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늦어도 태평…놀라워라 ‘아프리카 타임’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18.08.16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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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기록적 폭염 벗어났단 안도감도 잠시, 아프리카 우간다의 느긋함에 ‘멘붕’

 

드넓은 초원에 작열하는 태양, 사자와 기린이 뛰어놀고, 머리에 잔뜩 짐을 멘 여인이 흙길을 걷는 장면. 기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아프리카의 모습입니다. 경유 시간을 포함해 20시간 비행길에 오르기 전 기자가 상상한 우간다는 이랬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큰 착각이었습니다.

 

처음엔 느낌이 좋았습니다. 7월29일부터 8월5일까지 우간다의 날씨는 최고 기온이 고작 26도였습니다. 바람이 산들산들 불었고 비도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같은 기간 서울의 최고 기온은 39.6도, 강원도 홍천은 41도를 찍었습니다. 기록적인 폭염이라고 했습니다. 

 

피서를 아프리카로 왔다는 생각에 한껏 들떴습니다. 아프리카로 간다고 고생 많다던 동료들의 걱정은 이내 부러움으로 바뀌었습니다. 일주일간 묵었던 숙소에서 원숭이도 여러 마리 봤습니다. ‘드디어 아프리카에 왔구나.’ 실감이 났습니다.

 

나일강의 발원지라는 우간다 진자에서 바라본 강의 모습. 이날 진자의 최고 기온은 24도로 선선했다. ⓒ조문희 제공

 

 

사이다 하나 시키는 데 15분…“아프리카 사람들 절대 안 뛴다”

 

흥분도 잠시. 복병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시간’입니다. 우간다의 시간은 한국의 초침과 다르게 흘러가는 것 같았습니다. 행사는 2시간이 지나도록 시작할 기미가 안 보였고, 음식 하나 시키는 데 30분 넘게 걸리는 게 기본이었습니다. 한식당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 있는 한식당에서 사이다 하나 가져다 달라고 했다가 15분을 기다렸습니다. 종업원들은 태평해 보였습니다.

 

국가에서 진행하는 행사가 늦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8월1일과 2일 이틀간 열린 글로벌 피스 리더십 컨퍼런스(GPLC)에는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도 참석했습니다. 그런데도 9시 반에 시작하기로 예정된 행사는 11시가 넘어서야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한국 기자들은 초조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다리를 떠는 건 한국인들뿐이었습니다. 우간다, 케냐, 나이지리아, 브룬디 등 아프리카 각지에서 온 현지인들은 마치 당연하다는 것 마냥 웃고 떠들었습니다. 얼굴 찡그리는 사람 하나 없었습니다. 잔뜩 짜증을 내는 기자에게 케냐 출신 기자 키옴보요는 “아프리카는 원래 이렇다”고 귀띔했습니다.

 

우간다에서 10년 넘게 사업을 하고 있는 이성호씨의 생각도 같았습니다. 캄팔라 시내에서 호텔과 가구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씨는 “종업원들이 절대 뛰는 법이 없다. 처음 아프리카에 왔을 때 그게 제일 당황스러웠다. 한국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이니까. 이곳 인건비가 싼 이유는 그만큼 일을 효율적으로 하지 못해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씨가 수년간 관찰한 아프리카의 모습입니다. 이씨의 호텔에서 저녁을 먹었던 그 날 역시, 현지 종업원은 느긋하게 움직였습니다.

 

숙소 근처에서 찾은 시장의 모습. 아침에 추적추적 내린 비로 땅은 흥건했다.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아프리카 전통 음악 사이로 상인들은 기자에게 '차이나' '재팬'이라며 흥정을 시도했다. ⓒ조문희 제공

 

 

열악한 인프라 탓, 비 오면 꼼짝없이 갇혀

 

그도 그럴 것이 아프리카에선 시간 약속이 무의미한 것 같았습니다. 인프라가 워낙 취약했기 때문입니다. 빨간색 토양 위로 깔린 아스팔트 도로는 울퉁불퉁했고 차선 찾기도 어려웠습니다. 배수가 안 돼 비가 오면 길에 물이 그대로 차올랐습니다. 

 

GPLC 행사가 늦어진 것도 당일 새벽 비가 내린 탓이었습니다. 비가 많이 온 것도 아닌데 도로가 마비됐습니다. 이날 통역을 맡은 이강산씨는 택시를 타고 40분이면 될 거리를 1시간 반 넘게 걸려 왔다고 했습니다. 다음 말이 더 놀라웠습니다. “우기 때는 이런 게 일상이다. 차 문을 열면 물이 그대로 들어온다. ‘아프리카 타임’은 어쩔 수 없다.”

 

이강산씨가 보내준 출근길 캄팔라 시내 도로의 모습. 우기 때는 이런 게 일상이라고. ⓒ이강산 제공

 

그런데 아프리카 사람들도 변하는 모양새였습니다. 취약한 인프라를 개선하려고 노력했고, 공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시공사를 비판했습니다. 비난의 화살이 중국을 향한 이유입니다. 아프리카의 도로·철도·​교량 등은 대부분 중국에서 공사했습니다. 우간다에서 목격한 많은 공사현장에서도 중국 트럭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은 아프리카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며, 2016년 교역 규모는 2220억 달러였습니다. 

 

 

반중(反中) 비집고 한국도 진출해볼까

 

하지만 날림으로 공사를 한 걸까요. 우간다인들은 중국을 내켜 하지 않았습니다. 무세베니 대통령의 경호원인 폴은 기자에게 “중국은 뭐든 대충한다. 정이 안 간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4월엔 캄팔라에서 우간다 시민 수백 명이 거리로 나와 “중국 상인 떠나라”고 시위했습니다. 중국인들이 자기 잇속만 챙기고 현지인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는 이유에섭니다. 이성호씨나 이강산씨의 말에 따르면, 이런 인식은 아직까지 유효합니다. 

 

우간다는 ‘아프리카의 진주’라고 합니다. 자원이 풍부할뿐더러 아프리카의 동서남북을 잇는 요충지에 위치한 까닭입니다. 우간다뿐만 아니라 아프리카는 자원의 보고로 통합니다. 이 때문에 중국·​일본·인도는 ‘신(新) 아프리카 쟁탈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캄팔라 시내의 모습. 고층 건물과 커다란 복합쇼핑몰을 구경했다. 대부분 중국에서 공사한 거다. ⓒ조문희 제공

 

반면 한국은 어떨까요. 한국무역협회가 2015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인프라 투자 수요는 1000억 달러 수준인데 그중 한국 투자는 1.8억 달러밖에 되지 않습니다. 문재인 정부도 아프리카 수요를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달 말 이낙연 국무총리가 케냐와 탄자니아에 방문하면서 본격 시동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도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이다. 우간다에 와서 정말 행복하다.” 이성호씨가 말했습니다. ‘아프리카 타임’은 한국과 전혀 달랐지만, 그 나름대로 매력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한 번쯤 또 가보고 싶습니다. 다시 찾을 그때 우간다는 어떤 모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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