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만 붙으면 지는’ 전남도…국책사업 잇단 패배 충격
  • 전남 = 정성환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18.08.09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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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혁신사업’에도 밀리는 농도(農道)전남

 

민선 7기 출범 이후 전남도가 추진하고 있는 대형 국책사업이 줄줄이 차질을 빚으면서 현안 사업 표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남도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여수 경도 연륙교 건설과 신안 흑산공항 건설에 이어 스마트시티 시범사업, 스마트팜 혁신밸리 조성사업까지 잇따라 제동이 걸리고 있다. 

 

특히 전남도는 농림축산식품부 공모사업인 ‘스마트팜 혁신밸리’에 선정될 것을 낙관해오다 최종 탈락하자 충격에 빠졌다. 발표가 나온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타 시·도와 비교우위를 장담했던 터라 당혹감이 더욱 큰 모양새다. 특히 민선7기 들어 주요 국책사업 또한 줄줄이 제동이 걸리면서 ‘다른 지역과 경쟁만 붙으면 진다’는 전남도 공무원들의 ‘경쟁력 부족’에 대한 지역 관가 주변의 따가운 질책은 뼈아픈 대목이다. 

 

이처럼 전남도가 스마트팜 혁신밸리 후폭풍에 휩싸인 가운데 지역 관가에서는 그 원인을 두고 논란이 한창이다. 전남도의 ‘실력 부족’이 주 요인이라는 주장이 우선 제기되고 있다. 도청 공무원들의 실력이 문제라는 것이다. 반면 일부에서는 더불어 정치력 부재와 이완된 조직의 분위기 등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전남도청 전경

전남도는 지난주에 큰 게임에서 패했다. 8월2일 농림부가 발표한 1800억 짜리 첨단 농산업 단지인 ‘스마트팜 혁신밸리’ 공모 대상지에서 탈락했다. 이번 공모에서는 전남을 비롯한 8개 도가 응모해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이 게임의 승자는 경북 상주와 전북 김제였다. 경쟁 종목이 농도 전남에 유리한 농업관련 분야인 데도 또 졌다. 전남도는 해남군 화원면의 솔라시도에 스마트팜 혁신밸리를 유치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지난 5월 T/F팀을 구성하는 등 그간 사업유치를 위해 노력해왔으나 허사였다. 

 

 

민선7기 전남 대형국책사업 잇단 제동…준비부실·자만 질타 목소리

 

하지만 전남도의 연이은 탈락과 패배의 역사를 상기해본다면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미 전남은 지는 데 이골 난 지역이었다. 전남 여수 경도지구는 지난 2016년 2월 문화체육관광부의 복합리조트 개발 사업계획 공모에서 인천 영종도에 밀려 탈락했다. 당시 이낙연 전남지사를 비롯한 지역 정치권과 22개 시·군 단체장, 시민사회단 등이 성명서와 청원서까지 냈던 것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표였다. 올해 1월에는 1조원대의 ‘스마트시티 시범사업’을 부산과 세종시에 빼앗겼다. 이 사업은 지자체 공모가 아니라 정부가 자체 선정하는 방식이었으나, 30~40개 지역을 대상으로 심사한 뒤 결정했다는 점에서 실제로는 지역 간 경쟁이었다. 

 

애초 전남도는 스마트팜을 해남·영암 간척지 개발 지역인 ‘솔라시도(일명 J프로젝트)’ 구성지구에 조성해 자연스럽게 솔라시도 활성화를 꾀할 생각이었다. 스마트팜을 토대로 솔라시도를 스마트시티로 확대하는 큰 구상을 그렸던 것이다. 솔라시도 구성지구의 순항을 위한 첫 단추는 스마트시티 시범도시 선정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스마트시티 시범사업과 스마트팜 혁신밸리의 연이은 탈락은 매우 아쉬운 지점이다. 또 전남도의 현안 사업인 여수 경도 관광개발의 핵심 기반시설인 연륙교 건설안과 신안 흑산공항 건설 등도 심의 지연 또는 연기되면서 사업에 차질을 빚고 있다. 

