는 터키계 이주민들이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체득하지 못한 결과 정치적으로 보수화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스나인 카짐은 ‘슈피겔 온라인’에 기고한 사설에서 “독재 시스템에 찬성하고, 사형과 비판적 언론인의 구속, 정치적 경쟁자의 감금에 찬성해 놓고선, 독일에서 독일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건 있을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이 독일 사회에 융화되지 못한 책임은 독일에만 있지 않다”고 진단했다. 터키계 이주민이 에르도안에게 지지를 보낸다는 건 곧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 그리고 독일 사회의 일원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귄도간과 외질의 기념 촬영이 문제가 된 것도 바로 이런 정치적 이유에서다. 외질은 성명서에서 “대통령이 누구인지가 아니라, 그 사람이 대통령이었다는 게 중요했다”며 사진 촬영에 정치적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자신은 “축구선수지, 정치인이 아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터키계 독일 복싱선수인 윈살 아릭은 “유치한 변명”이라고 일축하며 “에르도안이 저지른 짓을 검색해 보라. 어떻게 그에게 ‘개인적으로’ 호감을 가질 수 있느냐”며 맹비난했다. 

 

하지만 이 논란은 단순히 에르도안에 대한 찬성과 반대 입장으로 압축할 수 없는 다양한 층위(層位)를 갖고 있다. 두 축구선수에 대한 비판이 그들의 정치적 입장보다 이들의 출신과 인종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막바지 훈련이 진행 중이던 5월말 독일의 한 정치인은 “염소 강간범”이라는 혐오 표현을 써가며 그들을 비난하기도 했다. 또한 월드컵 개막 직전인 6월15일엔 베르너 슈티어 뮌헨 도이체테아터 극장 경영인이 트위터로 외질에게 “이 멍청아, 네가 국가대표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 아나톨리아로 꺼져”라는 원색적인 모욕을 했다. 

 

심지어 울리 회네스 FC 바이에른뮌헨 회장은 외질이 국가대표 은퇴를 발표하자 한 스포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경기도 제대로 못하더니 속 시원하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외질은 월드컵 경기장에서도 독일 축구팬들로부터 인종차별적 모욕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주민 부모를 둔 독일인들은 외질 사건을 두고 그동안 곪아온 상처가 터졌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요아힘 가우크 전 독일 대통령의 정책자문을 지낸 시넴 타슈킨은 “이주자 독일인들에게 독일은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그냥 주지 않고 노력해서 얻어야만 하는 나라다. 그들은 그 누구보다 더 나은 독일인이 돼야 하고, 어떠한 실수도 해선 안 된다. 안 그러면 소속을 박탈당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사회활동가 알리 칸은 성폭력 피해 여성의 폭로 운동인 ‘#MeToo’에서 착안해, 유색인종이 독일에서 겪는 차별을 폭로하는 ‘#MeTwo’ 운동을 제안해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적응할수록 더 강한 차별 느끼는 아이러니

 

이주민의 사회융합을 연구하는 마르티나 자우어는 외질이 “융합의 역설”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직업을 얻고, 독일인들과 교류를 하며 지내는 사람일수록 차별을 훨씬 더 강하게 경험한다. 왜냐하면 나는 당신들이 바라는 걸 전부 해내는데도 여전히 외국인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외질뿐 아니라 많은 터키계 독일 청년들이 이러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우어는 이주 가정 출신의 독일인들은 사회에서 “내가 너희들을 위해 나서 싸우고 있다는 지지의 메시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한편 에르도안은 외질의 국가대표 은퇴 직후 그와 통화를 하고 “애국자다운 행동을 했다”고 칭찬했다고 밝혔다. 외질이 에르도안의 정책에 대해 명확히 비판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는 한 에르도안이 계속 그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할 것임을 보여주는 일화다.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표제 기사를 통해 “외질 사건을 계기로 독일 사회가 인종주의 문제를 논의하게 된다면, 외질은 독일에 대해 그동안 국제경기에서 넣은 그 모든 골보다 훨씬 더 큰 공헌을 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독일 사회의 논의가 차별 방지 정책의 강화 등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지, 또한 다문화사회의 해법을 모색 중인 한국에 어떠한 교훈을 줄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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