 

민선 7기 초반 전남도의 현안사업들이 지지부진한 이유에 대해 일부에서는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GM사태 등으로 경제적 타격이 심한 전북을 배려한 정부의 판단이라는 것이다. 전남도 한 관계자는 “스마트팜 혁신밸리 조성사업과 흑산공항 건설은 전북도의 현안사업과 맞물려 있다”며 “전북도 역시 스마트팜 혁신밸리 조성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고 새만금공항을 추진하고 있어 전남이 선의의 피해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전남도가 ‘스마트팜 혁신밸리’ 유치에 실패한 것은 전임 장관을 지낸 김영록 지사의 배경을 믿고 자만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김기태 전남도의원은 “전남도는 전남을 지역구로 둔 이개호 국회의원이 농식품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것도 사업 선정에 우호적인 분위기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정치적인 배경만 믿고 준비에 소홀해서는 국책사업을 유치하기 힘들다”고 질책했다. 

 

하지만 전남이 늘 경쟁에서 지는 책임을 ‘정치’에만 돌리기 어려운 정황도 있다는 지적 또한 나온다. 전남도 공무원들의 능력과 성실성도 문제라는 것이다. 1986년 광주시가 전남도에서 분리돼 동급의 광역자치단체가 됐지만, 도 공무원들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광주시 공무원들을 한 등급 아래로 보았다. 언론도 광주시의 일처리가 미숙할 때마다 전남도와 비교하곤 했다. 그러나 광주와 전남 분리 이후 32년이 지난 지금, ‘지는 전남’의 책임에서 전남도 공무원들이 자유롭다고 볼 수는 없다는 목소리도 높다. 

 

국비사업 심사를 자주 해본 한 지역대학의 교수는 “경쟁이 붙었을 때 전남도가 제출하는 자료를 보면 점수를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공모 경쟁에서 승패의 80%는 기획력과 창의력으로 결정된다”고 했다. 승패의 원인을 ‘정치’가 아니라 ‘실력’에서 찾아야 된다는 뜻이다.

 

전남도 공무원의 ‘역량 부족’은 자체 보고서에서도 나타난다. 전남도는 지난 2015년 공무원들이 폐쇄적이고 현실에 안주하는 조직문화 등으로 인해 역량이 미흡하다는 자체 조사 결과를 내놨다. 전남도는 조직 역량 실태 보고서에서 “중앙부처에 올라가는 사업계획 보고서가 다른 지역의 보고서보다 내용이나 설득력이 부족해 중앙정부가 지원하는데 어려움이 많다는 게 중론”이라며 “공무원이 자기 업무에 대한 사명감과 책임감이 부족하고 글로벌 시대에 국제적 감각과 언어능력이 매우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고 지적했다. 

 

공무원들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전남도라는 조직 분위기도 문제라는 분석도 있다. 전남도는 이낙연 전 지사의 총리 부임 이후 두 번에 걸친 지사 대행이 바뀔 때마다 조직 이완은 물론 정책도 겉돌았다는 지적이다. 깐깐한 수장이 사라진 상황에서 공무원들은 성실하게 실력을 쌓기보다 처신과 요령에 더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이런 조직에선 무사안일과 보신주의가 팽배하게 돼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도청 안팎에선 “이낙연 지사의 총리 발탁 이후 지금까지 일손을 놓고 있다”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있었다.

 

이렇게 따지면 ‘지는 전남’의 근본 원인은 다시 ‘도백의 문제’로 돌아간다. 조직을 죽이고 살리고, 일 잘하는 공무원을 만들고 못 만들고는 그 조직의 장(長)한테 달렸다는 것이다. 지역정가의 한 인사는 “엄밀히 보면 이번 국책사업 탈락은 신임 김영록 지사에게만 전적으로 책임을 돌릴 수 없다. 대신 김 지사는 이런 조직을 바꿔야 할 책무가 있다”면서 “잘못된 조직문화와 분위기를 바꾸는 건 조직의 수장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김 지사가 이런 일을 잘해내지는 다음 국책사업 경쟁의 결과에서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전남도가 스마트팜 혁신밸리 유치 실패와 흑산공항 건설 심의 보류, 여수 경도 연륙교 심의 지연 등의 암초에 부딪치면서 좀 더 적극적인 김영록 지사의 정치력과 조직을 진취적으로 견인하는 리더십 발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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